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드로 후서 3장 17–18절, 깨어 있는 믿음과 마지막 권면

샤마임 2025. 4. 19.
반응형

깨어 있는 믿음, 마지막까지 자라나는 성도의 자세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신앙은 결코 정체되지 않고, 늘 성장과 분별, 경계와 헌신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여정입니다. 특별히 시대가 혼란하고 진리가 흐려지는 때일수록, 성도는 더욱 깨어 있어야 하며, 믿음 안에서 꾸준히 자라가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7–18절은 이 서신의 마지막 권면으로, 복음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끝까지 진리 안에 머무르며 성장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본문은 신앙의 방어와 성장을 동시에 요청하며, 모든 믿는 이들이 종말의 시대에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깨어 있는 자로서의 자세와 은혜와 진리 안에서 자라가는 신자의 본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경건한 경계심과 지혜로운 분별력은 성숙한 신앙의 핵심이며, 깨어 있는 믿음은 단지 준비된 태도가 아니라 실천적 순종을 동반하는 영적 자세입니다.

 

미혹을 경계하며 믿음을 지키라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여기서 '그러므로'(οὖν, 운)는 앞서 언급된 모든 종말론적 교훈과 경고를 바탕으로 한 결론적 권면임을 나타냅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ἀγαπητοί, 아가페토이)라고 다시 한 번 독자들을 부르며, 깊은 애정과 목회적 진정성을 담아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προγινώσκοντες, 프로기노스콘테스)은 미리 예고된 진리, 즉 조롱하는 자들의 출현과 성경 왜곡자들의 존재, 하나님의 인내와 심판에 대한 예언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단지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영적 준비를 위한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리 말씀하신 것은 단지 경고 차원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이를 기억하고 대처하라는 사역적 명령이기도 합니다.

‘무법한 자들’(ἀνόμων, 아노몬)은 율법과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단지 법을 어긴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질서를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미혹’(πλάνῃ, 플라네)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자기 중심적인 해석으로 말씀을 왜곡하며, 영혼을 그릇된 길로 인도합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설득력 있어 보일 수 있지만, 본질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독소입니다.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는 표현에서 '굳센 데'(στήριγμα, 스테리그마)는 믿음의 확고한 기반, 곧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신자의 영적 자리를 의미합니다. '떨어진다'(ἐκπέσῃτε, 에크페세이테)는 원어상 '벗어나다, 추락하다'는 의미로, 위치 이동이 아닌 존재적 전락을 뜻합니다. 이는 단지 믿음을 잃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믿음의 견고함이 약화되어 삶의 실제 자리에서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위험을 경고합니다. 성도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어떤 시대에도 진리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이는 영적 나태함이나 교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내적 경계이기도 합니다.

 

은혜와 진리 안에서 자라나라

18절은 성도에게 주어진 두 번째 명령입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이 구절은 단지 경고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권면으로 마무리되며, 성도의 삶이 멈춰 있지 않고 계속해서 자라나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는 소극적인 방어가 아닌, 능동적인 신앙의 성장 여정을 제시합니다.

‘자라가라’(αὐξάνετε, 아욱사네테)는 현재형 명령법으로 사용되어,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성장 과정을 뜻합니다. 즉 신앙생활은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계속 성장해야 하는 여정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의 시제는 단지 한 순간의 변화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성화의 여정을 나타냅니다. 성장하지 않는 믿음은 곧 퇴보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매일의 삶 속에서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그리스도를 더 닮아가기 위해 훈련받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구원의 출발점이자 삶의 동력이며, 성도의 신앙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시작했고, 은혜로 살아가며, 은혜로 완성됩니다. 이 은혜는 단지 죄사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 전체를 붙들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자비요 능력입니다. 성도의 성장은 이 은혜를 깊이 체험하는 데서 비롯되며, 은혜를 은혜로 알 때 신자는 하나님께 더욱 겸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또한 ‘그를 아는 지식’(γνώσεις, 그노세오스)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인격적 교제와 체험을 포함한 깊은 이해를 뜻합니다. 이 지식은 삶으로 드러나는 실천적 인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뜻을 따라가는 복종의 여정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단지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 그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지식이 자라날수록, 성도는 미혹에서 자유로워지고, 참된 분별력과 능력을 갖춘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진정한 성숙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성경은 단지 읽는 책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말씀이며,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교리적인 암기보다 관계적 친밀함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날 때, 세상의 어떤 요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성숙은 삶의 열매로 나타나며, 그 열매는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이웃을 향한 사랑 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마지막

18절 마지막 부분은 이 서신 전체를 마무리하는 찬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는 단지 문학적 결말이 아니라, 신앙의 중심을 다시금 하나님께 두는 고백입니다. 모든 성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자의 삶은 자신의 성공이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 위한 통로가 되는 삶이어야 합니다.

‘영광’(δόξα, 독사)은 하나님의 위엄과 본질적 탁월함을 뜻합니다. 이 영광은 단지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 성도의 삶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우리는 자라가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 닮아가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높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 찬양은 단지 말의 반복이 아니라, 믿음의 절정을 표현한 영적 선언이며, 하나님께 모든 것의 중심을 돌려드리는 겸손한 복종의 외침입니다.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라는 표현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 현재와 미래, 시간과 영원을 아우르는 찬양입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그날에도 동일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고백입니다. 결국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며, 우리의 신앙 여정이 그분의 이름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 중심의 삶, 곧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실존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결론

베드로후서 3장 17–18절은 신자의 삶의 결론이자, 실천적 명령의 요약입니다. 우리는 미혹을 경계하며 진리 안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은혜와 지식 안에서 지속적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는 단지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깨어 있는 자이며, 자라나는 자입니다. 말씀 안에 견고히 서며 은혜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삶은 마지막 날 주 앞에서 칭찬받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날마다 경건함과 진리 안에서 견고히 세워지고, 결국 그 모든 과정과 결과가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으로 드려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구조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