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27 - 2:4 강해 설교
오직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복된 날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풍성히 임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등불이며, 구속의 여정 가운데 길을 비추는 진리의 빛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를 향한 깊은 애정과 영적 기대를 담아,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권면합니다. 특히 본문인 빌립보서 1장 27절부터 2장 4절까지는, 교회의 공동체성과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이 복음의 빛 아래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말해주는 구절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삶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 여기서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πολιτεύεσθε’인데, 이는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단지 일상적 행위의 변화만이 아닌, 전인격적 삶의 질서가 바뀌는 전환을 의미합니다. 즉,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이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그 복음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가 로마의 식민지로서 시민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도시임을 염두에 두고, 그들에게 진정한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빌립보서 3:20), 그에 걸맞은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단지 신념이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원리입니다. 구속의 은혜는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고 형성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을 요구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든지, 떠나 있든지, 그들이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여기서 ‘한마음’(μία ψυχή)과 ‘한 뜻’(μία πίστης)은 교리적 통일성뿐 아니라, 영적 연합과 실천적 연대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곧 공동체적인 신앙의 연대와 협력을 뜻하며, 이는 현대 교회가 잃기 쉬운 거룩한 소명입니다.
두려움 없이 복음을 위하여(1:28-30)
바울은 성도들이 “무슨 일이라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1:28) 담대한 태도를 지니기를 권면합니다. 여기서 ‘두려워하지 아니하는’(πτορόμενοι)는 원래 말이 놀라 달아나는 모습을 묘사한 단어입니다. 이는 복음을 위한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말고, 주저하지 말며, 두려움 없이 서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종종 복음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적대적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오히려 박해받고 외면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이 오히려 성도에게 ‘구원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복음을 대적할수록, 그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더욱 또렷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삶임을 증거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어서 중요한 구속사적 원리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1:29).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진리를 접하게 됩니다. 곧, 고난은 단지 불행한 현실이 아니라, 복음과 연합한 자들에게 허락된 ‘은혜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고난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며, 이 과정은 단지 감정의 동일시가 아니라, 실제로 그분의 구속의 길을 따르는 참여적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는 바울의 고백(골로새서 1:24)은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봄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1:30)라고 말하며, 바울 자신의 고난이 성도들에게 실제적 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는 히브리서 12장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인내하라는 권면과도 깊이 연결되며, 신자는 반드시 고난 속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너희 안에 무슨 위로나 사랑이 있느냐(2:1)
이제 바울은 보다 깊이 있는 권면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위로나 성령의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2:1). 이 절은 조건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모두 ‘있다’는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 안에 위로가 있고, 사랑이 있으며, 성령의 교제가 있으며, 긍휼과 자비가 있다면’—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라는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교제’(κοινωνία)는 단순한 친분이 아닌, 성령 안에서의 깊은 연합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도행전에서 성령이 임하신 후 초대교회 공동체가 가졌던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삶’을 떠오르게 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 안에서 하나 된 성도들은 서로를 향해 긍휼과 자비로 대하고, 한마음을 이루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납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공동체의 강함은 교리의 강성만이 아니라, 마음의 위로와 성령의 교통, 겸손한 섬김으로부터 나옵니다. 교부 크리소스톰은 이 구절을 해석하며, 교회의 일치는 교리보다 먼저 서로를 참는 인내와 용서의 실천 위에 세워진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2:2-4)
바울은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2:2)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동일함’과 ‘연합’입니다. 이는 획일성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다양함을 존중하면서도 동일한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 연합’을 뜻합니다. 이 영적 연합은 진리 안에서의 조화를 의미하며, 거룩함 안에서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2:3), 겸손하게 서로를 낮게 여기며, 자기 유익만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도 함께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2:4). 이 부분은 우리로 하여금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러한 사랑이, 지금 바울이 요구하는 공동체의 기초입니다.
‘겸손’(ταπεινοφροσύνη)은 고대 세계에서 경멸의 단어였지만, 복음 안에서는 가장 위대한 미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를 낮추사 죽기까지 복종하신 십자가의 길(2:6-8)로 연결되는 중요한 미덕입니다. 교회는 겸손으로 세워지고, 사랑으로 유지되며, 하나 됨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결론: 복음의 시민답게 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할 때,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보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두려움 없이 믿음을 지키고,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때,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증거됩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연합과 겸손, 사랑과 협력은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고, 타인을 높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교회는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거룩한 등대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 모두가 다시금 결단하길 원합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살기를, 두려움 없이 믿음을 지키기를, 그리고 서로를 향해 진정한 사랑과 겸손의 마음을 품고 살기를. 주님께서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으니, 그날까지 반드시 이루실 줄 믿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공동체 안에서도, 복음의 능력이 분명히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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