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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피난처, 나의 바위이신 하나님(시편 71:3)

샤마임 202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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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피난처, 나의 바위이신 하나님(시편 71:3)

인생은 쉼 없이 흔들리는 광야의 여정과 같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파도와 바람이 몰아치고, 마음은 피할 곳 없는 벌판에 홀로 선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여정 속에서 시편 71편 3절은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합니다.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라고 고백하는 시편 기자의 외침은 단지 절박함의 표현이 아니라, 신앙의 정수요 구속사의 본질을 드러내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바위 되신다는 이 고백 속에 담긴 상징성과 복음적 깊이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1. 피할 곳 없는 시대에 드러나는 바위의 상징성(시 71:3)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에서 "צּוּר מָעוֹן(쭈르 마온)"이라는 단어로 번역되는데, 여기서 "쭈르"는 단단한 바위,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돌을 뜻합니다. 단지 큰 돌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기반, 요새로서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바위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속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반복되며, 특히 구속사 안에서는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광야에서 목이 말라 부르짖던 백성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위를 치게 하심으로 물을 내셨습니다(출 17장). 신약에 와서는 사도 바울이 그 바위를 가리켜 "그리스도라"고 해석함으로써(고전 10:4), 바위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메시아 예표임을 드러냅니다. 바위는 구속사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상징이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피난처가 되며, 구원의 근거가 되는 존재입니다.

시편 기자가 바위를 피난처로 고백하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 바위는 실제로 숨을 수 있는 영적인 현실이었습니다. 인생의 위협, 원수들의 공격, 육체의 쇠약함 속에서 그는 이 바위 곁에 피신하여 쉼을 얻고자 했습니다. 주석가들은 이 시편의 배경이 노년기의 다윗 혹은 다른 장로 시인의 고백이라 보며, 인생의 후반부에 겪는 연약함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의지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2.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 바위: 언약의 지속성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시 71장 전체)

시편 71편 전체를 보면, 이 시는 한 개인의 탄원으로 시작하여 결국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찬양하는 고백으로 나아갑니다. 특히 3절에서 바위가 강조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이 바로 그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음을 확증하기 위함입니다. "항상 명령하여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구절에서 히브리어 동사 형태는 지속성과 확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신 구원은 어떤 상황에도 무효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구속사는 인간의 변화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이어져 갑니다.

이 바위의 이미지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확장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자신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로 비유하셨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 그분의 인격,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완성된 구속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모든 바람과 비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 바위 위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 언약의 바위에 삶 전체를 의탁합니다. 그의 기도는 단지 구원의 요청이 아니라,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드는 고백입니다. 언약은 인간의 반응이나 성실함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불성실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을 중단하지 않으시며, 그 약속을 지켜내십니다. 이 언약적 신실함이 바위로서의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그리고 이 바위는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든든합니다. 시편 기자는 후반부에서 늙음과 연약함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인생이 끝을 향해 가도, 하나님의 바위되심은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바위는 무덤을 넘어 부활의 소망까지 연결되는 영원한 피난처입니다.

3. 믿음의 실존 속에 드러나는 바위 되신 하나님(삶의 적용)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이 바위 되신 하나님은 동일하게 작용하십니다.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에서 수많은 두려움과 피로, 죄책감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때는 도망가고 싶고, 어떤 날은 사라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마음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단단히 숨을 수 있는 곳,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곳,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주시는 곳이 바로 하나님, 곧 우리의 바위입니다.

이 바위는 은혜의 바위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쌓은 성취나 경건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진 구원의 근거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찔리시고 깨어짐으로 우리를 위한 참된 바위가 되셨습니다. 그분의 상함과 부서짐을 통해 우리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터 위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바위는 우리의 고난과 함께 계시는 바위입니다. 바위는 바람을 막고, 햇빛을 가려주고, 땅 위에 그늘을 드리웁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며, 바위처럼 묵묵히 우리 곁에 계십니다. 큰 소리로 외치지 않으시더라도, 그늘이 되어주시고, 쉼이 되어주시며,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옆에 누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할만큼 외로운 날에도, 하나님의 바위되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키보드가 갑자기 안눌려서 몇 글자가 빠질 수 있씁니다.

이 믿음은 단지 위로가 아닙니다. 이 믿음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근거이며, 오늘을 살아내는 힘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바위가 되신다는 고백은 단지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가장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토대입니다. 우리가 서야 할 유일한 터전은, 세상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며, 바로 하나님의 구속 안에 있는 그리스도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바위가 되어주십니다. 피할 곳 없는 인생길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언약 안에서 신실하시며,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바위 위에 세워졌으며, 그 위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위는 잠시의 위안이 아니라, 구원의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의 믿음은 바위 되신 하나님께 닻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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