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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2013년 12월 6일 - 용서하시는 하나님

샤마임 2013.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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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2013년 12월 6일 금

 용서는 영원한 현재형이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언어는 무엇일까? 나는 단언코 용서라고 생각한다. 용서야 말로 인류의 역사를 지탱하고 보존한 단어다. 살아온 궤적을 살펴 보아도, 살아갈 소망을 숙고해 보아도 용서야 말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단어다. 예수님도 친히 일흔 번에 일곱번씩 용서하라고 하셨다. 하루에 490번을 용서하기는 만무하다. 그럼에도 무리한 요구를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용서야 말로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이며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제자도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용서에 대한 요구는 두 가지 차원을 가진다. 하나는 용서를 받았으니 용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용서하지 않는다면 너도 용서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미 하나님께 용서 받았음에도 타인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이미 받은 용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용서는 영원한 현재형이다.



극동방송에 출연하면서 책 읽기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겨우 3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앞으로 소개할 책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되돌아보며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주제로 선별해야하니 더욱 부담스럽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방송이다보니 책을 선별하는데 애를 먹는다. 일반 서적은 안 되고, 진보적 성향의 책도 안 된다. 적당한 분량과 적당히 은혜스러운 내용을 골라야 한다. 그렇다고 철지난 고전만을 고집하기도 쉽지 않다. 기독교 서점에 들렀다. 맥스 루케이도의 <하나님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포이에마>와 존 맥아더의 <용서>를 골랐다. 한 해를 돌아보며 관계를 정리하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성실한 은혜를 감사하고 싶다. 



이십일 후면 성탄절이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사건이다. 성육신 사건은 인류 역사의 정점이자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나 다름 없다. 요한복음 3:1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기에 독생자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선언한다. 성육신은 타락하고 멸망받을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긍정이며, 용서이다. 용서함으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다. 용서는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용서에는 희생이 따르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용서는 사랑하는 것이며, 머뭄이 아닌 행동이며, 과거를 넘어 현재와 미래를 포괄한다. 용서는 통전적이며 통전적인 사건이다.


용서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이듯 용서 또한 하나님의 본성이다. 성경을 요약하면 '사랑'이란 한 단어로 축약된다. 용서는 이천년전 십자가에서 마무리 되지 않았다. 십자가의 용서는 지금 내가 여기서 타자를 용서함으로 새로워 진다. 이것이 은혜요, 용서의 현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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