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법] 다르게 봐야 다르게 읽는다
[독서법]
다르게 봐야 다르게 읽는다
어느 덧 4개월이 흘렀다. 극동방송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책소개를 하며 지난 시간을 더듬어 보니 우연히 다가와 필연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어느 덧 17회를 마쳤다. 방송 원고를 직접 작성해야 하는 난감함에 초기에는 방송시간이 다가오면 원고작성의 압박이 적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름대로 요령도 터득했다. 적게는 수십 페이지에서 많게는 수백페이지의 책을 15분 안에 소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때로는 준비한 원고가 절반도 못되어 마쳐야했고, 어떤 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난처한 적도 적지 않았다.
방송횟수가 늘어나면서 관점을 바꿔야 했다. 내용을 소개하기보다 중요한 내용을 간추리고 몇 가지의 주제로 묶어 다시 풀어내는 것이 유리했다. 오늘 방송한 <찰스 스펄전의 기도레슨>의 경우처럼 기도라는 식상한 주제를 새롭게 제시하기는 쉽지 않았다. 차별성 있는 내용으로 방송을 위한 방송으로 만들어 내야 했다. 이러한 사정이다 보니 당연하게 책을 읽는 방법이 불가피하게 바꿔야 한다.
실용적 독서가 필요한 것이다. 서평의 경우는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중심 주제와 비평할 부분을 차례대로 끌고 가면 된다. 그러나 방송의 경우 기승전결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마치 10분 설교를 작성하듯 짧은 시간 안에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핵심을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한 다음 마무리해야 한다. 생방송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준비했다 하더라도 뜻하지 않게 흘러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야말로 애드리브가 필요하다. 이러한 예상외의 반응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방송의 흐름을 상상하면서 혹시 모를 질문에 대처할만한 메모가 필수적이다.
방송을 위한 독서 읽기를 통해 책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깨닫는다. 이것 또한 독서를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다. 필요가 달라지면 읽는 방법도 달라진다. 읽는 방법이 달라지자 책의 흐름이나 내용이 기존의 읽기 법에서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신발 장사할 때는 사람들의 신이 두드러지지만 전업하여 옷장사를 하게 되면 옷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경우와 같다. 독서는 결국 독자가 속한 환경과 삶의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서평을 위해 여러 번 읽었다. 그럼에도 방송을 위해 다시 읽기를 시도하자 다르게 읽혔다. 예를 들어보자. 두 번째 장인 '고난을 극복하는 다윗의 기도'에서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기도"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갑자기 궁금해 졌다. 굴에 있을 때 지은 기도라면 굴에서 기록을 해야 하는데 무엇으로 썼단 말인가? 요즘처럼 스마트폰에 필기하는 것도 아니고, 볼펜을 가지고 메모도 할 수 없는 곳이다. 마음속에 기억해 두었다 왕궁으로 돌아와서 썼단 말인가? 두 가지 가능성이다. 다윗은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든지, 아니면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메모하는 메모광이든지.
다르게 읽기 시작하자 유난히 부각된 부분이다. 방송에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전에 읽을 때 몰랐던 부분이 보인다. 그렇다, 다윗은 메모광이었다. 하나님의 영감이 떠오르자 즉석해서 메모한 것이다. 억지스러움이 적지 않지만 새로운 발견이다. 은혜도 간직해야 한다. 은혜는 마음에 담는 것이 아니고 펜 끝에 담아야 오래간다. 다윗의 시편이 성경에 기록되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읽혀지는 이유는 그의 메모 때문이다. 다르게 읽기를 통해 다르게 보이는 실례다.
재미있는 발견이 하나 더 있다. 지난 1월에 크리스천투데이에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글을 써서 송고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제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스펄전이 로빈슨 크루소를 얼마나 좋아했고, 설교에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뜻하지 않는 발견이다. 참 이상도 하다. 분명 지난번에 읽을 때 밑줄 친 곳이다. 그 때는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다르게 읽기를 통해 발견한 곳이다.
“어려서 읽은 책이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휼륭했다. 스무 번을 읽었지만 단 한 번도 질리지 않았다. 지금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183쪽)
다르게 읽기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다르게 읽기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 필요는 우리는 다른 세계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다른 상황에서 읽으면 다른 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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