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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으로서의 믿음

샤마임 2025.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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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으로서의 믿음: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의 기능

기독교 신학에서 “믿음”은 단순한 종교적 확신이나 윤리적 결단을 넘어서,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 속에서 인식하고 참여하게 하는 실재적인 기능을 수행합니다. “현존으로서의 믿음”이란 곧, 믿음이 단지 미래를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현재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살아내는 능동적인 참여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한 표현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미래에만 도래할 대상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고 지금 여기에서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에게 현존한다는 복음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이 글에서는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맥락에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의 기능현존의 관점에서 조망합니다.

 

1.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현재에 ‘보는’ 통찰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단지 종말에만 완성될 무형의 개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영적 시야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부릅니다. 이 말은 곧 믿음이 단지 사후 세계나 천국을 기대하는 소망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며 자신의 뜻을 이루고 계심을 ‘보는’ 영적 인식임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눅 17:21)고 말씀하신 것은 믿는 자의 삶 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였다는 선언입니다. 이 나라는 눈으로 관찰되는 정치적 제도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인식되고 참여할 수 있는 영적 실재입니다. 믿음은 곧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지금 내 삶의 구체적인 현실 안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에 순복하는 내면적 응답입니다.

 

2.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현재에 ‘살아내는’ 실행이다

현존으로서의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는 능력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은 단지 하늘의 질서가 도래했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질서에 따라 사는 삶이 가능해졌다는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제시하신 하나님 나라의 윤리(마태복음 5-7장)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믿는 자에게 이미 임했다는 전제 위에서 주어진 ‘현재형 윤리’입니다.

믿음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 윤리를 실천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용서, 화해, 겸손, 섬김, 진실, 가난한 자에 대한 긍휼은 모두 믿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신뢰할 때 가능한 실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전제로,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그것은 고난 중에도 의를 위하여 살아가는 힘이며,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진리를 선택하는 결단의 근거입니다.

 

3.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지금 누리게 하는 은혜의 통로이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기쁨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4장 17절에서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기쁨)”이라고 말합니다. 이 기쁨은 현실 조건에 기반한 쾌락이나 감정적 안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나의 삶 안에 실제로 임했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존재적 기쁨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내면적 응답이며, 바로 그 순간부터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현재 안에서 누리기 시작합니다. 이는 히브리서 12장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는 권면처럼,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볼 때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눈물 속에서도, 혼란 속에서도 “주께서 다스리신다”는 믿음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제공하며, 이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입니다.

 

4.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현재에 ‘의식하게’ 한다

믿음은 정체성의 인식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너희는 외인이 아니요, 하나님의 권속이며 성도의 동무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단지 장래에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믿음은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합니다. 세상은 나를 실패자, 죄인, 약자, 무가치한 존재로 평가하지만, 믿음은 나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신부”로 인식하게 합니다. 이 인식은 행동을 낳습니다. 믿음은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하고, 그에 맞는 삶을 살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정체성 기능이며, 이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현재적으로 누리게 하는 힘입니다.

 

5. 믿음은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기능을 한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개인적인 체험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동체적인 현실이며, 믿음은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게 합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며, 떡을 떼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는 단지 조직적 공유경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공동체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은 자기 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다른 이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도록 이끕니다. 믿음이 없다면 경쟁과 소유, 비교와 증오의 세계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서로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하고, 그에 따라 사랑하고 섬기게 합니다.

믿음은 서로를 ‘하나님 나라의 지체’로 보게 하며,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회복시키고, 용서를 촉진시키며, 함께 예배하고 함께 걸어가게 하는 영적 끈입니다.

 

6.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현재적 참여’이다

믿음은 단지 과거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현재적 참여입니다. 우리는 종말의 날을 기다리지만, 그 기다림은 수동적 대기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그것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긴장 속에서 현재를 살아내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확신하면서도, 그 미래가 지금 이곳에 시작되었기에 그것을 살아내는 참여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부활의 확신을 설명한 후 “그러므로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은 확신을 주고, 그 확신은 현재의 삶을 능동적으로 만드는 힘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기에 ‘지금 여기서’ 진리와 정의와 은혜와 사랑을 살아내게 하며,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많이 기도하고, 더 깊이 헌신하며, 더 넓게 섬기게 하는 내면의 동력이 됩니다.

 

결론

믿음은 단지 무엇을 믿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사실을 현재 속에서 인식하고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현재에 보고, 그 질서를 살아내며, 그 기쁨을 누리고,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식하고, 공동체 안에서 관계 맺고, 미래를 향해 참여하는 통로입니다.

현존으로서의 믿음은 하나님 나라가 추상적인 이상이나 장래의 보상으로만 머무는 것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드러나고, 구현되고, 확장되고 있음을 선언합니다. 믿음은 선취된 미래의 실재를 지금 현재에 현존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이유이며, 그 믿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미리 맛보며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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