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연구] 아브라함(8) 할례언약
[성경 인물 연구] 아브라함(8) 할례언약
창세기 16:11-17장
1) 들나귀 같이 되리라
앞 장에서 하갈의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17장 할례언약을 다루기 전 16장을 먼저 마무리 합니다.
이스마엘이라 하라
사래의 학대를 못 이겨 도망가는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하갈에게 몇 가지는 말합니다.
ㄱ. 사래에게 돌아가 복종하라
ㄴ. 아들을 낳으면 이스마엘이라 하라
ㄷ. 그는 들나귀 같이 되리라.
ㄱ.ㄴ은 앞선 시간에 다루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들나귀’를 생각해 봅시다. 들나귀는 집에서 기르지 않는 나귀로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스마엘에게 ‘들나귀 같이’(16:12) 되리라고 선언하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아래 복족하지 못함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자갈 먹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고 갈망하는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친다’는 표현은 전쟁을 즐겨하는 폭력적 성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후대에 에서에게 동일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고통을 주는 행위는 다시 다른 사람들의 복수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그를 칠 것입니다. 그는 평생에 전쟁이 끊이지 않으며, 그것을 즐기며 살아갈 것입니다. 후에 이스마엘 사람은 곧 여행자, 나그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란 뜻을 가지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스마엘의 후예를 자처하는 모슬림을 회교(回敎)부르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정착하지 못하는 그의 삶은 떠돌이처럼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본성을 찾아 배회하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땅은 온전하거나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본향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으로서의 배회하는 저주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을 통해 저주를 복으로 전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순종이 아닌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떠나 배회할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자연인의 삶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이스마엘과 에서의 ‘들나귀 인생’입니다.
[사진들은 초상권이 없는 것들로 다운 받아 사용 가능합니다.]
들나귀, 길들여지지 않은 나귀는 자신을 위해서 자연 속에서 속박받지 않고 살아간다.
길들여진 나귀는 사람의 목적에 합당하도록 사용된다. 성도는 자연의 욕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은 구십구 세에 아브라함을 찾아오십니다.(17:1) 하나님의 찾아오심은 심판과 구원을 함께 의미합니다. 바벨탑 사건에서는 강림을 통해 심판을 행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심은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주시기 전에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1절) ‘여호와’가 아닌 ‘하나님’을 사용했다는 점은 창조적 능력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친밀함을 나타내며 구원과 상관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력한 힘이나 모든 만물의 주관자나 창조자로서의 위엄을 드러낼 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십니다.(17:1)
2-8절까지 이어지는 언약은 후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너는 크게 번성하게’(2절) 하는 것은 결국 후손을 주겠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여러 민족의 아버지’(4절)가 되게 하리라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람이란 이름을 아브라함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줍니다. 할례언약이 세워 지기 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들을 정리해 봅시다.
ㄱ. 너는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2절)
ㄴ.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리라(4절)
ㄷ. 아브라함이라 하리라(5절)
ㄹ.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리라(6절)
ㅁ. 언약을 세워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7절)
ㅂ. 가나안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8절)
세세하게 나누면 복잡해 보이지만 모든 약속과 복들은 ‘후손’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엮어집니다.
3) 할례를 행하라
복에 대한 약속을 마친 다음 하나님께서 한 가지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것을 할례입니다. 남자의 성기 표피를 잘라는 할례는 자연인으로서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1번에서 이스마엘의 ‘들나귀 인생’ 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마엘은 성향 상 길들여지지 않는 자연인입니다. 그는 결코 자신을 하나님께 속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영적 할례를 받지 않는 이방인입니다. 바울이 말한 바, 할례는 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하는 것입니다.
할례의 특징
ㄱ. 먼저 할례는 몸에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기 때문에 몸에 하는 표시는 필요가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만약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정해진 시간에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에도 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정해진 기도 시간에 기도하지만, 평상시도 기도할 것입니다. 범사에, 매사에, 항상 기도에 힘쓸 것입니다. 할례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마음으로 순종할 뿐 아니라 행위로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몸에 할례 행하는 것을 가식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ㄴ. 할례는 남자만 합니다.(12절)
남자는 대표성입니다. 남자가 함으로 여자도 그 언약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성의 구분이나 차별이 아닌 대표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집에 속한 ‘모든 남자’라고 말합니다. 그가 종이든 아들이든 남자이면 모두 해야 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믿음이 좋다고 아들이 천국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홀로 독대하는 것입니다.
ㄷ. 할례는 낳은 지 팔일 째합니다.(12절)
하나님은 칠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팔 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주일이 안식 후 첫날, 즉 현재의 일요일 인 것처럼 할례도 시작의 의미를 갖습니다. [<[성경토픽] 할례는 왜 팔 일째 하는가?>를 참조 바람]
ㄹ. 할례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것입니다.(14절)
할례를 행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지 않는 것은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할례의 다양하고 깊은 의미를 온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라면 먼저 순종해야 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찌 다 알까요? 알지 못하지만 순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4) 이삭을 예언하시다.
할례 언약에 대한 말씀을 마치신 다음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 줍니다. 사라 역시 아브라함처럼 이제는 한 가정의 조상이 아니라 ‘여러 민족의 어머니’(16절)란 뜻을 가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웃고 맙니다.(17절)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아브라함의 말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이름을 ‘이삭’이라 부르도록 명합니다.(19절) 하나님은 이스마엘에 대해서도 복을 준다음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 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십삼 세였습니다.(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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