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12-18 유혹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시련 속에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과 참된 선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 속에서 다가오는 시험과 유혹은 단지 피해야 할 고통이 아니라, 믿음을 연단하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게 하시는 은혜의 기회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부터 18절은 시련과 유혹의 성격을 분명히 구분하면서도,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창조와 구원의 중심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시련을 통해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1장 구조
1. 시험을 견디는 자에게 주시는 면류관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라" (1:12)
야고보는 다시 한 번 시험에 대해 말합니다. 이번에는 그 시험을 "참는 자"에 초점을 둡니다. '참는다'(ὑπομένει, hypomenei)는 앞서 1:3-4절에서 등장한 '인내'(ὑπομονή, hypomonē)와 같은 어근을 공유하며, 단순한 수동적 인내가 아닌,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지켜내는 영적 긴장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시험'(πειρασμός, peirasmos)과 '시련'(δοκιμή, dokimē)입니다. 전자는 외부로부터 오는 고난이나 내면의 유혹을 모두 포괄하며, 후자는 시험을 통해 드러난 믿음의 진실성과 순도를 뜻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성도의 믿음을 정련하시며, 그들에게 '생명의 면류관'(στέφανον τῆς ζωῆς, stephanon tēs zōēs)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고대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는 화관을 떠올리게 하며, 계시록 2장 10절에도 동일하게 사용되어 순교까지 감당하는 믿음을 칭찬하는 말씀으로 등장합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주해하면서 "면류관은 행위의 대가가 아니라, 믿음을 붙들고 견뎌낸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표지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교부 이레니우스는 "시험을 이긴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인정받으며, 그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생명이 주어진다"고 해석합니다. 따라서 시험은 믿음을 드러내는 현장이며, 그 끝은 멸망이 아닌 생명의 승리입니다.
2. 유혹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욕심 (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13)
야고보는 시련과 유혹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허락하시지만, 결코 유혹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시험받다'(πειράζεται, peirazetai)는 동사는 앞절과 같은 단어이나, 문맥상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여기서는 내면의 정욕을 자극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유혹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는'(ἀπείραστός ἐστιν κακῶν, apeirastos estin kakōn) 분이십니다. 이 표현은 단지 하나님이 죄와 무관하다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안에는 죄를 유발하거나 즐기시는 성향 자체가 없음을 강조합니다. 루터는 이 구절을 두고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시되, 결코 죄에 빠뜨리지 않으신다. 죄의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지는 14-15절은 유혹의 내면적 메커니즘을 드러냅니다. 인간은 자신의 '욕심'(ἐπιθυμία, epithymia)에 끌려 미혹됩니다. 이 단어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보며 욕심을 품은 창세기 3장의 상황과도 연결됩니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자라서 사망에 이른다고 설명합니다. 이 구절은 마치 생물학적 성장 과정을 묘사하듯, 죄의 진행 단계를 보여줍니다.
초대교부 터툴리아누스는 이 구절에 대해 “욕심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부패로부터 태동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성도의 내면을 살필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인간은 유혹을 외부 탓으로 돌리기 쉬우나, 성경은 분명히 그 책임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3. 하나님은 변함없는 선한 주시는 분 (1:16-18)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16-17)
야고보는 앞의 경고에 이어,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을 상기시킵니다. '속지 말라'(μὴ πλανᾶσθε, mē planasthe)는 '길을 잃지 말라', '현혹되지 말라'는 뜻으로, 유혹의 근원에 대해 잘못 이해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은사'(δόσις ἀγαθή, dosis agathē)와 '온전한 선물'(δώρημα τέλειον, dōrēma teleion)의 근원이십니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이 선하였다고 하신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빛들의 아버지'(πατὴρ τῶν φώτων, patēr tōn phōtōn)는 해와 달, 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상징하며, 이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유대적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조물과 달리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불변성과 신실함을 찬양하는 고백입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두고 "하나님은 빛의 근원이실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은 영원히 동일하신 분이시기에 그가 주시는 복도 신실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우리를 대하시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자비와 선하심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마지막 18절은 구속사의 관점에서 이 모든 논의를 결론지어 줍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18)
여기서 '낳다'(ἀπεκύησεν, apekyēsen)는 위 15절에서 죄가 욕심에 의해 잉태되어 사망을 낳는 과정과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아니라, '자기 뜻'(βουληθεὶς, boulētheis)에 따라, 즉 자신의 주권과 은혜에 따라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λόγῳ ἀληθείας, logō alētheias)은 복음을 의미하며, 이는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첫 열매'(ἀπαρχή, aparchē)는 구약 제사법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좋은 첫 소산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새 창조 안에서 교회를 택하셔서 가장 먼저 구속하셨음을 뜻합니다.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이 구절에 대해 "교회는 하나님의 새 창조의 시작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난 자들은 첫 열매로서 온 세상의 회복을 예표한다"고 해석합니다.
결론: 시험과 유혹 속에서도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시험을 견디는 자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내면을 점검할 것을 교훈합니다. 우리는 때로 시험과 유혹을 혼동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그 출처를 구별하라 명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이시며, 우리를 낳으시고 구속하시며,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시험 속에서는 인내로 믿음을 지키고, 유혹 속에서는 자신을 낮추어 회개하며,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구속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길입니다.
야고보서 장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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