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 씨와 연애하기 /이상예 / 세움북스
로고스 씨와 연애하기
이상예 / 세움북스
성경 묵상, 이제 꽤 익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묵상은 조용히 깊이 생각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성경에서는 묵상을 ‘되뇌다’, ‘반복하여 중얼거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복하여 생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묵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묵상은 생각에 집중되어 있다면 구약의 ‘하가’라는 묵상은 몸과 마음이 함께 생각하고 체득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묵상은 왜 해야 할까요?
묵상과 비교할만한 것이 성경을 통독하는 것입니다. 성경 통독은 성경전체를 통으로 읽어 나가는 것이고, 묵상은 성경의 일부분을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독서에도 많은 책을 읽는 법과 한 권의 책을 반복하여 읽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 다 상황에 따라 필요합니다. 묵상은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독서법처럼 몇 구절이나 한 단락을 집중으로 생각하고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독서백편의자현이라 했듯이 모르는 내용도 여러 번 반복하여 읽으면 뜻이 통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 역시 묵상을 통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거나 깨닫지 못한 성경의 난제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말씀이 나의 생각과 삶 속으로 스며들어 오도록 만들어주는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주기적으로 성경을 통독하고, 날마다 시간을 정해 성경을 묵상하다보면 성경의 숲과 나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됩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말씀이 인생의 길을 인도하고, 자신을 사로잡아 하나님께 붙들린 삶이 되게 합니다. 이것으로 왜 묵상을 해야 하는가는 답이 된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한 권의 성경 묵상 집을 소개할까 합니다. 케냐 선교사님으로 사역하고 계시는 이상예 선교사님의 <로고스 씨와 연애하기>(세움북스)입니다. 이상예 선교사님은 아내이자 엄마이고, 선교사입니다.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중 신학 공부를 하다 정체성이 흔들려 고민을 하다 성경 묵상을 통해 소명을 되찾은 경험이 있습니다. 성서유니온선교회의 <어린이 매일성경> 고학년용을 집필하고 있으며, 미국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은 지성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상예선교사님의 묵상집은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녀는 왜 선교사가 되었을까요? 하필이면 케냐 선교사로 말입니다. 서두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고스(Logos, 말씀)씨와 연애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즉 말씀 묵상을 하다 케냐 선교사의 소명을 발견하고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선교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낯선 땅에서 나그네(외국인)로 살아가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로고스 씨 없이 사는 삶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위험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그네가 되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자신의 소명의 원천이요, 삶의 근거가 되는 말씀 묵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묵상도 마찬가지죠. 권태가 끼어들고, 실망도 찾아오고, 미움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으로 화해합니다. 말씀은 삶의 중심이 되어 선교사님을 인도해 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의 묵상은 조금씩 엇나가는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아 줍니다.
이상예 선교사님은 묵상을 통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았고, 날마다 묵상함으로 큰 죄에 빠지지 않게 삶을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말씀 묵상이 주는 기본적인 도움입니다.
이 책은 네 가지 큰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화,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낢마다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 가려는 몸부림입니다. 일상, 그리스도인의 일상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현장이며 사역터입니다. 일상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공동체, 관계는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사랑은 공동체를 통해 증명되며,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고 위로하고 격려함으로 돈독해 집니다. 선교와 사역,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부르심의 현장입니다. 이상예 선교사님은 이러한 네 가지 핵심 주제를 묵상의 방향으로 정하고 차곡차곡 풀어 나갑니다.
제가 이상예 선교사님의 묵상집에 푹 빠진 이유는 신학적 바탕이 깊이 스며들어 있으면서도 현실에 깊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풀어 나가는 것 같은데 어느새 성경의 사건과 인물이 지금 저의 환경과 모습이 되어 나타납니다. 그래서 화들짝 놀라곤 합니다. 예를 들어 첫 장 ‘솔로몬 행각 거닐기’에 보면 두 단락으로 나누었습니다. 앞 단락은 가슴에 돌을 품고 다니는 유대인과 그들을 거절치 않고 만나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뒷단락에서 마음속에 숨겨둔 나의 상처 이야기로 슬며시 바꾸어 놓습니다.
“그분이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을 때, 나는 잠자코 뒤를 따랐다. 뒤에 남기시는 발자국마다 양에 대한 사랑이 묻어 있었다. ... 그분이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따뜻했다. 다시 한차례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한동안 상처를 핥은 후에 지나갔다. 진물이 꾸덕꾸덕 마르기 시작했다.”(23쪽)
한편의 서정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의 치유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기존의 교훈식의 묵상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상예 선교사님은 깊은 성경의 우물에서 시원한 생수의 언어를 퍼내는 언어의 마술사입니다. 몇 문장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는 과학적, 지시적인 언어로 포획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관계적인 언어로 만날 수 있는 인격이시기 때문이다.”(20쪽)
“낮의 아들이 되지 못함은 두 마음 때문이다. 빛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 서있다.”(43쪽)
“염려는 흔한 인생의 재료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여러모로 마음을 써서 걱정하는 일은 케냐의 옥수수나 수쿠마(케일 종류)처럼 예사롭다.”(72쪽)
형이상학적 신학의 교리들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언어들로 풀어냈습니다. 그래서 인지 이상예선교사님의 묵상집을 읽고 있으면, 나도 그곳에 있는 것처럼 동화되고, 남이 아닌 나의 이야기로 친밀하게 다가옵니다. 선교현장인 케냐의 사진들은 낭만적이면서도 애정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사진도 이상예선교사님이 직접 찍은 것들입니다. 표지에 <묵상, 시가 되고 수필이 되고 노래가 되다>라고 적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말이 진심임을 알게 됩니다.
제가 손을 크게 다쳐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이 책을 읽었는데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내와 사별한 후 고작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라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렸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이러한 갈등과 우울감에 빠진 나에게 소명을 일으켜 세워주고 살아갈 힘을 주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말씀 속으로 빠져들길 원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이글은 CTMnews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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