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연마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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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연마한 고통
‘세월이 연마한 고통’ 박완서의 작가의 <세상에 예쁜 것>에 나오는 문장이다. 추억의 사진첩을 들여다 보면서 한국의 비극에 잇닿아 있었던 자신의 참혹한 악몽을 떠올리며 했던 말이다. 주변의 문장을 함께 가져오면 이렇다.
“내 기억의 창고도 정리 안 한 사진 더미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뒤죽박죽이고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고 나라는 촉수가 닿지 않으면 영원히 무의미한 것들이다. <중략>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또한 행복의 절정처럼 빛나는 순간도 그걸 예비한 건 불길한 운명이었다는 게 빤히 보여 소스라치게 되는 것도 묵은 사진첩을 이르집기 두려운 까닭이다.”
좋은 문장을 보면 밑줄치고 아름다운 문장을 보면 빨간펜으로 강조를 해두고, 흥분시키는 문장을 보면 형광펜으로 덧칠을 해둔다. 이 문장은 세 번째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필로 밑줄만 그었다. 왜일까? 문장이 손상될 것 같은 걱정 때문이다. 마치 엄마가 어린 아이를 보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지만, 만지면 상할까봐 조심스럽게 대하듯이.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삶의 경륜과 고뇌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같이 호위호식하며 자란 사람들에게는 나올 수 없는 문장이다.
문장은 곧 사람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늘 그렇게 주장하셨다. 문장과 사람은 다르지 않다. 그 사람의 생각과 고뇌가 문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삶의 상처도 없이 작가가 되려하고, 고뇌도 없이 철학자가 되려하는 것처럼 어불성설이 없으며, 자가당착도 없다. 오늘 박완서 작가의 글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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