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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그곳에 사람이 있다.

샤마임 2018.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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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그곳에 사람이 있다.


아내가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어언 한 달이 되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요즘 세대의 일상에 스며든 것이다. 단 한 번도 생각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세계 발을 딛는다는 것은 두려움과 긴장을 유발한다.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아내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편의점을 시작했고, 며칠 후 나 또한 기업에 점심을 제공하는 식당에 취직했다. 두 사람이 모두 벌어도 생존이 쉽지 않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또한 다섯 아이들과 우리의 일상을 위해 아픈 몸을 안고 하루를 그렇게 살아간다.


통풍으로 오른쪽 발가락이 유난히 아픈 아내는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다. 그만두라는 나의 잔소리에도 아내는 꿋꿋이 하루를 버텨낸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보낸다. 거의 매일, 퇴근을 하면 아내는 발이 아프다며 고통스러워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살아 있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삶은 아픔을 동반하고, 아프기 때문에 '살아있음'은 자증되는 것이다. 아픈 아내의 다리를 부여잡고 매일 마사지를 하면서 기도를 한다. 긍휼히 여겨 달라고. 그 기도 외에는 특별한 기도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쌓여 한 달이 된 것이다.


힘든 일도 있지만 재미난 일도 많이 일어난다. 한 달이 되어가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공병을 가져오는 할머니, 계산도 하지 않고 술을 가져가는 어느 나이 든 청년?,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노동자들. 걸어서 가기에는 마트가 멀어 비싼 편의점에 동네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들어온다. 아내가 착해 보이는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입을 연다. 

편의점은 공적언어가 지배하는 곳이다. 

어서오세요.

저기에 있어요.

00원 이네요.

안녕히 가세요.

한정된 언어, 친밀성은 눈씻고 찾아봐도 들리지 않는 언어. 공적 언어는 객관성과 합리성을 부여하지만 관계의 죽음이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한 달이란 시간은 타자의 객관적 관점을 벗어나 그들의 삶을 들을 수 있게 한다. 경계의 겹을 하나씩 벗겨가며 아내에게 생채기가 가득한 삶의 속살을 끄집어 낸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덩굴처럼 이어진다. 단 몇 분의 머묾을 통해 들려오는 삶의 편린들은 아프다못해 고통스럽다. 그들의 이야기들은 하나씩 드라마가 되어 간다.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온도차는 이렇게 격하다.


일당제로 일하는 나는 이번 주 통으로 휴가를 받았다. 물론 무상이라는 것이 아픈 일이지만. 단기 알바를 알아보려는 데, 아내가 한사코 가지 말란다. 그렇게 아이들과 하루를 보낸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과 함께 편의점에 점심을 먹으러 오라는 중전마마의 명이 하달되었다. 아이들을 이끌고 다시 편의점을 찾았다.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편의 도시락, 김밥, 그리고 이상한 전자레인지에 끓여먹는 라면. 아내는 아픈 다리를 절면서 열심히 일을 한다. 우리에게 이것저것 챙겨 준다. 그동안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는다.

 


잘못된 물건도 바꾸러 가지 못하던 아내는 이제 제법 용감해졌다씩씩한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도 할 줄 알고, '네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도 안다친하게 지내는 언니와도 이야기한다편의점을 하면서 아내는 점점 세상을 배우고사람을 알아간다교회 안에서도 허투르지 않았던 아내는 편의점에서도 집요함과 열정으로 꽉차있다꼼꼼한 아내의 일솜씨는 점장이 모든 것을 맡길 만큼 다부지다.


유난히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그래서 알바생이 드나드는 사람만큼 자주 바뀌는 곳아내는 그곳에서 한 달을 보냈다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자국에 사연이 담겨있고짧은 시간에 영겁의 사연을 풀어내는 그들의 입술에 인생이 있다투박한 언어로 풀어내는 척박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말한다그들에게도 '사연'이 있고 '추억'이 있으며꿈도 있었다그렇게 쌓여간 하루는 또 어제를 만들고오늘을 쌓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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