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서평과 사진
[독서일기] 서평과 사진
2017년 6월 14일 화, 맑음
서평가는 서평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맞다. 서평을 잘 써야 한다. 그러나 사진까지 잘 찍는다면 더 좋다. 아침, 아이들을 등교 시키면서 장흥 드롭탑 구석진 곳에 둥지를 틀고 6시간을 버텼다. 작은 빵과 커피 한 잔으로 말이다.
행복했다. 누군가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일 마감일인 생삶 원고에 집중했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행복하다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이 들었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삼각대를 세웠다. 가져간 책을 꺼내 여기저기에 놓고 앵글을 들여다본다. 화이트 밸런스를 맞추고, ISO를 200으로 떨어뜨리고, 책과 어울리는 조명 아래로 책을 가져갔다. 그리고 한 컷 한 컷 담아냈다. 맘에 들지 않으면 장소를 바꿔가며 다 찍었다. 전에 D-Lighting 기능을 강으로 해 놓은 것을 잊고 계속 찍었더니 사진이 너무 편편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기회는 넘어갔다.
사진작가는 피사체를 본다. 빛을 알고 구도를 이해한다. 화각을 생각하면서 접근한다. 그늘이 나은지, 빛이 충분한 곳이 좋은지를 안다. 이 모든 목적은 단 하나, 피사체가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다. 가장 좋은 사진은 피사체 자체가 가장 강열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사진작가는 의도한 대로 찍지만 추제는 작가가 아닌 피사체여야 한다.
루터는 말한다.
"덕망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여, 그(성경) 안으로 들어가라, 그 안으로 들어가라!"
사진작가는 사진으로 말한다. 성경은 성경으로 충분하다. 교황 따위는 필요치 않다. 루터는 그것을 확신했고, 그 확신 가운데 번역에 매달렸다. 그는 성경 전문가로 자처하지 않았지만, 다른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루터의 단점이자 강점이다. 그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을 우리는 전문성이라 말하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전문가로 부른다. 루터는 성경 전문가다.
서평가는 표지만 보고도 서평을 쓸 알아야 한다. 그건 선입관이 아니라 저자의 이력과 주장, 논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평은 단순한 요약이 아니다. 논지를 파악하고 딴죽을 걸거나 부당하다고 외치거나,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시해야 한다. 사진작가는 사진 뒤에 숨지만, 서평가는 서평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자신을 숨기는 서평가는 비겁한 자이고, 약삭빠른 자이며, 간교한 자다. 너는 틀렸다.라고 분명히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사가지 없는 언어 사용은 금물이다.
그렇다고 서평가가 중심이 되거나 주체가 된다면 그릇된 서평이다. 서평은 서평 하는 바로 '그 책'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평은 논박이며, 논쟁이자, 일종의 전쟁이다. 서평을 통해 독자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서평가는 영원히 마르지 않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장담은 못한다.)
새 물결플러스의 Spectrum 시리즈는 일종의 논쟁이자 전쟁이다. 동의하거나 반대하고, 반격하거나 타협한다. 아마도 이번에 읽은 <교회, 국가, 공적 정의 논쟁>은 지금 우리나라의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이해하는 지도와 같은 책이다. 교회란 무엇이며, 국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난 아직도 자끄엘륄의 편에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가장 공감을 일으킨 글은 J. 필립 워거먼의 <사회정의 관점>인데 그중에도 바로 이 문장은 심쿵하다.
"이러한 예들에서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은 교회는 행동 없이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381쪽)
설교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도이자 주석이다. 그다음은 행동하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진리는 죽은 것이다. 사랑은 헌신이고, 순종은 희생을 요구한다. 교회는 이성과 논리적 타당성을 가진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태그도 안 했는데, <루터, 루터를 말하다>를 올렸을 뿐인데 강인구 장로님이 태그 되는 이유는 뭘까? 신기하고 오묘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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