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1 - 3:11 강해 설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가장 고상함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와 하나님의 음성 듣는 여러분에 하늘의 복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복음 안에서 기뻐하는 하루 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 기쁨의 이유를 찾지 못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 빌립보서 3장 1절부터 11절까지는 바울 사도의 고백이 담긴, 신앙의 중심을 다시금 붙잡게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업적을 배설물로 여기며, 오직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을 붙드는 삶의 본질을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회고가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구속사적 선언입니다. 바울의 고백은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얼마나 값지고 영광스러운지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그리고 분별하라(3:1-2)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3:1).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반복해서 기쁨을 강조합니다. 이는 단지 감정적 위안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신적인 평안과 확신에서 비롯된 기쁨입니다. 삶의 환경은 언제나 변할 수 있지만, ‘주 안에서’(ἐν κυρίῳ)의 기쁨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분별력 없는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바울은 곧바로 경고합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이를 삼가라”(3:2). 여기서 ‘개들’(κύνες)은 율법주의자들, 곧 구약의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외적 표식과 인간의 행위를 앞세우며, 오히려 복음의 본질을 왜곡합니다.
‘몸을 상해하는 이들’은 단지 유대인의 관습을 주장하는 것을 넘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흐리게 만드는 자들입니다. 참된 신앙은 몸의 외적 표시가 아닌 마음의 할례로 나타나며, 이는 성령에 의한 전적인 내면의 변화로부터 비롯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거짓 가르침을 단호히 경계하며, 교회가 바른 복음 위에 굳게 서야 함을 요청합니다.
참된 할례는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3:3)
바울은 복음의 참된 정체성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3:3). 여기서 ‘봉사’(λατρεύω)는 예배를 의미하며, 우리의 삶이 전적으로 성령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적 삶이 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이는 단지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수준을 넘어, 삶 전체를 하나님께 향한 제사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라는 표현은, 신자의 자랑이 오직 십자가에서만 가능하다는 바울의 일관된 복음 이해를 반영합니다(갈라디아서 6:14 참조). 이와 동시에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태도는, 구원의 기초가 인간의 행위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뿐입니다.
육체적 자랑과 신앙적 유산을 내려놓다(3:4-7)
바울은 자신이 자랑하려 들면, 누구보다 많은 조건을 갖춘 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라고 말하며, 자신의 종교적 배경과 열심, 도덕적 행위를 나열합니다(3:4-6).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정통 유대인이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에 대한 철저함과 교회 박해에 있어서의 열심, 율법 아래 흠이 없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충격적인 고백을 이어갑니다.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김이라”(3:7). 바울에게 이 유익들은 단지 무익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해’(ζημία)로 여깁니다. 그것들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아는 데 장애가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종교적 자긍심, 도덕적 완성, 출신과 계보에 대한 자랑은 오히려 은혜를 무효화하는 덫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고백은 단지 개인적 겸손이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 앞에서 철저히 자기를 해체한 신자의 고백이며,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신앙적 전환입니다. 우리 또한 신앙생활 속에서 내가 의지하고 있던 율법적 기준과 종교적 자부심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가장 고상함(3:8-9)
바울은 다시금 강조합니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여기서 ‘고상하다’(ὑπερέχον)는 단어는 ‘모든 것 위에 뛰어나다’는 뜻으로, 바울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인생 전체의 가장 위대한 가치라는 점을 절절히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는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 고백합니다. 이 말은 단지 과거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체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재정의되었음을 말합니다. ‘배설물’(σκύβαλα)은 혐오스럽고 버려야 할 찌꺼기를 의미하며, 바울은 자신이 자랑하던 모든 것을 오히려 경멸스럽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3:9).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의로 살지 않습니다.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곧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δικαιοσύνη)를 통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는 종교개혁의 교리인 '이신칭의'(sola fide,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음)의 신학적 기반이 된 핵심 진술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함(3:10-11)
바울의 영적 열망은 단지 구원받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의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3:10). 이는 신앙의 가장 깊은 열망이자 성화의 여정에서 나타나는 거룩한 갈망입니다.
‘부활의 권능’(δύναμις)은 단지 미래적 희망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도 나타나는 변화의 능력입니다. 성도는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되며,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능력은 반드시 ‘고난의 참여함’(κοινωνίαν τῶν παθημάτων)과 함께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으며, 그것이 오히려 참된 부활의 길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3:11). 바울의 이 고백은 불확실성의 표현이 아니라, 겸손한 열망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어떤 자격이나 공로로 부활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그리스도를 좇으며 참여함으로 그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는 신자의 겸손과 순종,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표현입니다.
결론: 그리스도를 얻는 삶, 그것이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바울의 고백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도전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혹시 신앙의 외형만을 의지하며, 종교적 이력이나 행위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바울처럼 우리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분 안에서만 참된 생명과 의가 있으며, 그분과의 교제 안에서만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더 알고자 하십시오.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분의 부활을 갈망하십시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내 안의 자랑은 죽고, 오직 그리스도만 남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며, 우리를 변화시키는 구속사의 길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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