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 서해문집
은유, 난 그녀를 모른다. 단지 서해문집의 하선정을 알고 담벼락에 올라오는 소식을 접할 뿐이다. 그런데 종종 은유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온다. 이미 3쇄를 넘어섰고, 일만 부 이상을 찍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 사랑스러운 비린내와 함께 말이다. 궁금하기도 하지만,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수많은 신간을 읽어 내느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집으로 향할까? 바닷가로 갈까 고민하다 통도사로 향했다. 양산에서 얼마 멀지 않고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작은 서점 하나가 있다. 이름은 보광 서점. 보광 고등학교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보광이란 명사가 이곳 지형이나 통도사와 같은 불교, 뭐 이런 것들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7-8년전 보았던 주인 할아버지는 오른팔을 잘 쓰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 것이다. 갑자기 서점이 무덤처럼 어두워 보인다. 급히 계산하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곳에서 딱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은유 산문집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는 요즘 핫한 그 책이다. 3쇄를 넘긴 이 책, 그때가 2월이었으니 지금은 4쇄는 아닐까? 어쨌든 내가 산책은 2016년 12월 26일 초판 1쇄 본이다. 알고는 있는가? 백 년이 흐른 뒤 동일한 책이라 할지라도 초판이 가치가 훨씬 높다는 것을. 난 그렇게 1쇄 본을 사들고 양산 집으로 되돌아왔다.
띄어쓰기 젬병이다.
싸울때마다 투명해 진다. 또는
싸울 때마다 투명 해진다. 또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일 수 있다.
마지막 띄어쓰기가 맞다. 다시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일본어도, 영어도 한글보다 어렵지 않다. 한글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띄어쓰기다. '띄어쓰기'도 '띄어서 쓰기'라는 띄어 쓰고, '띄어쓰기'는 붙여서 쓴다. 넌 언제쯤 띄어쓰기의 달인이 되어 잇을까? 하여튼 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페미니즘(feminism)에 천착한 이야기다. 그녀는 '외동딸'로 컷고 직장에서도 고유한 업무 영역' 이 있기에 그다지 여성스럽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녀가 여성임을 실감한 순간은 '결혼 이후다.'(5쪽) 그녀는 엄마다. 그러나 그녀에게 엄마는 없다. 십 년 전 그녀의 엄마는 돌연한 죽음으로 맞이한다. 친정에 가면 엄마의 자리를 대신한다. 설에 친정에 내려갔다. 그녀는 엄마를 대신해 음식을 준비한다. 엄마가 없기에... 아버지는 그녀의 중학생 딸에게 이것저것을 시킨다. 왜 '아버지 말대로 여자니까.'(39쪽)
그녀가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은 전모가 드러났다. 그녀의 엄마는 전업주부였기 때문이다. 다시 그녀는 딸에게 손에 물 묻히는 것을 언짢아한다. 그런데 그녀는 전업주부가 아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이것저것을 해야 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 싶은 것이다.
절반까지 읽었다. 여자의 세계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빨래, 밥, 가사노동 등은 여성이란 단어로 환원되는 것을 거절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녀는 밥을 한다. 그래서 갈망한다.
"밥에 묶인 삶, 늘 떠남의 욕망에 시달린다.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이 바다 되어 출렁이고 마음만은 지중지중 물가를 거닌다."(56쪽)
우리가 '본다'라고 말할 때, 보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고 보지 못한다. 남자는 죽어도 여성의 고충을 보지 못한다. 그 싸가지 없는 남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TV 리모컨을 집어 들고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아내의 부르튼 말과 찢긴 마음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은 안경이다. 근시에 걸린 남성들에게 여성이 누군지 보여주는 안경. 모든 남성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주의/ 가부장적 보수의자들이 읽으면 빡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갑자기 심혈관 계통에 지장을 주어 훅~~~ 갈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고, 타자로서의 독립된 한 인간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노년에 큰 평화와 기쁨이 찾아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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