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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2장

샤마임 2020.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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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2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소아시아, 즉 지금의 터키 지방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일곱 교횝니다. 순서는 에베소 교회(2:1-7), 서머나 교회(2:8-11), 버가모 교회(2:12-17), 두아디라 교회(2:18-29), 사데 교회(3:1-6), 빌라델비아 교회(3:7-13), 라오디게아 교회(3:14-22)입니다. 오늘은 2장에 소개되는 에베소교회와 서머나 교회, 그리고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를 간략하게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구조

에베소 교회(2:1-7)

서머나 교회(2:8-11)

버가모 교회(2:12-17)

두아디라 교회(2:18-29)

 

교회에 대한 메시를 전할 때 일정한 패턴을 반복합니다.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가 계시하십니다. 그런데 각 교회마다 드러내는 예수님의 이미지가 다릅니다. 에베소 교회는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소개됩니다. 그 다음은 교회에 칭찬과 책망을 하고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귀 있는 자는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고 말하면서 마지막 권면을 함으로 마무리합니다.

에베소 교회(2:1-7)

에베소 교회를 향해 예수님은 자신을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일곱 별은 교회에 보내는 일곱 사자들입니다. 사자는 대체로 천사로 번역하나 예수님의 메시지는 전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교회의 목회자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게 된 의인을 지칭한다고 말합니다. 1:161:20를 연이어 생각해 본다면 일곱 별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으며, 하나님께서 붙들고 있는 존재는 분명해 보입니다. 2:1에서도 예수님은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금 촛대가 교회를 뜻하기 때문에 일곱 별과 촛대는 교회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다르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칭찬

먼저 에베소 교회를 칭찬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잘한 일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먼저 행위와 수고가 있습니다. 삶으로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인내를 알고,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삶과 신학적인 측면에서 있어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책망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뭘까요? 4절에 보면 처음 사람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5절에서는 처음 행위를 가지라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에베소 교회가 잃어버린 처음 사랑, 또는 처음 행위는 뭘 말하는 걸까요? 종말에 때에 일어난 현상 중의 하나는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24:12) 5절의 떨어지다는 표현은 약함, 패배, 비겁함의 숨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촛대는 진리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촛대를 옮긴다는 말이 교회로서의 사명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심판이라면, 촛대는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신약 속에서 빛은 진리의 말씀과 동시에 성도들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른 진리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사랑이 식어진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겁을 먹고 뜨겁게 사랑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전통도 있고, 바른 교리도 있는 것에 만족해 버리는 것입니다. 굳이 사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을 믿었는데 또 다른 무엇을 해야하는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교리를 알고 믿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런데 주님은 놀랍게 처음 행위를 가져야하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5)고 경고하십니다. 촛대를 옮기는 것은 다른 지역으로 교회를 이동 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존재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즉 교회답지 못한 교회로 만들어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되게 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어떤 교회를 보면 설교도 좋고, 도덕적으로 바르고,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차갑고, 냉랭하고, 이기적입니다. 그냥 서로 대면대면할 뿐입니다. 주님은 그런 교회를 향하여 회개하라라고 책망하십니다. 책망할 뿐 아니라 계속하여 그렇게 한다면 더 이상 교회가 되지 못하게 하겠다고 경고하십니다.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회복할까요? 6절을 보면 니골라 다이 나옵니다. 니골라는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의 한 명이었지만 후에 타락합니다. 그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구원을 받으면 더 이상 바른 삶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헬라적 사상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육신의 정욕을 위해 사용하는 존재들입니다. 니골라 당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에베소교회의 치명적인 약점은 성도간에 사랑과 헌신이 결여 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 생각하라(5절 상)

5절에서 먼저 생각하라라고 권면합니다.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기억하라라는 뜻입니다. 과거로 되돌아가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 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나?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잘못된 길을 선택했고,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조금씩 조금씩 잘못된 길로 빠져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언제 왜 그렇게 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 회개하라(5절 중)

생각하고, 그 다음 회개하라라고 말합니다. 회개는 문자적으로 되돌아 온 길로 다시 거꾸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회개를 울고 불고 하는 것으로 회개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삶을 말합니다. 삶의 태도를 고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언행을 고치고, 우리의 행동을 고치고, 우리의 삶의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 처음 행위를 가지라(5절 중)

가지라( ποιέω)’라는 뜻은 만들다’(12:27)는 뜻입니다. 삶을 차곡차곡 만들어 나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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