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개혁주의 교의학과 번역의 맛
[독서일기] 개혁주의 교의학과 번역의 맛
2017년 6월 19일 월요일 맑고 더움
이제 완연한 여름이다. 한 낮의 양지바른 곳에 주차된 차 안으로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덥다. 오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말을 들었다. 나의 바지를 빨아 다림질을 하던 아내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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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짧아서 다림질하기는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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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그렇다. 나는 다리가 짧다. 신장은 고작 167cm이며, 몸무게는 무려 67kg이나 나가는 뚱땡이다. 사실 이건 말 안 하려고 했지만 수일 전에 김지혜 자매의 결혼 참석을 위해 찾아온 김민철 (Minchul Kim) 목사님과 강인구 장로님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 두려웠다. 가능한 둘에게서 멀어지고 싶었지만 김민철 목사가 내 옆으로 오는 바람에 내 짧은 신장이 탈로나고 말았다. 스스로는 평균키로 자부하며 살아왔던 나에게 두 분은 삶의 의미를 빼앗아갈 만큼 신장이 크다.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는 어느 성자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다. 난 다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신장만큼은 절대 비교하지 않기로. 그들과 멀리 떨어져 살기로 했다. 그런 나에게 오늘 치욕스런 말을 던진 한 여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뭘까? 사랑의 웃음. 아니면 비 오는 날 웃는 그? 웃음. 하여는 그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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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짧아서 다림질하기는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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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면서 공적으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혼수도 없다. 유일한 예물은 반지 하나다. 나의 반지엔 그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녀의 반지엔 나의 이름 이니셜이 적혀 있다. 우린 서로의 이름을 가졌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그녀는 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난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나의 이름을 부른다. 이름은 나의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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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드러내기 위해 '나의 이름'을 소중히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의 이름은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불리고,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서 가장 많이 불린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타인의 것이다. 우린 종종 그것을 망각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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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이름은 해석된 이름이며,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 이름은 존재가 되어 존재의 과거를 호출한다. 나는 평생 나의 이름이 아닌 타인의 이름을 부르며 산다. 난 오늘도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의 이름은 'huuka' 한자어로는 풍향(風香)으로 바람의 향기란 뜻이다. 그녀에게 항상 향기가 있다. 사랑과 그리움, 애틋함과 따스함의 향기가 있다. 난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왠지 모른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아이들은 전도사님이라 부르지 않고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를 일찍 여읜 그녀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어 주었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 낸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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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짧아서 다림질하기는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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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이기적이고 기계적 효율을 사랑하는 듯한 뉘앙스다. 오늘 왠지 그녀에게 아름다운 향기가 아닌 키 작은 남편을 놀리는 추락한 천사의 악취가 난다. 아니면 모두에게 향기를 날리면서 키 작은 나에게 악취만 뿜어 대는지... 반바지 입은 나의 짧은 다리가 오늘은 왠지 미안해진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녀의 말속에 사랑의 향기가 숨겨져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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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 처음으로 가정 예배를 드리고 두 아들을 먼저 시골집으로 보냈다. 순천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부산으로 올라왔다. 사랑하는 후우카와 한 주를 보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사실 아이들은 속으로 엄청 좋아하는데 내가 없으면 자유를 얻기 때문이다. 약간 억울하긴 하지만 품을 조금씩 떠나가는 아이들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사랑의 기쁨임을 조금씩 알 것 같다. 돌아가면 더 잘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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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목사님께 주문한 수미( Superior) 감자를 삶아 먹어보니 맛이 일품이다. 하얀 속살이 소녀의 수줍음 같고, 부서지기 쉬워 여린 후우카의 마음 같다. 하지만 탄수화물 함량이 놓아 달고 한랭한 기후에서도 잘 자라면, 비타민C가 풍부하고 칼륨과 식이 섬유가 몸속의 노폐물을 배출해 주기 때문에 피부미용에도 좋다. 난 수미 감자를 김수미 씨가 브랜드 한 감자로 알았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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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카와 함께 조직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주의 신론>을 구입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책은 부흥사 개혁사에서 출간된 <개혁교의학> 2권과 동일한 것이었다. <개혁주의 신론>은 1987년 화란에서 영역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당시 번역했던 이승구 교수는 말미에 화란어를 참고하지 못하고 영역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뜻이 곡해될 가능성에 대해 염려한다. 번역자의 솔직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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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부흥과개혁사의 <개혁교의학>은 박태현이 화란어를 직역한 것으로 원어에 충실한 번역본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두 권을 서로 비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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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C / 이처럼 성경은 지식을 묘사하기 위해 피조계 전 영역, 특히 사람들을 다 불러낸다. 이처럼 신인동형론은 끝없는 듯하다. ... 비록 그 자신으로서는 '이름이 없으실 지라도' 계시에서는 '많은 이름을 가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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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과 개혁 사 / 전 피조계, 자연의 모든 왕국 전체, 무엇보다도 인간 세계는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 신인동형론적 표현을 사용하는 데 거의 한계선이 정해지지 않았다. ... 하나님은 비록 스스로 이름이 없다 할지라도, 자신의 계시에서는 많은 이름을 갖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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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C 번역은 NIV 느낌이고, 부흥과 개혁사는 NASB와 비슷하다. CLC는 중역된 것이라 오류가 많을 것 같은데 필자의 개인적 판단으로 거의(모든 문장을 확인하지 않아서 다 모르지만) 모든 문장이 정확하게 번역된 듯하다. 부흥과 개혁사의 번역은 직역된 것이라 읽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CLC의 번역이 훨씬 잘 된듯하다. 그러나 가치를 따진다면 부흥과 개혁 사의 책이다.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눈물을 머금고 부흥과 개혁사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부탁하 건데(뭐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부흥과 개혁사의 <개혁교의학>이 재판된다면 글을 전반적으로 다시 수정하고, 내용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다면 직역이 아닌 '의역'을 선택 주었으면 한다. 성경이 아닌 이상 직역보다 의역을 선택한다면 독자들의 사랑을 훨씬 더 받지 않을까? 어쨌든 헤르만 바빙크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부흥과 개혁사와 번역자인 박태현 목사님에게 고마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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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짧다. 그러나 가끔 좋은 일도 있다. 다름질 하기는 쉬우니까...
#다름질 #헤르만_바빙크 #개혁주의 #개혁교의학 #신론 #조직신학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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