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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4:7-11 묵상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라

샤마임 2025.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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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사는 성도의 공동체적 삶

베드로전서 4장 7절부터 11절은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르칩니다. 이 본문은 종말론적 긴장감 속에서의 공동체적 삶을 강조합니다. 끝이 가까운 시대를 사는 성도는 개인의 경건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섬기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삶은 단순히 도덕적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명적 삶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받은 은사를 따라 서로를 섬기고, 그 섬김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함을 선포합니다.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라: 종말의 긴박감 속에서의 중심 자세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이 구절은 종말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할 성도의 삶의 출발점이 기도임을 분명히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τὸ τέλος πάντων(telos pantōn)’으로, 단순한 시간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즉, 이 세상이 마침내 하나님의 뜻대로 정리될 때가 가까이 왔다는 선언입니다.

이러한 종말론적 인식은 성도로 하여금 느슨하고 나태한 삶이 아니라, 긴장된 집중력 있는 삶을 요구합니다. ‘정신을 차리고’는 ‘σωφρονήσατε(sōphronēsate)’로, 명확한 분별력을 가지고 자제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근신하여’는 ‘νήψατε(nēpsate)’로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이는 내적인 침착함과 외적인 경계심 모두를 포함한 말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단순히 금욕이나 긴장된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입니다. 성도는 종말의 때에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유지해야 하며, 그 기도는 무력한 호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협력의 수단입니다.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하라: 공동체를 세우는 가장 큰 능력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베드로는 기도의 삶에 이어서 공동체 안에서의 핵심 덕목으로 ‘사랑’을 강조합니다. ‘무엇보다도’라는 말은 사랑이 다른 모든 실천들 위에 놓여야 함을 의미하며, ‘열심히’는 헬라어로 ‘ἐκτενῆ(ektenē)’인데, 이는 ‘힘을 다해,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라는 뜻을 가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단지 감정적 애정이 아니라, 의지를 따라 헌신하며 희생하는 행동을 포함하는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잠언 10장 12절의 말씀을 인용한 표현으로,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허물과 실수를 정죄하기보다 인내하고 용납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사랑은 공동체의 갈등을 봉합하는 힘이며, 허물을 덮고 회복을 가능케 하는 능력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공동체를 보호하며, 개인의 연약함이 드러날 때 정죄보다 회복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공동체 안에서 구현되는 방식입니다.

서로 대접하고 섬기되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9-10)

베드로는 구체적인 공동체적 실천으로 ‘대접’과 ‘봉사’를 말합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많은 성도들이 박해와 이주로 인해 집을 잃었고, 교회는 자연스럽게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대접하다’는 헬라어 ‘ξενίζω(xenizō)’는 ‘낯선 이를 맞이하다’는 뜻으로, 단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마음을 열어주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원망 없이’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계산 없이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이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라는 말씀은 모든 성도가 고유한 은사를 받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은사’는 ‘χάρισμα(charisma)’로,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주시는 특별한 섬김의 도구입니다. 이 은사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 봉사하라’는 명령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은사를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ποικίλης χάριτος θεοῦ, poikilēs charitos theou)’를 맡은 ‘선한 청지기(οἰκονόμοι, oikonomoi)’로서 사용해야 합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뜻에 따라 자원을 운영하는 자로,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자로서 충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봉사는 단지 기능적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합니다.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듯 하고,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듯 하며, 모든 일의 중심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는 목적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말과 섬김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하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베드로는 공동체 안에서의 구체적인 사역 태도를 다시 강조합니다. ‘말하려면’과 ‘봉사하려면’이라는 이중 구조는 모든 영역의 사역을 포괄합니다. 말씀을 맡은 자는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해야 하며, 섬기는 자는 자신의 능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해야 합니다.

여기서 ‘공급하다’는 헬라어 ‘χορηγεῖ(chorēgei)’는 고대 연극에서 후원자가 연극 전체 비용을 지원하던 용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넘치도록 공급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역의 힘을 풍성하게 공급하신다는 전제를 가지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실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섬김과 사랑이 인간의 칭찬이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향으로 향해야 하며, 이것이 복음의 삶이 가진 본질입니다.

결론

베드로전서 4장 7-11절은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제시합니다. 기도로 깨어 있으며, 무엇보다 사랑으로 공동체를 감싸 안고, 각자 받은 은사를 따라 섬기되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에 두는 삶. 이것이 복음이 우리 삶을 통해 드러나는 방식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 땅에 드러나기를 원하시는 뜻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도로, 사랑으로, 섬김으로 이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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