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법> 소리 내어 읽기(김무곤)
독서 소리내어 읽기
좋은 문장에는 가락이 있다. 명문일수록 소리 내서 읽으면 입에 감긴다. 나는 내가 쓴 글은 꼭 소리 내어 읽어본다. 언제나 시원치 않다. 좋은 글을 만났다 싶으면 그때도 꼭 소리 내어 읽어본다. 언제나 시원치 않다. 좋은 글을 만났다 싶으면 그때도 꼭 소리 내어서 읽는다. 소리 내서 읽다보면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지 아닐지 결판난다.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버릇을 들이면 언변과 문장이 모두 조항진다는 설도 있다. 전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모두 둘러 앉혀놓고 셰익스피어 작품을 돌아가면서 읽혔던 모양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문장과 연설이야 알려진 사실이고, 로버트 케네디를 비롯한 케네디 가 사람들이 하나같이 명연설가, 명문장가인 것은 그 덕분일까.
사실 책을 지금처럼 혼자서 조용히 독서 행위는 근대(近代)라는 시대의 산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시대까지 책은 소리내어서 읽어야만 하는 물건이었던 모양이다. 중세 이전까지는 소리 없이 혼자 책장을 넘기면서 사색에 잠기는 일은 불온하며, 그렇게 읽는 사람들은 위험한 자로 취급받았다. 예컨대 성 오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암므로시우스라는 사람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아무렇지도 않게 책을 일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당시에 책을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읽는 일은 그만큼 수상한 일이었던 것이다.
암브로시우스는 지독한 독서가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을 때 그의 두 눈은 책장을 뚫어져라 살피고 가슴은 의미를 캐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혀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나 마음대로 그에게 접근할 수 있어서 아무도 그에게 손님의 도착을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방문할 때면 우리는 종종 이린 식으로 침묵 속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그를 발견하곤 했다. 그는 절대로 큰 소리를 내어 글을 읽지 않았다.”
-알베르토망구엘(정명진 역), 「독서의 역사」, 세종서적
「독서의 역사」의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에 의하면 서구에서는 10세기까지 묵독이 보편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도 모친이 보낸 편지를 말없이 읽어 부하들을 당혹스럽게 했고, 시저도 연애편지를 소리 내서 읽지 않은 것이 특별한 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 사실 사람이 책을 ‘혼자서 조용히’ 읽게 된 것은 인간이 신에 의존하지 않고 단독자로서 세계와 마주하게 된 이후의 습관이었다.
중세 유럽만해도 그랬던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책이 소리 내어 읽어야 하는 물건이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책 읽는 소리의 낭랑함으로 읽는 자의 기품과 성정을 가늠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더구나 이 책 읽는 소리가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 듯. 정민의 [책 읽는 소리]에는 무릎을 칠 만한 사연들이 많다.
정인지의 글에는 소리에 반한 옆집 처녀가 담 사이로 그를 엿보고 흠모의 정을 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가 담을 넘어 정인지의 방으로 뛰어들자, 정인지는 그녀를 타일렀다. 그러나 그녀는 소리를 질러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막무가내로 협박했다. 정인지는 밝은 날 모친에게 말씀드려 정신 혼인의 절차를 밟아 맞이하겠노라는 말로 처져는 달래어 보냈다. 이튿날 그는 어머니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고 이사를 가벼렸다. 남은 처녀는 상사병으로 죽었다. -정민, [책 읽는 소리],마음 산책
조광조에게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그의 낭랑한 독서성에 반한 처녀가 담을 넘었다. 조광조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 돌려 보냈다. 그녀는 잘못을 뉘어쳤고, 훗날 다른 집안으로 이사갔다. 기묘사회 때 그 남편이 조광조를 해치려 하자 그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일을 이야기하며 조광조를 해치지 못하게 햇다고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독서는 묵독이 기본이다. 책을 읽는 일은 기본적으로 혼자서 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소리 내어 읽으면 아무래도 책 읽는 속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무엇보다 소리를 내고 읽을 수 있는 책이 한정되어 있다. 일본의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에 따르면, 묵독의 습관이 유럽에서 지방도시까지 널리 퍼진 것은 19세기 이후부터라고 한다. 19세기 후반 이후에 묵독이 독서습관의 중심이 된 이후, 작가도 독자의 묵독을 전제로 글을 쓰면서, 독자의 습관에 맞게 글의 내용도 ‘내면화’되어 갔다는 것이다. 즉, 소리 내어 외부에 알린 말한 내용보다는 혼자서 묵묵히 읽고 내면에 간직해두기 좋은 내용으로 책의 내용이 바뀌어갔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다. 묵독이 일반화되자 순식간에 책에 담긴 표현도 풍부해졌다고 한다.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례가 에로틱한 주제나 묘사라고 한다. 책을 내어 읽던 시대에는 아무래도 표현힌 담백하거나 우회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혼자 소리내지 않고 읽는 독자를 전제로 쓴 글은 그 내용이 훨씬 풍부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히라노 게이치로는 부끄럽지 않을 만한 지극히 건전한 내용의 책이 아니면 도저히 소리 내어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는 또 말한다.
대부분이 근대소설은 그렇게 세상에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참모습이다. 싶은 것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성대의 육성이 아니라 혼의 육성을 통해 작자의 내면에서 독자의 내면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김효순 역) [책을 읽는 방법], 문학동네
히라노 게이치로처럼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묵독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마음과 반대하는 마음이 각각 반이다. 우선 책 읽기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만남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묵독이 독서의 정석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모든 책을 오로지 묵독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소리내어 읽기의 장점은 많다. 우선 책의 내용을 빠짐없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목소리가 귀에 들리면서 지은이 특유의 문장의 호흡과 리듬을 파악할 수 있어 즐겁다. 시나 짧은 글이라면 어느 새 외워지기도 한다. 나는 학창 시절 폴 엘뤼아르의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프랑스의 단어를 외우고, 연애에도 응용하던 일거양득의 추억이 있다. 또 무엇보다도,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면, 경쟁하며 도우며 함께 읽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나는 옛날 사람들이 경전과 고전을 줄줄외운 비결이 낭독에 있다고 짐작한다.
나에게는 작은 꿈이 있다. 한 학기 동안 좋은 책 한 권을 딱 정해서 학생들과 함께 돌아가면서 낭독하는 것이다. 같은 구절을 이 사람도 읽고, 저 사람도 읽다가 중세의 교회나 조선시대의 서당채럼 모두 함께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하면서, 낭독하는 중간중간에 문장에 대한 느낌을 서로 교환하는 그런 강의를 해보고 싶다. 얼마나 많은 지식, 얼마나 새로운 지식, 어라마나 실용적인 지식을 전수하였는가를 강의 평가의 잣대로 삼는 이 시대에 선생과 학생이 몇 개월 동안 한 권의 책을 들고 함께 읽는 꿈. 그저 한낮에 꾸는 꿈일 뿐인가.
김무곤 교수는 낭독과 묵독의 차이를 통해서 구분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낭독을 권하면서 독서에서 낭독은 일거 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책을 읽고, 책을 외울 수 있다는 점이죠. 또한 묵독으로 읽는 것보다 훨씬 각인 효과가 높습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 낭독이 묵독으로 바뀌어 감으로 몇 가지의 변한들이 일어 났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읽는 속다가 훨씬 빨라 졌고, 독서가 개인화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근대가 지식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해 그것을 섭렵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하지는 현상이 독서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소멸과 개인의 등장은 그동안 암묵적인 뒷담화로만 머물렀던 에로틱한 주제나 권위에 대한 도전들이 책을 통해 얼마든지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어떤 의미에서 묵독으로의 전환은 모두가 알 필요가 없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대화나 긴밀한 이야기들이 행해진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무곤 교수는 알레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에서 예를 가져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모친이 보내온 편지를 묵독한 것, 시저의 연재편지 등이 그것입니다. 묵독은 지식의 증가를 높여주고, 더욱 개인화된 은밀한 정보등이 많아지는 것을 도와 주었습니다.
낭독 ▶ 묵독
속도: 낮은 / 높음
내용: 수준이 높거나 공적임 / 수준이 낮거나 사적임
독법: 공동체 / 개인
어쨋든 낭독과 묵독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묵독을 많이 하지만, 중요한 책이나 함께 나누어야할 책은 낭동을 통해 공유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 부분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이부분은 좀더 정리한 다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하게마 낭독의 묵독의 차이를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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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소리내어 읽는 즐거움>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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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김무곤 교수의 <종이책 읽기를 권함>이란 책에서 '소리 내어 읽는다'를 그대로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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