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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절의 의미] 4-2, 사도행전 오순절과 성령강림

샤마임 2025.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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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울의 오순절 이해

신약의 사도 바울은 오순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그의 서신 곳곳에는 구약의 절기 신학, 특히 맥추절의 ‘첫 열매’ 사상을 깊이 있게 반영하는 신학적 통찰이 녹아 있습니다. 바울의 율법, 복음, 교회, 종말론에 대한 이해는 모두 이스라엘의 제의와 절기를 배경으로 형성되었으며, 오순절은 그 중심에서 구속사의 성취와 종말론적 전망을 동시에 내포하는 핵심적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본 장에서는 바울의 오순절 이해를 두 축으로 나누어 고찰하겠습니다.

1) 고전 15:20에서의 '첫 열매'로서의 그리스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대한 교훈을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첫 열매’(ἀπαρχὴ, aparchē)는 구약 맥추절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첫 곡식, 곧 비쿠림(bikkurim) 개념과 일대일 대응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수확의 첫 소산을 하나님께 드리는 의례를 통해, 전체 수확이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것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이 의례는 나머지 수확이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믿음의 상징이었고, 첫 열매는 전체의 대표이며 보증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히브리적 배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해석하며, 그분이 인류 전체 부활의 첫 열매, 즉 대표적이고 보증적인 존재로 부활하셨음을 강조합니다.

 

이 ‘첫 열매’ 개념은 단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성경신학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로 작동합니다. 구약에서 맥추절은 출애굽 이후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가나안 땅에서 얻게 된 수확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언약과 공급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절기였습니다(출 23:16, 신 16:9–12). 이는 ‘하나님의 백성됨’의 실질적 삶의 증표였으며, 그들의 신앙 고백이 곧 실천적 예배로 이어지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직후 부활하신 시점은 맥추절 기간의 시작부와 맞닿아 있으며,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통해 율법 안의 절기들이 실제 구속사의 사건으로 연결되었음을 확증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지 한 인격의 생명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정하신 종말론적 부활의 첫 사건으로서, 하나님의 역사 전체가 전환되는 ‘첫 이삭’의 역할을 합니다.

 

이때 성령 강림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열매이자, 그 부활의 효력을 성도들의 삶 가운데 적용시키는 하늘의 인침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4에서 예수께서 성령에 의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말하며, 또한 고린도후서 3:6에서는 성령이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곧 성령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시간적 과거로 가두지 않고, 현재 속에서 체험되게 하는 능동적 사역자입니다.

 

바울은 이 ‘첫 열매’ 개념을 단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에게까지 확장시킵니다. 로마서 8:23에서는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령은 ‘첫 열매’의 표징이며, 그것을 받은 성도들은 장차 올 부활과 구속의 완성을 전제하며 살아가는 ‘하늘 농사의 첫 결실’로 묘사됩니다.

 

이처럼 바울에게 있어서 ‘첫 열매’ 개념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내주를 통해 현실 속에 주어진 종말론적 구속의 씨앗이며, 그것은 앞으로 도래할 더 큰 수확, 곧 전 피조물의 회복을 예비하는 구속사의 전조이자 증거입니다. 성령은 ‘첫 열매’로서의 그리스도를 본받는 성도 안에 내주하심으로,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며(롬 8:29), 마침내 온 창조가 함께 탄식하며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나타남(롬 8:19)을 실현해 가는 구속사의 주체가 됩니다.

 

2) 오순절과 종말론적 수확의 관계

바울은 오순절을 특정한 절기로 강조하지 않지만, 그의 종말론적 구속사 이해 전체는 오순절의 신학적 구조 위에서 조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추수, 첫 열매, 장차 올 수확, 성령, 구속의 보증이라는 용어들은 오순절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첫째, 바울은 성령을 ‘보증’(ἀρραβών, arrabōn) 또는 ‘첫 열매’로 표현합니다. 고린도후서 1:22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보증’ 삼으셨다고 하고, 에베소서 1:13–14에서는 성령을 ‘기업의 보증’으로 묘사하며, 그것이 궁극의 구속, 즉 우리의 몸이 속량될 그날까지 인쳐진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개념은 구약의 맥추절에서 드려지는 첫 열매, 곧 하나님께 올려진 첫 이삭이 전체 수확의 보증이 된다는 상징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첫 열매를 받으셨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장차 온 열방과 온 피조계의 구속이라는 거대한 추수를 예고하셨습니다.

 

둘째, 바울은 부활과 영광의 몸을 종말론적 수확의 완성으로 봅니다. 고린도전서 15:35–49에서는 육의 몸과 영의 몸, 썩을 것과 썩지 아니할 것, 아담 안에서 죽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나는 것을 추수와 씨뿌림의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이 전체 구도가 맥추절, 곧 첫 열매와 장차 올 전체 추수라는 절기 구조를 신학화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셋째, 바울은 성도의 삶을 ‘수확’의 과정으로 묘사합니다. 갈라디아서 6:8–9에서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며, 선을 행하는 이들은 반드시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이는 성도의 윤리와 실천, 고난과 인내가 단지 현재의 선행이 아니라, 장차 올 ‘추수의 날’을 위한 씨앗 뿌림이라는 종말론적 윤리관을 전제합니다.

오순절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닌, 미래를 향한 약속이 현재 속에 들어온 사건입니다. 바울은 이를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으로 설명합니다. 성령은 이미 우리 안에 주어졌고,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동시에 우리는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존재입니다(롬 8:23).

 

이 긴장은 마치 첫 열매를 드렸지만 아직 전체 수확이 끝나지 않은 농부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성도는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첫 이삭’이지만, 장차 올 영광과 부활의 완전한 추수를 기다리는 존재입니다. 바울은 이 기다림 속에 있는 성도에게 성령을 통해 ‘인내의 능력’과 ‘소망의 확신’을 부어주신다고 말합니다.

 

결론

바울의 오순절 이해는 단지 절기에 대한 유대적 회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역사, 그리고 장차 올 하나님의 구속 완성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을 구조화하는 신학적 핵심으로 기능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과 로마서 8장은 ‘첫 열매’ 개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성도의 성령 체험, 장차 올 몸의 부활과 피조계의 회복이라는 세 가지 시제를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오순절은 ‘성령의 첫 열매’가 우리 안에 뿌려진 시간이며, 그 씨앗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거대한 구원의 추수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 추수는 민족과 언어, 시대를 초월한 교회의 보편성과, 장차 올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포함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단지 ‘첫 열매’의 은혜를 누리는 자로서만이 아니라, 장차 추수를 위해 인내하며 살아가는 ‘하늘 농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오순절의 공동체로서, 성령 안에 거하며, 세상 속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어가는 보편 교회로서의 소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맥추절에서 감사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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