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교회사/인물.교회사.신학46

[한국교회사 인물] 이성봉 목사(1900 - 1965)

[한국교회사 인물] 이성봉 목사(1900 - 1965)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이성봉 목사는 빠뜨릴 수 없는 분이시다. 장로교회 일색인 한국교회 안에서 이성봉 목사는 성결교단이면서도 수많은 성도들에게 사랑받은 분이시다. 이성봉 목사는 부흥사와 천로역정 강해자로 유명하다. 그의 의 천로역정 강해 파일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수년 전에 우연히 글로만 읽던 이성봉 목사님의 천로역정 강해를 음원으로 듣게 되었다. 간단 명료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해설은 영적 감동을 선물해 주었다. 아직 더 많은 책은 읽지 못했지만 철저한 경건과 종말론적 소망을 놓치지 않았던 이성봉 목사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는 이성봉 목사의 천로역정 강화 서론과 .. 교회사/인물.교회사.신학 2019. 9. 23.

제롬(히에로니무스 347-420)

제롬(히에로니무스 347-420) 초대교회 교부이자, 신학자이다. 히에로니무스보다는 제롬으로 더 알려져 있다. 헬라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교회사/인물.교회사.신학 2019. 7. 23.

종교사학파(history of religions school, 宗敎史學派)

종교사학파(history of religions school, 宗敎史學派) 종교사학파(history of religions school)란 1890년대 독일 괴팅겐 대학교를 주축으로 일어나 신학 운동이다. 베른하르트 더함, 알버트 아이크혼, 헤르만 궁켈, 요하네스 바이스, 빌헬름 부세, 알프레드 랄프스, 에른스트 트뢸치, 윌리엄 브레데, 하인리히 핵크만, 루돌프 오토, 휴고 그레만, 벨헬름, 헤이트 뮐러, 칼 므르뱃, 칼 클레맨, 하인리히 바인엘, 폴 브레델 등이 있다. 종교사학파의 현저한 특징은 계시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부정한다. 비교 종교학를 통해 성서의 종교로 보았다. 즉 독립적이고 폐쇄적인 유대적인 종교로 보지 않고 주변의 다양한 문화와 신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들은 유대-팔레.. 교회사/인물.교회사.신학 2019. 6. 1.

마르틴 루터 연표

마르틴 루터 연표 *이연표는 롤란드 베인톤의 (생명의말씀사)에사 인용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수정됩니다. 다른 곳과 비교하여 잘못된 곳은 보다 더 정확한 곳을 따르며, 권위있는 비평본문을 우선합니다.] 1483.11.20 아이슬레번에서 출생 1484. 초여름 가족이만스펠트로 이사 1497 부활절경 마그데부르크의 학교 입학 1498 아이제나흐의 학교로 전학 1501.5. 에르푸르트 대학 입학 허가받음 1502.9.29. 학사 학위 취득 1505.1.7. 문학 석사 학위 취득 7.2. 뇌우와 서원 7.17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입회 1507.5.2. 첫 미사 1508. 겨울 베텐베르크 대학에서의 1학기 강의 1509.10 에르푸르트로 돌아옴 1510.11. 로마여행 1511.4월초 에르푸르트로 돌.. 교회사/인물.교회사.신학 2019. 5. 27.

[초대교회 교부] 헤르마스(Hermae, ?~150?)

[초대교회 교부] 헤르마스(Hermae, ?~150?) 유일한 평신도 교부이다. 주후 2세기 로마에서 활동했다. 라는 묵시록을 썼다. 오리겐과 제롬(히에로니무스)은 헤르마스가 롬 16:14의 ‘허마’라고 한다. 그러나 만약 동일인이라면 헤르마스가 150년에 살아 있었다면 최소 180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서의 허마가 아닐 것이다. 1. 생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노예로 태어났다. 로마에 거주하는 로데라는 여인에게 팔렸다. 로데는 기독교 신자였다. 그녀는 헤르마스를 사서 자유를 주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노예가 30살이 되면 해방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헤르마스는 결혼해 자녀를 두었다. 작은 농장을 소유했고, 소규묘 사업체를 경영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부와 자유를 얻었지만 가정은.. 교회사/인물.교회사.신학 2019. 5. 20.

[초대교회 교부] 히에라볼리의 파피아스(70?-156)

히에라볼리의 파피아스(70?-156) Papias of Hierapolis 히에라볼리의 감독이었으며 속사도교부이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으며, 폴리갑의 친구였고, 순교자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극히 희귀하다. 1. 생애 히에라볼리 출신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폴리갑과 함께 사도 요한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히에라볼리는 골로새, 라오디게아와 함께 소아시아 브루기아 지방에 속한다. 현대의 파묵칼레 (Pamukkale)지역이다. 터키 남서부의 데니 즐리 (Denizli)에있는 자연의 장소 명소로 자연 풍광이 좋은 곳이다. 탄산염 광물로 유명한 곳이다. 이레니우스는 파피아스를 요한의 제자이며 폴리갑의 친구라고 소개한다. 전해진 전설에 의하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빌립은 사도로 불렸으며, 그의 딸들과 함께.. 교회사/인물.교회사.신학 2019. 5. 20.

[초대교회 교부] 폴리갑(Polycarpus, 80-165)

[초대교회 교부] 폴리갑(Polycarpus, 80-165) 서머나 감독이었다. 정확한 출몰 연대는 불가능하다. 학자마다 다르나 70-165년 사이로 보인다. 사도요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빌립보 일서와 빌립보 이서를 기록했다. 그의 사상은 이그나티우스와 닮았다. 폴리갑의 생애를 다룬 을 참고 바람. [기독교고전읽기] 폴리갑의 폴리갑은 사도요한의 제자로 여겨진다. 요한은 에베소 감독이었지만 서머나와 가까와 자주 왕래했다. 폴리갑이 사도요한의 직제자 인것은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도 증언한다. 이러한 증언들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영지주의자들과 싸웠다. 교회사/인물.교회사.신학 2019. 5. 13.

[초대교회 교부]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초대교회 교부]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108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135?) 생몰연대 / 35년 또는 50년경부터 98년~117년 사이 가톨릭은 ‘이냐시우스’로 읽는다. 서머나 안디옥의 감독이었으며, 로마에서 순교 당한다. “A.D. 107년경 노령의 감동 이그나티우스는 제국 법원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다.” (곤잘레스 중에서) 이그나티우스는 속사도 교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부다. 로마 시민으로 태어났는지 정확하지 않다. 이그나티우스는 '불'이란 뜻의 라틴어 남성명사인 ignis에서 왔다. 이그나티우스는 '불 같이 뜨거운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과연 신앙에 있어서 뜨거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테오포로스로 밝힌다. 뜻은 하나님을 지고 가는 자이다.(테오-하나님, 포로스-지고가다.. 교회사/인물.교회사.신학 2019. 5. 13.

[초대교회 교부] 로마의 클레멘트(Clemens, +97/100)

[초대교회 교부] 로마의 클레멘트(Clemens, +97/100) 로마의 클레멘트(영어) 또는 클레멘스(라틴어)로 읽는다. 속사도 시대의 최초의 교부이다. 로마의 교회 장로였다. 동명이인의 교부로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가 있다. 가톨릭 교회는 로마의 클레멘트를 제1대 교황으로 소개한다. 베드로-리누스-아나클레토스-로마의 클레멘스를 이어 4대 교황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무슨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개신교는 클레멘트를 교황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감독인지도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클레멘트가 남기 문헌으로는 가 있다. 후대의 것으로 알려진 와 는 로마의 클레멘트의 저작이 아니다. 후대의 누군가에 의해 이름을 도용하면 기록된 것이다. 당대의 많은 문서들은 잘 알려진 신앙인의 이름으로 저자를 .. 교회사/인물.교회사.신학 2019. 5. 13.

존 위클리프(John Wycliff, 1324~1384), 종교개혁인물

존 위클리프(John Wycliff, 1324~1384), 종교개혁인물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생애와 사상 1. 종교개혁 이전의 역사적 상황 종교개혁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운동이 아닙니다. 중세가 초대교회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시대적 현상이듯, 종교개혁 역시 중세가 낳은 시대적 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사건은 혁명적이라 부를 만큼 중세와 너무나 다른 격변(激變)의 시기를 가져왔습니다. 종교개혁이 처음부터 폭풍처럼 몰아친 것이 아니었으며,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기대하거나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루터의 95개조 사건은 교회의 개혁과 재건을 위한 루터의 작은 소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의 건너편에서 폭풍이 될 수 있듯, 그것은 사방에 휘발성 물질이 뿌려진 곳에 .. 교회사/인물.교회사.신학 2018. 12. 12.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