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드로전서 4:12-19 묵상 불시험을 즐거워하라

샤마임 2025. 4. 17.
반응형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삶

베드로전서 4장 12절부터 19절은 고난을 단지 피해야 할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연결된 영광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함을 선포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고난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며, 그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됩니다. 성도는 고난 앞에서 놀라지 말아야 하며, 도리어 기뻐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이 본문은 고난의 신학, 곧 고난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을 신앙적으로 해석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특별히 고난의 기준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수치가 아니라 하늘의 영광에 이르는 복된 자리임을 강조합니다.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도리어 즐거워하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베드로는 고난을 ‘불시험(πυρώσει, pyrōsei)’이라 표현하며, 그것이 성도들에게 낯설거나 비정상적인 일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연단하려고 오는’이라는 표현에서 고난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정결하게 하고 단단하게 하는 ‘연단’의 도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금속이 불에 의해 정제되는 과정을 연상시키며, 고난이 성도의 믿음을 시험하고 다듬는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이상히 여기지 말고’는 헬라어 ‘ξενίζεσθε(xenizesthe)’로, 낯설게 여기다, 놀라워하다 라는 뜻인데, 이는 고난을 예외적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경계하는 명령입니다. 오히려 성도는 ‘즐거워하라(χαίρετε, chairete)’는 적극적인 명령을 받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기암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고난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고난은 단지 슬픔의 이유가 아니라, 장차 드러날 영광의 씨앗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 성도는 기쁨으로 그 자리에 참여하게 될 것이며, 이 소망이 현재의 고난을 견디게 하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은 복된 고난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이 구절은 고난의 원인과 그 결과를 분명하게 짚어줍니다. 고난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복된 고난입니다. 여기서 ‘욕을 당한다(ὀνειδίζεσθε, oneidizesthe)’는 것은 단순한 모욕이 아니라 신앙 때문에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조롱받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고난을 ‘복(μακάριοι, makarioi)’이라 선언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동일한 맥락의 복 선언입니다.

그 이유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그들 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난 중에 성령께서 임재하신다는 확증이며, 성도가 외적으로는 수치스러울 수 있으나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임재와 위로를 경험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성령이 더욱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역설적 은혜를 베드로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며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의 원인이 중요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5-16)

베드로는 고난의 종류를 구별합니다. 만일 고난이 죄악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부끄러움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살인, 도둑질, 악행’은 명백한 범죄 행위이며,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는 공동체 질서를 해치는 파괴적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는 고난이 언제나 영광스러운 것은 아니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Χριστιανός, Christianos)’이라는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다면, 이는 결코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명령은, 고난 자체가 하나님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고귀한 예배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당시 조롱의 표현이었으나, 베드로는 그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운 신앙의 정체성으로 되돌립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의 시기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서 나타나리요”(벧전 4:17-18)

베드로는 고난을 ‘심판’의 한 방식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심판(κρίμα, krima)’은 단죄의 의미라기보다 정결하게 하고 구별하는 하나님의 역사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하나님의 집’, 곧 교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부터 정결케 하시고, 불순물을 제거하신다는 영적 원리를 보여줍니다.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이라는 표현은 구원이 결코 가볍거나 값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겨우(μόλις, molis)’라는 단어는 고난과 시험 속에서도 구원이 얼마나 값지고 절박한 것인지를 드러냅니다. 만약 하나님을 따르는 자도 연단과 시험을 겪는다면, 복음을 거부하는 자는 얼마나 두려운 심판 앞에 놓이게 될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이는 성도가 고난 중에도 더욱 거룩과 정결을 추구해야 함을 강력히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받는 자의 삶의 방향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 4:19)

마지막 절은 고난의 자리에서 성도가 취해야 할 결론적 태도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이라는 표현은, 고난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 안에 있음을 전제합니다. 이 고난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가운데 경험하는 고난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그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의탁하다’는 헬라어 ‘παρατιθέσθω(paratithesthō)’는 자신을 전적으로 맡긴다는 뜻이며, 신뢰를 전제로 한 헌신입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된 동일한 단어입니다(누가복음 23:46).

고난의 자리에서 성도는 선을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끝까지 믿고 의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창조자일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이 확신이 성도를 흔들리지 않게 하며, 고난 가운데서도 빛나는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결론

베드로전서 4장 12-19절은 고난을 겪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바라보며 흔들림 없이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합니다. 고난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영광의 길이며, 하나님의 뜻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도 선을 행하며, 영혼을 신실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담대히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구조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