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그림자를 팔아 버린 사람
[목회칼럼]
그림자를 팔아 버린 사람
1814년,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철학 같은 소설의 이야기다. 가난한 청년 슐레밀, 이름의 뜻은 ‘신에게 사랑을 입은 자’이다. 그러나 그는 가난했고,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했으며, 삶은 절망적이었다. 현실은 그의 이름을 철저히 배신한다. 그는 가난을 저주했다. 지워버리고 싶었다. 어느 날, 추천장을 가지고 도시의 실력자였던 존의 집을 찾아간다. 그에게 일자리를 부탁할 참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은밀하게 접근한다. 그는 슐레밀에게 놀라운 제안을 한다.
“당신의 그림자를 내게 팔면, 금화를 쏟는 마법 주머니를 주겠고.”
순간 슐레밀은 긴장한다. 그러나 가난을 추방시켜줄 유일한 힘인 마법 주머니에 이끌려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 따위 하찮은 그림자 하나, 그것이 내게 없다 한들 별일 있겠어?”
그는 미련 없이 회색 사나이와 거래한다. 그날 이후 청년의 삶에서 ‘가난’ 깨끗하게 사라진다. 그는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기 시작한다. 갈망하던 상류사회로 진입한다. 사랑스런 여인 미나도 만난다. 그는 거울을 보며 이렇게 중얼 거린다.
“아, 행복하다. 꿈만 같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달콤한 저주였다. 사람들은 그림자 없는 슐레밀을 발견하며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악마라는 소문도 떠돈다. 슐레밀은 그런 사람들이 싫고 미워 그림자 없는 밤에만 움직여야 했다. 사랑하던 여인 미나도 곁을 떠난다. 그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엇일까?“아, 그렇다. 지금 나는 낯을 잃어버린 거야. 아니, 낮을 빼앗긴 거야.”
그는 단지 그림자를 판 것이 아니라
하루의 반,
시간의 반,
생의 반을,
팔아버린 것이었다. 슐레밀을 자신의 어리석음에 절규한다. 거래는 최소되지 않았다. 자신을 학대하며 극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힌다. 어느 날, 회색 사나이가 다시 찾아와 제안한다.
“이제 네 영혼을 팔면 내가 더 대단한 것을 주겠소.”
그러나 잔혹한 비밀을 알아버린 슐레밀은 단호히 거절하고 홀로 먼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다시 사랑하는 여인 미나를 만나고, 조용히 자연 과학도로 살아간다.
참조 [김겸섭, <천사는 오후3시에 커피를 마신다>(토기장이)]
그림자, 인생의 아픔과 상처, 감추고 싶은 약점들. 그것들을 팔지 마라. 그림자도 나의 일부이다. 단지파 사람들은 약속의 땅을 버리고 북쪽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종종 단지파 사람들을 처럼 슬픔과 아픔이 있는 현장을 외면하고 쉬운 길을 찾는다. 그림자를 버리지 마라.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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