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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3–7 묵상, 조롱하는 자들의 출현과 그들의 오류

샤마임 202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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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의 조롱, 성도의 분별력으로 이겨내야 할 싸움

우리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며 수많은 정보와 사상의 물결 속에 놓여 있습니다. 진리와 거짓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은 종종 세상의 조롱 속에 갇혀버립니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 가운데 베드로후서 3장 3절부터 7절까지의 말씀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영적 분별의 기준을 제시해 줍니다. 사도 베드로는 재림을 비웃는 자들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고하며, 그들이 왜곡하고 외면하는 하나님의 진리와 역사를 다시금 상기시킵니다. 이 본문은 성도로 하여금 말씀의 토대 위에 서서 조롱과 혼란의 시대를 이겨내게 하는 거룩한 경고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시대의 풍조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더욱 견고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깨어 있어야 할 이유, 진리를 붙들고 끝까지 인내해야 할 근거가 이 말씀에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출현은 마지막 때의 징조입니다

3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여기서 '먼저 이것을 알지니'(τοῦτο πρῶτον γινώσκετε, 투토 프로톤 기노스케테)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영적 긴장감을 가지며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라는 뜻으로 사용된 표현입니다. 이것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믿음이 약해지는 상황을 경고하고, 성도들이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는 선포입니다.

'말세에'(ἐπ᾽ ἐσχάτων τῶν ἡμερῶν, 에프 에스카톤 톤 헤메론)는 단지 종말의 마지막 순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승천 이후부터 재림 사이의 전체 시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말은 단지 먼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시대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말세 가운데 살아가며, 조롱하는 자들의 소리와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조롱하는 자들'(ἐμπαῖκται, 엠파이크타이)은 단지 우스갯소리를 내뱉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고 조롱함으로써 믿음의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경건함이 아닌 정욕을 따라 행동합니다. 여기서 '정욕'(ἐπιθυμίαις, 에피튀미아이스)은 단지 성적인 욕망을 넘어서, 인간의 자기중심적 탐욕과 세속적인 쾌락, 권력과 물질을 향한 왜곡된 갈망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이런 자들은 외적으로는 자유롭고 지성적인 것처럼 보이나, 그 내면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교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들과 동일한 소리를 듣습니다. “예수가 정말 다시 오신다고? 그건 2천 년 전에 했던 이야기 아니야?” “심판이 있다면 왜 지금 악인은 잘 살고, 의인은 고통받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지 의문이 아니라, 조롱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논리의 잣대로 깎아내리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진리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기 고집과 정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조롱은 결국 영혼을 마비시키고,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독소와도 같습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왜곡: 일부러 잊은 창조와 심판의 역사

4절은 조롱하는 자들의 논리를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 말은 당시에도,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의심의 표현입니다. 변화가 없으니, 하나님도 없다.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재림은 거짓이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 중심적이고, 제한된 경험과 감각에만 의존하는 폐쇄적인 사고입니다.

5절은 그들의 오류를 지적합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라.” 여기서 '일부러 잊으려 함'(λανθάνει ... θέλοντας, 란타이 ... 텔론타스)은 무지에서 비롯된 망각이 아니라, 알면서도 외면하고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지만,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삶과 가치 기준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질서는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을 전제로 합니다.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되었다'는 표현은 창세기 1장에서 무질서하고 공허하던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질서를 이루어 창조된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 말씀은 단지 과거의 소리가 아니라, 지금도 우주를 붙들고 있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조롱하는 자들은 그것을 일부러 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기 위해, 하나님을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6절은 노아 시대의 홍수 사건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는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도 지금과 똑같이 살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임했고, 순식간에 모든 것을 무너뜨렸습니다.

7절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날카로운 경고를 줍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 곧 창조하셨던 그 말씀으로 지금 이 세상을 붙드시며, 심판의 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간수하신 바 되어'(τεθησαυρισμένοι εἰσὶν, 테테사우리스메노이 에이신)는 원어상 보물처럼 저장되다, 간직되다 라는 의미를 지니며, 하나님께서 그 날을 정확히 정하셔서 질서 있게 보존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연'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표현하십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결코 무기력이 아니며, 회개를 위한 인내요 기회입니다.

성도는 조롱에 흔들리지 말고, 진리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악한 자들에 대한 경고에 그치지 않고, 성도에게는 각성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쳐도, 조롱의 소리가 점점 커져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흔들림 없이 서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유일한 기준이며, 하나님의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조롱하는 자들의 말에 일일이 반응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묵묵히 말씀을 붙들며 자신의 자리에서 경건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 속에 머무르며, 공동체와의 교제를 통해 믿음을 지키며,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해 분별력 있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마지막 시대의 성도에게 요구되는 삶의 태도입니다. 매일 아침 성경을 펴고,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며, 삶의 작은 선택 속에서도 말씀을 기준 삼는 습관은 결국 우리를 조롱과 회의의 시대 속에서 견고하게 세우는 바위와 같은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심판의 날을 정하셨고, 그 날까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 기회는 회개의 시간이며, 믿음을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성도는 이 시간을 게으름과 타협으로 채우지 말고, 말씀으로 무장하며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재림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헛되이 돌아간 적이 없습니다.

결론

베드로후서 3장 3–7절은 마지막 시대에 출현할 조롱하는 자들의 특징과 그들의 치명적인 오류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 창조와 심판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자기 욕망을 따라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으로 이 세상을 붙드시며,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심판을 정해진 날까지 보존하고 계십니다. 성도는 이러한 때에 더욱 말씀을 기억하고, 진리 위에 서서 분별력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붙들고, 혼란과 조롱의 시대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 안에서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며, 거짓된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영적 중심을 세우는 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 우리 발에 등불이자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야 함을 기억합시다.

베드로후서 3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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