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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의 통큰LA갈비와 소비자 심리

샤마임 2011.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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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큰 치킨으로 시끄러웠던 롯데마트가 이번에는 '통큰 LA갈비'로 다시 대중매체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롯데마트는 6일부터 '통큰 LA갈비'라 부르는 미국 수입산 갈비를  100g당 1250원에 판매하고있다.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개장 한시간 만에 동이나고 말았다. 어제(8일)도 역시 '통큰 LA갈비'는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 상품을 내어 놓고 수많은 사람들을 마트로 끌어 들인다음 다른 물건을 팔자는 속셈이다. 이러한 계산은 대형마트가 아니더라도 일반 작은 마트나 슈퍼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는 장사수완이다. 심지어는 원가이하로 가격을 떨어뜨려 손해보는? 것처럼 꾸미는 곳도 있다. 그 물건 하나만 본다면 당연히 손해다. 그러나 그 마트에 들어간 소비자가 그 물건 만을 사들고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기정사실이다. 그것을 노린 것이다. 일단 끌어 들이고 보자는 속셈인 것이다. 
사진출처[서울신문]
대형 마트에서 국내 3위인 롯데마트가 이러한 무리수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글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롯데마트의 '노이즈 마케팅'은 욕을 얻어 먹을 만하다. 얼마 전 많은 소음을 일으킨 통큰 치긴이 매장에서 판매 중단이 된지 꼭 한달 만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현재 구제역으로 인해 축산 농가들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와중에 롯데마트가 소비자를 위한 답시고 '통큰 LA갈비' 파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수긍이 가질 않는다. 애국심 때문일까? 아마 그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아버님이 시골에서 한우를 기르고 있는 한 사람으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롯데마트의 '통큰 LA갈비' 판매는 이러한 애국의 차원을 넘어서 비겁한 꽁수라는 데 더큰 불편함을 느낀다. '통큰 LA갈비'판매로 인하여 주변의 상권이 거의 마비될 정도인 곳도있다. 저가의 상품을 내 놓음으로 사람들을 유인?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비겁한 상도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상도라는 것이 있기나 하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분명히 '과'하다는 생각은 떨치수가 없다. 정정당당한 게임을 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비겁하고 약은 상술이 아니라 좋은 상품과 높은 서비스로 싸우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 보자. 소비자들이다.
'통큰 LA갈비'에 왜 그리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일까? '통큰 LA갈비'를 사간 소비자 중에 정말 갈비를 먹고 싶어서 사간 사람은 몇이나 될까?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부는 아니다. 아니 상당수의 소비자들은 단지 '싸기 때문에' '통큰 LA갈비'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많다. '통큰 치킨'을 보라.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한쪽에서 욕을 하면서도 여전히 싼 상품들을 선택하는 모순과 역설의 소비자들이다. '통큰 LA갈비'를 오히려 롯데마트의 비겁한 마케팅으로 치부하며 아무도 사지 않는다면 롯데마트 역시 그러한 무리한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손뼉이 맞아야 박수가 되듯이 마트와 소비자의 두 욕망이 '통큰 LA갈비'에서 손뼉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비판을 한다 하더라고 여전히 마트는 그러한 꽁수를 둘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한 비판을 조롱하듯이 또 다른 '노이즈'들을 양산해 낼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통큰 LA갈비'는 오히려 우리 소비자에게 좋은 일을 했다. 다른 마트도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라고 말할 것이다. 소비자는 전체의 경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단지 오늘 지금 여기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구한다. 

인간을 공의롭고 정직하다고 믿는 바보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현명한 소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에서 말하는 '현명한 소비자'들이란 값싼 물건을 구하러 다니는 약삭빠른 소비자들을 말한다. 그래서 보통 세금을 줄이는 법, 물건을 싸게 사는 법을 아는 사람들을 우리는 '현명한'이란 수식어를 붙여준다. 이러한 소비자심리 속에는 끊임없이 손해보지 않으려는 욕구와 자신의 소유를 확장시키려는 본능이 잠재되어 있다.  케이윳 첸(외)이 쓴 '머니 랩'이란 책에서는 이러한 소비자 심리(소비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가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증명되어있다. 인간은 결코 손해 보지 않는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오직 자신에게 유리하고 득이 되는 쪽을 선택한다. 만약 내 말이 믿기지 않으면 다음 글을 읽어보라.


스펄전 목사님은 '죄인도 감동을 받아야 회개한다'는 말씀을 남겼다. 그렇다 누구든지 자신에게 해가 되고 비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기꺼이 따라가는가 생각해 보라. 주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만약 주님께서 우리에게 돈을 거두고 때리고 욕을 한다면 아무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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