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연구] 아브라함(7) 하갈과 이스마엘
[성경 인물 연구] 아브라함(7) 하갈과 이스마엘
창세기 16장
[그동안 아브라함에 대한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인물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간략하게 다루기가 힘들어서 좀더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요즘 아르바이트를 구해 다니고 있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늘 응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은 마음으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저작권에 저에게 있다는 것과 이곳으로 링크를 걸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출산하지 못하는 사래의 제안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출산하지 못합니다. 성경에 불임 사건은 중요한 모티브 가운데 하나이며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후손에 대한 약속을 받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사래가 갑자기 아브람에게 하갈과 동침하기를 권면합니다. 아마도 후손을 기다리는 아브람과 사래는 하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한 시기는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16:3)입니다. 십 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다 지친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어 내려는 유혹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래의 유혹을 인간적인 욕망으로 치부하기는 억지스러운 면이 많습니다. 사래의 유혹이 있기 전 무슨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2장에서는 단지 후손에 대한 축복을 약속합니다. 두 번째 약속이 있는 15장에서는 ‘네 몸에서 날 자’(15:4)라고 말씀하심으로 12장보다 좀 더 분명하게 약속합니다. 사래의 제안은 바로 15장 이후 일어납니다. 사래는 자신이 아닌 아브람에게서 출생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어그러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이루어지지 않는 인내의 시간 동안 사래는 기다림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래의 제안이 상황과 역사적 문화 안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사래의 계획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언제나 긴장 속에서 갈등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합니다. 다양한 방법과 생각들을 찾아야 함이 옳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은 무슨 계획, 또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를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하갈의 뜻 : 하갈은 어원이 불분명하다. 어디서 왔고, 무슨 뜻인지 모른다.(BDB)
2) 하갈의 역습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자 하갈이 임신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갈은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자 여주인인 사래를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주인의 성은?을 입었고, 임신까지 했으니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래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자신을 섬기는 여종까지 남편에게 안기면서까지 희생?했는데 돌아온 것 멸시였습니다. ‘멸시’라는 히브리어 ‘카랄’은 ‘저주’‘경멸’ 등의 뜻으로 무가치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당시의 하갈의 심정은 사래를 여인으로서는 존재 가치를 부정했고, 여인 같지 않은 무가치한 존재로 본 것입니다.
사래는 극렬하게 반응했습니다. 아브람을 찾아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사래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 봅시다.(창 16:5)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개정개역>
“내가 이렇게 멸시를 받는 것은 당신 탓입니다. 나는 내 몸종을 당신 품에 안겨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몸에 태기가 있는 것을 알고는 저를 업신여깁니다. 야훼께서 나와 당신 사이의 시비를 가려주시기 바랍니다.”<공동번역>
하갈의 말속에는 자신이 희생하고 양보했는데 도리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래의 말을 좀 더 현대적으로 풀어 봅시다.
“나는 나의 몸종을 당신의 품에 안겼다 그런데 저 여자가 나를 업신여긴다. 저 여자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당신이 저 여자를 추켜세우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의아하다. 사래는 자신이 권해서 하갈을 아브람이 품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갈이 무시하자 아브람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래가 너무 편협 적이거나 자신의 잘못을 아브람에게 돌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래의 이야기를 찬찬히 살펴보면 사래와 아브람이 은밀한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하갈의 문제는 단지 사래의 뜻이 100% 작용한 것이 아니라 아브람과 충분히 의논한 것이 분명합니다. 사래의 말속에는 분명히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라는 뉘앙스가 깊게 깔려 있습니다. 하갈은 아브람이 먼저 제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즉 하갈은 아브람과 사래의 합의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은 아브람이 사래의 이야기를 듣고 사래의 손에 하갈을 스스럼없이 맡기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쉽게 풀릴 것 같았던 일이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사래는 하갈을 학대했고, 하갈을 결국 사래를 피해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하갈은 어떻게 될까요?
3) 감찰하시는 하나님
사래는 하갈을 ‘학대’(16:6)하기 시작합니다. ‘학대하다’라는 ‘아나-’의 히브리어는 애굽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출 1:11)하던 단어와 동일한 것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주인 사래를 피해 하갈을 집을 나섭니다. 하갈이 어떤 길로 행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성경은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수르 shur) 길 샘 곁’(16:7)이라고 말합니다. 슐 광야는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 중간에 있습니다. 술(수르) 광야는 길 곁으로 몇 개의 우물이 있어 잠깐 쉬어가는 곳이지만 대단히 위험한 곳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갈은 사래를 피해 자신의 고향인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을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하갈과 대화를 시작합니다.
-하갈의 정체성
먼저 하갈을 ‘사래의 여종’(16:8)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호칭입니다. 하나님은 하갈에게 사래의 여종인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여종이 주인에게 해야 할 일은 복종하는 것입니다. 천사의 질문에 하갈은 자신의 고통을 고백합니다. 사래의 학대가 너무나 심하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애굽이 이스라엘을 ‘학대’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이하게도 지금은 사래가 하갈(애굽인)을 학대하지만 450년이 지나면 애굽인들이 사래의 후손들을 학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의 질문에 하갈도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해 도망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갈 자신도 동일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천사는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명령합니다.
-하갈을 축복하는 하나님의 천사
10절과 11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두 가지를 약속합니다. 하나는 자손에 대한 복, 다른 하나는 이름에 대한 것입니다.
창16:10-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먼저 후손에 대한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약속과 동일합니다. 이것은 비록 여종이긴 하지만 아브람의 복이 여종의 자녀에게도 동일하게 임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것은 장차 임할 영적인 복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비록 정식적인 이스라엘의 아니라 할지라도 복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까닭도 없이 이방인들을 저주하고 경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아이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부르게 합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들으신다’는 뜻입니다. 하갈은 여호와의 천하가 떠나간 다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살피신다는 ‘로이’로 ‘보다’라는 뜻입니다. 천사가 ‘여호와께서 너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하갈은 ‘여호와께서 보신다’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성이 깃들어 있음을 말합니다.
나가면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교훈을 줍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지 않으면 도리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뭔가를 할 때 ‘하나님을 위하여’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숨겨진 교만과 나태가 어리석은 일을 자해하게 합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서로 은밀한 거래를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의도를 알았고, 실패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복주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기독교인이나 이슬람 등 타종교에 대해 극도로 혐오감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로 돌아가 생각해 보십시오. 속사도들과 그 후의 교부들을 일컬어 변증가로 부릅니다. 그들은 기독교가 결코 이상한 종교나 편협적인 종교가 아니라 나라를 위하고, 이성적인 종교임을 변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역전되어 기독교인들이 다른 종교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들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라와 하갈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해 전자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를 분석하고, 정경학적 성경 해석을 통해 사라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죄를 지었고, 하갈을 통해 어떻게 일하실지를 드러냅니다.
[목차]
들어가면서
4. 사라와 하갈
불임의 여자 사래
가나안에 들어오다
하갈을 맞이하다
하갈이 사래를 멸시하다
하갈은 누구인가?
사래의 믿음, 그러나 아직
사라와 하갈 그 이후
친구로 읽는 성경 인물(4) 사라와 하갈
정현욱 저
‘친구’의 관점에서 읽은 성경 인물 사라와 하갈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여 하갈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사라. 그러나 기고만장해진 하갈은 사라를 조롱하고 비웃게 된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닦달하여 하갈을 핍박하지만, 하나님은 하갈을 통해 사라를 다루신다. 하나님은 하갈을 통해 사라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 지금까지 한 번도 읽지 못한 사라와 하갈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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