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3장 11–14절, 재림을 기다리는 자의 삶
거룩한 기다림,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삶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점점 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빠른 결과와 즉각적인 보상을 추구하며, 인내나 기다림은 점점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이며, 그 재림의 날을 향해 우리는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1절부터 14절까지는 바로 그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이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교훈합니다. 이 본문은 단순한 종말론적 정보가 아니라, 거룩한 실천으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성도라면, 그 약속이 이루어질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재림의 진리는 장차 일어날 미래 사건이면서도, 현재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는 현재적 권면입니다.
영원한 것을 준비하며 사는 거룩한 삶
11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이 구절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강한 도전이며 질문의 형태를 빌린 명령입니다. '이 모든 것이 풀어지리니'라는 말은 10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늘과 땅과 모든 물질이 불에 녹아 사라질 그 날, 곧 종말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풀어지다'(λυομένων, 루오메논)는 헬라어로 본래 결박을 풀거나 해체된다는 뜻을 가지며, 이 말은 세상의 모든 구조와 체계가 무너진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날이 올 것을 알고 있는 자들, 곧 믿음의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베드로는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합니다. '거룩한 행실'(ἀναστροφαῖς ἁγίαις, 아나스트로파이스 하기아이스)과 '경건함'(εὐσεβείαις, 에우세베이아이스)입니다.
'거룩한 행실'은 단순히 도덕적인 삶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서 구별되고, 세상의 가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은 외적인 규범의 준수로 그치지 않고, 내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단지 죄를 짓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적극적 거룩함입니다.
'경건함'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분을 존중하고, 그분의 뜻을 삶 속에서 실제로 실현해 가는 삶의 태도를 뜻합니다. 단순히 경건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에우세베이아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외가 일상의 삶 속에서 표현되는 행동적 태도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세상이 곧 풀어지고 무너지게 될 것을 아는 우리라면, 이 땅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영원한 것을 위해 오늘을 살아야 한다고. 그것이 바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삶을 채우는 것이라고. 성도의 삶은 종말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마음으로 맞이하는 것에 있습니다. 영원을 아는 자는 현재를 함부로 살 수 없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 땅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주의 날을 기다리고 재촉하는 삶
12절은 성도의 삶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여기서 '바라보고'(προσδοκῶντας, 프로스도콘타스)는 단순히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적극적인 기다림, 곧 신앙의 소망을 품고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간절히 사모하라'(σπεύδοντας, 스푀돈타스)는 원어적으로는 '재촉하다, 서두르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즉 성도는 주의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더욱 거룩하게 살아가며, 그 날을 앞당기는 일에 동참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매우 놀라운 표현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시간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날을 향해 우리가 준비된 삶으로 응답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자는 수동적으로 손을 놓고 있는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오늘의 삶 속에서 복음을 실천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예비된 삶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자입니다. 그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공동체를 섬기고,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삶을 채웁니다. 세상이 무너지게 될 그 날에도, 그 마음은 두려움보다 소망으로 가득 차 있는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성도는 단지 재림을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재림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평강 가운데 사는 삶
13절과 14절은 성도의 궁극적인 소망과 그 소망에 따라 살아야 할 자세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새 하늘과 새 땅'(καινοὺς οὐρανοὺς καὶ γῆν καινὴν, 카이누스 우라누스 카이 게엔 카이넨)은 이사야서 65장과 요한계시록 21장에서도 등장하는 구속의 완성, 곧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의가 있는 곳'(ἐν οἷς δικαιοσύνη κατοικεῖ, 엔 호이스 디카이오쉬네 카토이케이)입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단지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의'가 거주하는 곳입니다. 즉 죄와 부패, 불의와 타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이며,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가 완전히 실현되는 장소입니다. 성도는 바로 이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정의는 침묵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반드시 다가올 의의 나라를 믿음으로 소망해야 합니다.
14절은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의 오늘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 여기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ἄσπιλοι καὶ ἄμωμοι, 아스필로이 카이 아모모이)는 제물의 정결함을 설명할 때 사용되던 단어로, 성도의 삶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드려지는 삶이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단지 용서받은 자가 아니라, 변화된 자로 살아가야 하며, 매일의 삶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산 제물이어야 합니다.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는 말은 단지 평온하게 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화평함을 누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평강은 죄의 용서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과의 화해를 근거로 한 내면의 안정입니다. 이러한 삶을 '힘써라'(σπουδάσατε, 스푸다사테)는 말은 부지런히, 정성껏, 열정적으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성도는 무심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기대하는 만큼 준비하며, 바라보는 만큼 변화된 모습으로 주 앞에 서야 합니다.
결론
베드로후서 3장 11–14절은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어떠한 자세로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모든 것이 사라질 날을 알고 있는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하며, 주의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오늘의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점도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 바로 재림을 기다리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다시금 바로잡고, 믿음의 여정을 더욱 경건하게 세우는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그 날을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마땅히 준비된 자로 설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깨어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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