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5.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25.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오늘은 히브리서 묵상 25번째로 믿음에 대한 이야기로 함께 나눕니다.
1. 말씀 읽기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2. 묵상
히브리서 11장은 성경에서 가장 다이나믹하면서 중요한 장입니다. 교회를 다닌다면 히브리서는 몰라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은 들었을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가장 위대한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이 가지는 독특함과 위대함을 자주 간과합니다. 오늘부터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히브서 11장의 세계로 들어가 봅시다.
1) 믿음은 무엇인가?
첫 번째 주제는 ‘믿음은 무엇인가?’입니다. 믿음이란 단어의 뜻을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헬라어 ‘피스티스’(πίστις)를 사용하며, 영어의 ‘faith’의 어원이자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스티스’(πίστις)는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신(神)에 대한 믿음, 어떤 사람에 대한 신용 등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들은 영어 faith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간략하게 우리가 아는 ‘믿음’이란 의미로 받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바라는 것들’(ἐλπιζομένων)은 소망이란 단어에 뿌리는 두고 있습니다. ‘기대하고 갈망하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는 중성 복수를 사용하여 ‘장차 올 세상’(2:5)이나 ‘영원한 안식’(4:1-11), ‘영원한 유업’(9:15), ‘하늘의 예루살렘’(12:22-24), ‘흔들리지 않는 나라’(12:38) 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상’(휘포스타시스, ὑπόστασις)은 ‘아래에 서다’에서 온 말로 ‘확신하다’는 뜻입니다. 왜 실상이라고 번역했는지 알 수없는 노릇이지만, 의미가 약간 다릅니다. 윌리엄 L. 레인은 실상을 '의심할 수 없이 확고하게 구축된 객관적 실체를 지칭'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확고하기 때문에 ‘실상’이라고 번역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이 갖는 몇 가지의 특징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ㄱ. 믿음의 주체
믿음은 주체는 자신입니다.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ㄴ. 믿음의 속성
그 다음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믿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ㄷ. 믿음의 대상(내용)
마지막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 또는 믿음의 내용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대상은 다시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내용(약속)과 그 내용을 약속하는 존재인 하나님으로 구분됩니다. 믿음은 근본적으로 믿음의 대상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형성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믿음은 단순한 지적인 정의가 아니라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은 것(πρᾶγμα)들의 증거’라는 표현은 직역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유의해야할 단어는 ‘증거’(ἔλεγχος)입니다. 놀랍게도 이 단어는 ‘엘레그코’(ἐλέγχω)에서 왔습니다. ‘엘레그코’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폭로한다’는 뜻입니다. ‘증거’(ἔλεγχος)는 법정적 의미로서, 판결하다고, 폭로하다. 증명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맥에 맞게 다시 풀어내 본다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확신(실상, ὑπόστασις)하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논리적으로 따져서 명백하게 선언(증거, ἔλεγχος)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해 정의하면서, 그것은 마음으로 확신하며, 이성과 삶으로 증명해 내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2) 선진들이 얻은 증거
‘증거를 얻다’(ἐμαρτυρήθησαν)는 말은 ‘증거’ ‘증인’ 의 뜻을 가진 ‘마르투레오’(μαρτυρέω)에서 왔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은 ‘증인’입니다. 그들은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선언하셨습니다. 사도행전과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인, 또는 제자들을 ‘예수의 증인’(μάρτυρες Ἰησοῦ)로 불렀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행 22:20, 계 2:13, 17:6)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지만, 초대교회에서 순교자(martyr)란 단어가 ‘증인’에서 왔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증언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전하지 말라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담대히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증거하다는 말은 ‘입증하다’는 말입니다. 로마 시대에 ‘입증하다’는 표현은 공적인 명예를 드러내는 단어였습니다. 즉 모두에게 확증되고 분명히 드러난 칭송받을 만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단어였습니다. 히브리서는 ‘선진들’이란 사람들을 통해 이미 그것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증거를 얻었다는 말일까요? 쾨스터는 ‘입증하다’가 수동태형을 취해 ‘하나님을 가리키며, 그의 증거는 성경을 통해 전달된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이신 것들이란 말입니다. 선진들은 하나님께서 보이신 것들을 통해 확증한 것입니다.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윌리엄 L. 레인은 ‘확고한 믿음의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증거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3) 믿음으로 안다.
3절은 ‘믿음으로 안다’(Πίστει νοοῦμεν)를 문장 앞에 두었습니다. 3장을 구문 분해하면 이렇습니다.
ㄱ.믿음으로 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세계가 지어졌음을
ㄴ.나타나지 않았다. 보이는 것들로부터
ㄱ과 ㄴ의 구문은 상호적입니다. ㄴ은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ㄱ은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ㄴ은 ㄱ의 구문을 보강하고 있습니다. 3절의 문장은 ‘믿음으로 안다’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나타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우리는 창조를 무(無)에서 왔다고 하지만 무는 무일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지어졌다’는 헬라는 ‘카타르티조’(καταρτίζω)로 ‘어떤 것의 아래에 서다’는 말입니다. ‘카타’(κατά)라는 전치사는 어떤 무엇으로부터 연유하여, 향하여, 통하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는 복잡한 헬라어를 생각하지 않아도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으로 인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하여 보이는 것들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증언, 또는 증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셀무스가 말했던 신존재증명의 방법입니다. 만약 보이는 것들이 구약의 율법에 속한 것들이라면 3절의 의미는 더욱 의미심장해 집니다. 구약의 성막은 하늘의 성막을 본떠 만든 것입니다. 땅의 성막은 하늘의 성막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이 모든 것을 알게 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이상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보이는 것들로부터 하나님을 추론할 수 없습니다. 인식의 과정은 보이는 하나님을 보게 하는 믿음이 작동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소개될 모든 구약의 인물들에게 ‘믿음으로’를 사용하는 것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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