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4장1-17 우리는 무엇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가?
야고보서 4장1-17 우리는 무엇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가?
1. 4장 구조
4장은 두 주제로 파고듭니다. 하나는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세상적인 탐욕, 그리고 허탄한 자랑에 대한 경고입니다. 1-3절까지 다툼의 근원을 파헤칩니다. 다툼은 교만이며 정욕에서 나옵니다. 정욕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인데, 하나님께 부여하신 삶의 자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다툼을 세상과 벗 됨의 문제로 연장시킵니다. 4-10절까지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라고 충고합니다. 갑작스럽게 11-12절에서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마지막 단락인 13-17에서는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는 어리석은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의 자랑은 허탄한 것이며, 악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선을 행하지 않음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죄’(17절)가 됩니다.
4:1-11 세상과 벗하지 말라
1-3 다툼의 원인
4-10 세상에 대한 욕심
11-12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
13-17 허탄한 자랑은 죄다
2. 강해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입니다. 그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는 토의의 중심을 보십시오. 그곳에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마음과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누군가 나서서 자신이 희생하고 손해 보겠다고 하면 긴장감은 순식간에 안도감으로 바뀌고 악수하게 됩니다. 평온한 하루는 공짜가 아닙니다. 가정의 평화, 회사의 안정, 국가의 성장은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라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보이지 않은 희생이 사라질 때, 욕심과 탐욕이 충돌하면 다툼이 되고 전쟁이 됩니다. 야고보는 교회 안에 일어나 다툼을 직시하며 타락한 세상의 욕망이 교회 안에서 암덩어리처럼 자라고 있음을 걱정합니다. 암(癌)은 자기만 생각합니다. 죽어야 할 시기에 죽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채웁니다. 그리고 모든 곳에 전이되어 마지막에 몸의 기능이 마비되어 죽을 때 암도 함께 죽습니다. 암은 모순이고, 어리석음입니다. 탐욕에 사로잡힌 성도들이 주도하는 교회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제 교회가 더 이상 희생하지 않으려 합니다. 노도(怒濤)처럼 밀려 들어온 세상이 교회를 전복시키려 합니다.
그들은 세상과 벗한 사람들입니다. 야고보는 ‘간음한 여인’과 ‘세상과 벗 된 것’을 함께 묶어 해석합니다. 부부는 배타적 사랑을 공유합니다. 오직 둘만의 은밀함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다른 외부의 존재가 끼어들 때 그들의 사랑을 깨어지고 맙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철저한 언약 관계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 되어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신의 목숨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다시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며, 배려와 성실을 전제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그들 속에 세상이 깊이 침전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세상을 탐하고 있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3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그들이 세상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해야 하기에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4절)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은 같이 섬길 수 없습니다. 욕망과 사랑은 절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죄의 근원은 욕심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자리한 계명도 욕심입니다. 욕심은 만족하지 않는 것이며,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것입니다. 모든 다툼과 악의 시작은 욕심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던 이유도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은 지옥에서 나오는 것이며, 마귀가 심어 놓은 악한 질병입니다. 야고보의 외침을 들어 보십시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7절) 마귀를 직접 대적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영의 존재이기에 사람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마귀를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모한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5절) 그다음은 ‘겸손’(6절) 해야 합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자신의 악함과 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어서 밀도가 높아 낮은 자들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악은 단단한 것 같고 힘이 센 것 같지만 속이 비어 있어서 마음이 높은 자들에게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세상과 멀어지고, 세상을 가까이하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주 앞에서 낮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높이십니다.(10절) 내가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여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죄인’(8절)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항상 머물러 있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알 때 진실해집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심을 알 때 하나님을 의존합니다. 그는 형제를 비방하지 않습니다. 형제에 대한 비방(카탈라로스)은 잘못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악의적인 비방이며, 사단의 시기와 같은 교묘한 대적입니다.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자입니다. 즉 그는 율법이 ‘잘못’이라고 정하지 않은 것까지 비방하여 그를 깎아내립니다. 하나님보다 더한 비방과 판단은 교만과 악의에서 오는 것입니다. 말씀이 침묵하면 우리도 침묵해야 합니다. 비방보다 사랑을, 판단보다는 섬김을 먼저 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14절)입니다. 야고보는 어떤 도시에 가서 장사하여 큰돈을 벌 것이라 장담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원리와 돈의 흐름을 다 알고 있는 듯 이야기합니다. 해박(該博)해 보이지만 천박한 세상 지식은 허탄한 것입니다. 사람은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존재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을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립니다. 즉물적 인생을 살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우리 손에 잡고 있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현재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지금 여기의 모습이 바로 ‘나’입니다. 야고보는 ‘너는 누구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답해야 합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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