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복음의 공공성과 비아토르
[독서일기] 복음의 공공성과 비아토르
2017년 6월 21일
어제 서면 교보문고에 가서 몇 권의 책을 구입했다. 처음엔 후우카가 선물 받은 교보문고 5만 원 상품권을 사용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서점에 들어가 책을 구입하면서 점점 많아졌다. 오만 원을 넘기고 다시 십만 원을 넘겨 13만 원어치의 책을 사고 말았다. 그렇다고 수십 권을 산 것이 아니다. 고작해서 7권 정도이다. 그런데 한 권 값이 3만 원에 가까이하니 '불과 몇 권'이지만 돈은 십만 원을 간단히 넘어 버렸다. 그러나 어쩌랴 사야 할 책이라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맞는 법. 난 그렇게 작정하고 있던 책을 찾았다.
바로 '공공성의 복음'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공공 신학'이다. 공공 신학을 단 한 마디로 정의하기를 어렵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공공성은 사적이 아닌 공적인 것이며, 개인적이 아닌 공동체적인 것이다. 필자의 좁은 소견인지는 몰라도 공공 신학은 오래전 사회참여와 사회복음의 한 부분이자, 구약이 강조한 사회적 정의를 내포하는 말이다. 공공 신학이란 키워드로 찾으니 몇 권이 검색되었지만 유일한 재고는 김근주 교수의 <복음의 공공성>(비아토르)이다. 지하 1층의 F1 코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넓은 교보문고 안에 기독교 서적은 전부 합해도 고작 200권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복음의 공공성> 곁에 또 다른 비아토르의 신간 자크엘륄의 <자유, 사랑, 능력에 관하여>가 있어서 함께 집었다.
신대원 시절 박건택 교수와 함께 자크 엘륄을 청강하면서 한껏 매료되었던 생각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얼마나 자크 엘륄에 빠져들었든지 자크 엘륄에 관한 거의 모든 책은 구입해 읽은 것 같다. 지금은 대장간에서 정식 계약을 통해 독단적으로 출간하지만 당시만 해도 여러 출판사에서 자크 엘륄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가장 중요한 책은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었고, 한울에서 출판된 <기술의 역사>였다. 물론 이 책 외에도 자크 엘륄의 책들은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는 도끼와 같았다. 자크 엘륄의 가장 대표적인 책이자 중요한 책은 발렘 반더버그가 엮은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이다. 대장간에서 2010년 신광은 김재현이 공역해 출간했다. 신광은이 자크 엘륄 사상을 정리한 <자끄 엘륄 입문> 또한 중요한 입문서이다.
자크 엘륄의 글을 혁명적이고 날카롭다. 벌써 14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당시 자크 엘륄을 읽을 때 기존의 복음과 성경에 대한 상식들을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마치 포클레인으로 오래된 건물을 무자비하게 부수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성경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신대학교와 총신이라는 극보수 신학만을 접한 나에게 자크 엘륄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존재였다. 특의 <뒤틀려진 기독교>와 <원한과 행함>은 기존의 기독교가 가진 가면을 벗겨내 버렸다. 발가벗겨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땅이 무너지는 느낌이랄까? 하여튼 당시의 느낌이 그러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잊혀진 소망>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서구의 배반><자유의 투쟁> <선전> <폭력> 등... 그의 글은 빈틈 없이 조밀한 논리 체계를 가지고 허술한 보수신앙의 아집으로 뭉친 나를 뭉개는 듯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일은 자크 엘륄의 책을 거의 읽고 나자 나의 신앙은 더 보수적이 되었고 탄탄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자크 엘륄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에 의하면 글은 날카롭고 까탈스러워 보이지만 개인적인 성격을 소탈하고 수줍음이 많았다고 한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언제나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프랑스의 전형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가졌다고 한다. 즉 그는 인간적인 사람인 것이다.
이번에 비아토르에서 자크 엘륄의 책이 두 권 번역 출간되었다. 한 권은 이번에 구입한 <자유, 사랑, 능력에 관하여>이고, 다른 한 권은 <부와 가난에 대하여>이다. 필자의 엷은 소견으로 자크 엘륄을 바르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소견을 피력한다면, 자크 엘륄은 개인의 타자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공공성을 추구한 인물이다. 공공성은 전체주의가 아니라 지역주의에 가까우면, 전제주의(專制主義) 가 아닌 민주주의자였다. 그러나 엘륄을 연구한 학자들은 '기독교 아나키스트'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국가나 다수에 의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참 인간이란 휴머니즘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그의 저작들에 포괄적으로 스며있다. 기술과 정치, 폭력과 돈에 대한 사유 속에 인간 본성에 천착하고 있다.
필자가 구입한 <자유, 사랑, 능력에 관하여>은 철학적 사유가 아니다. 직접적으로는 성경 해석에 가깝다. 목차만 들여다봐도 그가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 속에서 바른 인간을 찾아 갈구했는지 알 수 있다. 서문을 쓴 빌렘 반더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까닭에,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길을 바꾸는 변화의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길을 바꾸는 변화의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더욱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 시대를 사는 동안 계시를 '우리의 발에 등불'로 삼고 걸어가는 것 자체가 자크 엘륄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이다. 우리가 해방된 것은 우리의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다. .... 오늘 우리는 과학, 기술, 일시적인 것, 국가를 비롯해 곳곳에 만연한 선전이 지배하는, 이른바 세속 시대에 이렇게 하라는 부름을 받았다."(29쪽)
자크 엘륄을 접한 사람들, 읽은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체계화시키고, 획일화된 정치와 문명, 사고체계 등을 거부하고 '사람'을 이야기한다. 사람, 즉 관계가 바른 것이다. 천국을 정의하면서 그는 '천국은 천국이 세우는 정의와 사랑의 관계'(281쪽)로 부른다. 또한 '천국은 세상에 현존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고 역설한다.(282쪽) 천국은 미래가 아닌 현재다. 그는 현재를 실현된 미래의 미리 옴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미래라는 천국의 실천의 장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복음의 공공성'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김근주는 타락을 '관계의 파괴'(84쪽)로 해석한다. 관계의 파괴는 타인을 사적으로 수단화 시키며 관계를 물화 시킨다. 즉 이용하는 것이다. 가인의 살인과 라멕의 살인은 관계의 파괴로 인한 세상의 타락이다. 회복은 관계의 회복이며, 삶의 회복이다. 김근주는 공공성을 공동체를 넘어 사람의 창조 자체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존재'(140쪽)로 확장하여 행함 자체가 필연적으로 공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즉 삶이 공적인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 보건대 공적인 삶은 '사랑의 헌신'을 말한다.
"결국 의인들의 세상은 개인이나 집단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서로 동의하고 공감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세상이다."(143쪽)
그동안 복음은 공공성과 격리된 체 존재했다. 마치 공공성과 복음이 원수인 것처럼, 때로는 적대적인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복음은 공공적이고, 공공성은 복음을 통해 실현되어야 함을 배울 때가 된 듯하다. 김근주는 결론에서 '휴머니즘이야말로 신본주의의 핵심'(429쪽)이 아닐까 의견을 타진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본주의는 휴머니즘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신이 사람이 된단 말인가? 참 사람이 하나님이 창조한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김근주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그러므로 이웃 사랑, 남을 대접하는 사랑은 우리 곁에 있는 연약한 이웃을 돌보는 삶으로 구체화되며 이것이야말로 공적 신앙의 본질적 요소다."(432쪽)
-공공신학 관련 서적
문시영 <공공신학이란 무엇인가?> 북코리아 2007년
새세대 교회윤리연구소 <공공신학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북코리아 2008년
정종훈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공공신학> 한국장로교출판사 2009년
임성빈 <21세기 한국사회와 공공신학>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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