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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장 주석 강해

샤마임 2022.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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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장 주석 강해

1-8절 하나님의 신실하심

로마서 3: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나음' 토페리손(τὸ περισσὸν)은 일정 분량을 초과한다는 '페리소스'(περισσός)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대인의 나음은 다른 민족에 비해 유대인이 받은 특별한 사랑을 말한다. 할례 역시 특별한 사랑이다. 유대인들은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것은 맞다고 동의하는 동시에 약간의 조롱이 섞여 있다. 진짜 나을까? 라는 묘한 의미다. 3장 중반이 후 그들의 나음은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로마서 3: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범사에 많으니. πολὺ κατὰ πάντα τρόπον. 관용적 표현으로 수많은 장점을 지녔다는 의미다. 유대인은 율법 계시를 받았다. 어느 민족도 누리지 못한 특혜다.

로마서 3: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어떤 자'는 모호하지만 문맥상 유대인들이 확실하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사를 부정한다. 그 일로 하나님의 미쁘신-신실하심을 폐하지 못한다. 미쁘심(πίστις)은 유대인들에게 경험적이지만 헬-로마는 경험과 분리된 지식과 연관된다. 바울은 경륜적 의미로 히브리적 믿음을 말할 것이다. 즉 누군가의 불신이 하나님의 (신실한πίστις) 언약을 폐기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로마서 3: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렇지 않다(μὴ γένοιτο·)는 문자적으로 강력한 부정이다. 즉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다(3절)과 통한다. 그러므로 신실(피스티스)하시다.

바울은 구약을 상당히 자유롭게 인용한다. 문자하나하나에 주의한다는 개념은 후대에 왜곡된 것이다. 신약의 모든 구약은 70 인경에서 그것도 직접이 아닌 간접으로 자유롭게 변형하여 인용하고 있다. 천상의 법정에서 의롭다 함을 받게 된다. 여기서 '주'는 예수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 부분은 종말론적 칭의로 연결된다.

  • 시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로마서 3: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4절의 추가 설명이자 상세히 한다. 불의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다는 말은 사람이 계명을 어김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다.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에 '진노'를 내리신다. 불의는 언약적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언약 배반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범죄 하고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렸다고 말한다.

우리가 무슨말을 하리요 τί ἐροῦμεν 바울은 이 표현을 매우 즐겨 사용한다.

로마서 3: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그렇지 않다(μὴ γένοιτο·)는 문자적으로 강력한 부정이다. (4절과 동일) 언약을 배반한 자들에 대한 심판에서 전 인류적 심판자로 나아간다.

세상 코스모스(κόσμος)를 멸망한 세상 등으로 부정하게 평하가는 것은 부당하다. κόσμος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우주를 말한다. 하지만 피소된 세계이므로 멸망을 전제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악의적으로는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단어는 중립적이며 문맥에 따라 악한 세상이 되거나, 일반적인 세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요한복음 3:16에서는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다. / Οὕτως γὰρ ἠγάπ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κόσμον,

 

로마서 3: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하나님의 참되심'는 헬라 관념이 아니다. 히브리적 개념에서 가져온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말한다. 자신의 거짓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나게 한다면 가정이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거짓말-참되심은 정면으로 대립합니다.

로마서 3: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바울이 비방을 받는 이유는 그가 율법을 버리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라 말한다. 할례자들의 비방과 모함이다. 실제로 그들의 눈에는 바울의 그러한 가르침이 하나님과 대립된다고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 안 것이다. 바울은 그들이 정죄받아 마땅하다 말한다.

 

9-20절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로마서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우리'는 애매하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함께 타자로 보기 때문이다. 바울은 우리를 로마교회를 비롯한 기독교인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의 생각은 명백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다.

 

10-18절까지는 구약에 기록된 내용은 편의대로 가져와 인류를 스케치하고 있다.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전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로마서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로마서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 시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 시 14: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 시편 5: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로마서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 시 10:7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로마서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 잠언 1:16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로마서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로마서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 이사야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 이사야 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로마서 3: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36:1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하나님의 의

로마서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알거니와'는 논리적 변증 서언이다. 율법이 말하는 것은 율법 아래 즉 율법과 상관있는 유대인들에게 향한 것이다. 일반 이방인들과는 율법과 아무 상관이 없다.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의 행위는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 바울은 10-18절의 구절을 통해 모든 인류가 죄인임을 증명했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 있어서도 그는 죄인이다. 결국 율법을 죄를 깨닫게 됨을 말한다. 

 

21-31절 그리스도의 속량

로마서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의'는 법정적 용어이며 그렇게 일어야 한다. 칭의와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의 한 의는 하나님을 안에 있는 의로움이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 외'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마치 예수님이 레위인이 아니지만 제사장이듯,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외의 다른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나타났다'는 완료형으로 이미 나타났음을 강조한다.

로마서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율법을 통한 의가 아니다. 율법과 상관없는 의다. 율법과 상관없으니 유대인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으로 포괄하는 의가 된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못한다는 '휘스테레인'은 부족하다 모자라다 충분하지 않다이다.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 현현-영광 앞에서 도망간다. 그러나 처음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강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처음 아담과 하와가 입었던 빛의 옷은 하나님의 영광의 반영이다. 하지만 그들은 죄를 지음으로 빛이 벗겨져 하나님의 현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현현을 견뎌내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다.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구약의 화목 죄는 특정한 죄가 아닌 전체의 포괄적인 죄에 대한 제사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제사이다. 화목제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지은 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르지만 하나님 아신다. 이러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도록 위함이다.

 

로마서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예수로 인해 하나님은 죄인들의 죄를 심판하신다. 또한 그렇게 하심으로 긍휼과 사랑을 성취하신다.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은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산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게 한다. '의롭게 하려' 'δικαιοῦντα'는 현제시제로 지금 의롭다는 뜻이다. 'δικαιόω'는 의롭다는 법정적 선언이므로 지금이다.

로마서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믿음이 강조된다. 의롭게 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행위로냐'는 유대인을 향한 행위에 대한 자랑이다.

로마서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사람의 의로움은 결국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것이다.

로마서 3: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놀라운 선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 만의 하나님이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라 선언한다.

로마서 3: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오직 믿음으로이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의롭다 하실'의 '디카이오세이는 미래 시제로 종말론적 약속이다. 이중칭의 논쟁의 불씨(바울의 새 관점) 

로마서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율법을 세운다는 말은 이방인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향한 것이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버린 것이 아니다. 착각하면 안 된다. 바울도 율법을 지켰다. 복음은 율법과 다른 길이다. 유대인들을 율법을 지켰지만 예수를 믿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율법은 율법을 의존하는 것을 버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기존의 율법을 지켰다.

 

 


로마서 장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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