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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4. 10:26-39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샤마임 2018.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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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0:26-39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1. 말씀 읽기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2. 묵상

 

오늘 함께 묵상할 본문은 두세 번 나누어도 될 만한 분량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의 특성상 반복된 구절들이기 때문에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세 단락으로 나누어 묵상해 봅시다.

 

1) 배도에 대한 경고

 

지금까지 배도에 대한 경고는 몇 번에 걸쳐 있었습니다.(2:1-3, 3:15-19,6:1-8) 그러나 지금까지 했던 어떤 경고보다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배도에 대한 심판을 잠깐 언급했던 64-6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강조하는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26-29절까지의 말씀을 6:4-6과 비교해 보십시오. 일정한 패턴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는 같은 의미입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헬라식 앎이 아닌 전인격적이고 체험적인 히브리적 앎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진리를 경험한 이들입니다. 이들의 배도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봅시다.

 

- 의도적으로 죄를 범합니다.

 

이들은 진리를 알고경험했습니다. ‘빛을 받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다’ ‘성령에 참여하다등은 히브리적 앎의 공통적인 특징들입니다. 즉 그들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아는 지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리를 부정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의 죄는 악의적이며 악랄한 것입니다.

 

- 모세의 법을 어겨도 사형을 당합니다.

 

옛 언약인 모세의 법, 즉 율법을 어긴 자들은 반드시 처벌을 받습니다. 심한 경우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하물며 모세보다 더 탁월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부정하는 자들은 더욱 중한 벌을 받을 것입니다.

 

- 다른 제사가 없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치명적인 차이는 제사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옛 언약은 매일, 매 번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한 번’(ἅπαξ, 6:4)으로 끝이 납니다. 예수의 피는 한 번으로 족합니다. 예수의 피는 세상의 모든 죄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제물은 세상의 모든 짐승이 흘린 피보다 더 탁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심각하게 경고합니다.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행위는 심각한 배교행위입니다. 유대교가 그림자이며 모형일 뿐임을 알고도 다시 돌아가는 것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것이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2)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라

 

그러므로 깊이 생각해야(Ἀναμιμνσκεσθε) 합니다. 동사를 강조한 히브리적 문법을 사용하지 않은 헬라어가 동사가 먼저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각한다’(ἀναμιμνήσκω)안나(ἀνά)’밈네스코마이(μιμνήσκομαι’)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안나(ἀνά)’사이’ ‘서로’ ‘중간’ ‘각각등의 의미로 두 가지 이상의 사건이나 두 사람 이상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상황이란 의미를 가집니다. ‘밈네스코마이(μιμνήσκομαι’)기억하다’ ‘회상하다’ ‘다시 생각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생각한다’(ἀναμιμνήσκω)라는 단어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여러 가지 일들과 상황들을 생각해 보라가 됩니다.

 

그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32)입니다. 그것은 큰 싸움이고, ‘견딤이었습니다. 33-34절에 의하면 그 싸움은 선한 싸움입니다. 악과 싸우는 방법은 또 다른 악이 아니라 사랑’ ‘긍휼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의의 무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싸움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타인들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주눅 들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이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4:7) 33-34절을 간결하게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다

.갇힌 자를 동정했다.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했다

⇒ ㅁ.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알기 때문이다.

 

은 결과이기도 하고 이유이기도 합니다. 에 대한 부분은 11장에서 더욱 자세하게 다룰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영구한 소유, 즉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 사자후처럼 열변(熱辯)합니다.

 

33-34절은 히브리서 독자들의 처지가 어떤지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지, 왜 고난을 견디어야하는지도 잘 알려 줍니다. 히브리서는 두 구절의 확장과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난 속에서 승리해야하고 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살아왔고, 지금도 여전히 행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형언할 수 없는 공동체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명예를 위해 자신의 명예를 버리고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자들과 사귐으로 불법한 자들과 동료라는 비난을 들었던 주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갇힌 자들을 동정함으로 그들을 가둔 자들을 정죄했습니다. 이 땅의 소유를 아까워하지 않음으로 영원한 소유가 있음을 말했습니다.

 

’(34)은 지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동이고, 삶이고, 생명입니다. 죽은 지식은 알지만 행동하지 않습니다. 죽은 믿음은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죽은 사랑은 감정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오직 살아있는 믿음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것을 선택하고 행동합니다. 영원한 소유가 있음을 알기에 찰나의 소유를 포기할 줄 압니다. 그들은 그렇게 살았고, 또한 살고 있습니다.



 

3)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므로 의인은 전진합니다. 머물지 않고 앞서 달려갑니다.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계속 담대하게 살아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곧 그가 오시기 때문입니다. 임박한 종말론 사상을 보여 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일어날 사건으로 보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고난은 불가피하게 종말론적 삶을 요구합니다.

 

의인이란 단어 속에는 이미 세상에 대한 정죄와 종말에 대한 경고가 들어가 있습니다. 의인은 불의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종말의 때에 하나님은 불의한 사람들은 심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지금 하고 있는 의로운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고, 인내는 다시 약속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35-36을 계속 믿음으로 살게 된다면 얻을 것을 약속합니다. 37-38에서는 포기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는 설명합니다. 특히 39절에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설명합니다.

 

35 담대함 큰상을 받음

36 인내 약속하신 것을 받음

- 37 그가 곧 오신다.

- 38 하나님은 물러가는 자를 기뻐하지 않는다.

39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

 

이러한 도식은 앞서 설명한 배교에 대한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모순이나 실패가 아니라 단순한 경고임이 분명해 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리시고 실패할 수 있다는 모순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삶의 맥락이 빠진 교리 해석은 자가당착에 빠집니다. 유혹에 흔들리는 그들에게 흔들리지 말 것을 부정적으로 경고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39)

 

의인과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진 의는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됨으로 우리의 의가 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세상의 불의함을 폭로하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죽으셨습니다. 세상에 대한 죽음이며, 불의에 대한 죽음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지배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새로운 공동체이며, 세상을 변혁을 주도하는 혁명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감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워 나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강해가 출간되었습니다. 


그동안 묵상글로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묵상글을 수정 증보하여 <히브리서 강해>란 제목으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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