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주석 강해
로마서 4장 주석 강해
로마서 4장의 간략한 주석과 강해입니다. 4장에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신약의 믿음이 갖는 특징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로마서 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3장의 내용을 강화하기 위한 도입 질문이다. '우리 조상'은 화자인 바울의 조상 즉 유대인이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정체성이자 근본이다.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설명하여 유대인들이 잘못된 성경해석을 꼬집는 동시에 이방인의 정당함을 말한다.
얻었다(εὑρηκέναι)는 유레카 발견하다는 뜻이다. 왜 얻었다고 번역했을까? 구약에서 발견하다는 빈번하게 사용된다. 완료 시제로 이미 완성된 아브라함의 경험을 공유한다.
'우리 조상'은 언어유희적이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우리 조상'을 바울이 사용하여, '그래 너희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아브라함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내가 알려주마'라는 의도가 깔려 있다.
로마서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행위'는 곧 율법의 행위를 암시한다.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로답함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자랑할 것이 없다. 그러니 너희도 하지 마라. 아브라함이 율법의 행위로 의로다함을 받을 수 없는 모세의 율법은 아브라함 이후 거의 430년 후에 생겼기 때문이다.
로마서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기록되었으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의롭게 된 사건을 가져온다.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
-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헬라어는 바울이 70인 역을 인용했음을 드러낸다.
의로 여겨진 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로마서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로마서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삯 미스도스는 대가이다. 노동력을 지불하고 그에 상응하는 품삯을 받는다. 일종의 교환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보수가 왼다. 하지만 일하지 않아도 받았다면 그것은 선물이다. 의는 거래가 아닌 일방적인 선물이다.
로마서 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로마서 4: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로마서 4: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 시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 시 32: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LXX 31:1) τῷ Δαυιδ συνέσεως μακάριοι ὧν ἀφέθησαν αἱ ἀνομίαι καὶ ὧν ἐπεκαλύφθησαν αἱ ἁμαρτίαι
- (LXX 31:2) μακάριος ἀνήρ οὗ οὐ μὴ λογίσηται κύριος ἁμαρτίαν οὐδὲ ἔστιν ἐν τῷ στόματι αὐτοῦ δόλος
로마서 4: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이 복(ὁ μακαρισμὸς)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복이다. 아브라함이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을 때 이므로 아브라함은 무할례자였다.
로마서 4: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로마서 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무할례시에 받은 아브라함의 복은 지금의 무할례자들이 그 복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말한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아브라함이 받는 복의 실체이다.
로마서 4: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아브라함으로 무할례자, 이방인으로서의 복이다. 유대인 즉 할례를 그 이후이다. 할례를 결코 아브라함의 믿음을 앞서지 못한다.
로마서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다시 율법으로 돌아간다. 아브라힘이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율법과 상관없는 복이다.
로마서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법은 역행되지 않는다. 믿음이 먼저고 그다음이 율법이다. 만약 율법에 속한 자가 상속자가 되면 하나님의 약속은 잘못된 것이다.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로마서 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다른 의미에서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 율법의 기능은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한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삯을 위한 것으로 거래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약속이며 선물이다.
중앙선이 없으면 중앙선 침범도 없다. 신호등이 없다면 신호 위반도 없다. 율법은 결국 종속하고 제한하며 진노를 불러일으킨다.
로마서 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상속은 믿음으로 가능하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면 유대인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니 당연히 믿음으로 상속이 가능하다. 유대인들이 배제된 것이 아니다. 차별이 없어진 것이다.
로마서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καλοῦντος) 이시니라
믿음에서 더 올라간다. 그다음은 하나님이 창조적 능력이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과 맞닿아 있다.
부르신다는 칼레오(καλέω)는 말씀하시다와 치환된다. 부르심은 곧 말씀하시다이다. 말씀은 존재이다. 창조는 존재론적이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과거형이 아니다. 빛이 있다이다. 빛이 있다(예히)는 미완료형으로 계속된 - 계속될 미래형으로 번역한다. 즉 하나님은 한 번 부르시면 계속 있게 된다.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אֹ֑ור וַֽיְהִי־ אֹֽור׃
로마서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을 때 믿었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존하여.
로마서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은 무지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다. 아브라함은 자신과 사라의 잉태 불가능성을 알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을
로마서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로마서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로마서 4: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결국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그를 의롭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의는 무할례시에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신뢰한 것이다. 바울은 믿음의 중심을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에 두고 있다.
로마서 4: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로마서 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바울은 아브라함에 대한 믿음의 논증을 마친 다음 곧바로 현재로 끌고 와 무할례자들인 이방인들에게 적용시킨다. 죽음에서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은 곧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하나님이다. 그러니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될 것이다. 놀랍게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부활을 능력으로 치환시킨다.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동전의 양면이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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