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묵상] 3. 1:19-27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라
[야고보서 묵상] 3. 1:19-27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라
1:19-27
1. 묵상 글
하나님의 말씀은 곧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과 ‘행함’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존재’하게 됩니다. 말씀이 곧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은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생겨났으며, 존재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말씀에 불순종할 때 심판과 죽음이 필연적으로 찾아옴을 알려 줍니다. 야고보는 두 가지의 주제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성도를 깨우칩니다. 먼저는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20절)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야고보는 ‘듣기’와 ‘성냄’을 대립시킵니다. 듣기는 곧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경청인 반면, 성냄은 듣기 전에 잘못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잠언에도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18:3)고 했습니다. 성냄은 말하는 자를 배려하지 않는 교만과 성마른 판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더디 하라’(19절)는 구절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인내’ 해야 할 것을 배웁니다. 인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함과 구비(mature and complete)함에 이르게 됩니다.(4절) 이것은 곧 하나님 앞에 흠 없음이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에 합당함을 의미합니다. 인내는 단지 참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성숙한 신앙의 모습으로 자라나게 합니다. 성냄은 반대로 흠 있고, 사용하기에 합당하지 못함을 내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을 잘 내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성냄을 바로잡기 위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먼저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21절) 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유를 ‘악’으로 도출해 냅니다. 우리의 성냄의 대부분이 의로운 것이 아니며, 세상에 대한 악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온유함’(πρᾳΰτης, praýtēs)이 있어야 합니다. 온유함은 겸손이며,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가난한 마음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시 42)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절박성이 만들어낸 ‘겸손’입니다. 온유한 마음이 없는 자들은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22절)가 됩니다. 강의로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책을 읽었다고 저절로 실천되는 것이 아닙니다. 듣고, 기억하고,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온유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거울을 보고 곧 자신의 모습은 잊는 자입니다. 거울을 보는 것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잊어버리는 자’와 ‘실천하는 자’(25절)을 대비시킴으로 진정한 들음은 귀가 아닌 삶에 있음을 말합니다. 말씀을 잊어버리는 자들은 돌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아 싹이 나고 자라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해 곧 말아 버립니다. 삶은 뿌리내림입니다. 실천하지 않는 들음은 뿌리내림 없는 가짜입니다.
진정한 앎은 머리가 아니라 삶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발설이 곧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은 곧 행동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드러난 말씀이 생명이 됩니다.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건이 아닙니다. 경건은 자신의 악함과 약함을 알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말씀이 들리고 삶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자신을 속이는 자들은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한 번도 이웃을 돕지도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신학적 깊이와 탁월한 언변 능력을 가졌기에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믿어 버립니다. 마지막 두 절을 꼭 마음에 담아 둡시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6-27)
진정한 경건은 안으로는 자신을 통제하며 겸손한 마음을 갖고, 밖으로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삶으로 나타낼 때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이성적으로 말씀을 깨닫고 절박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곧 행함이며, 행함은 곧 생명입니다.
2. 구조
1장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두 주제를 다룹니다. 하나는 성냄과 다른 하나는 진정한 경건입니다. 19-20절은 성냄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그에 대한 결론이자 대안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촉구합니다. 결국 성냄의 원인은 말씀이 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2-27절은 경건이 무엇인지 말하지만, 어떻게 온유하게 말씀을 받는가에 대한 부연설명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실천’에 있습니다.
1:19-21 성내지 말라
1:22-27 삶으로 말씀으로 살아라
3. 묵상 글 적기
*이곳은 본문을 읽고 묵상한 다음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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