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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7–11 강해, 재림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성도의 삶

샤마임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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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성도의 삶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야고보서 5장 7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이 본문은 단순히 고난에 대한 일반적 권면이 아니라, 종말을 살아가는 신자에게 주어지는 구체적인 삶의 지침입니다. 야고보는 당시 고난 속에 살아가던 초대교회 공동체를 향해, 믿음을 포기하거나 현실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내와 소망으로 반응할 것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본문은 단순한 위로나 인내의 미덕을 넘어서, 재림 신앙 위에 세워진 신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구속사적 흐름 안에서 조명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현실의 불의와 고통 앞에서 어떻게 믿음을 붙잡고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 생각하며, 주님 앞에 정결하고 깨어 있는 삶을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1. 농부의 인내처럼 기다리라 (5: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5:7–8)

야고보는 인내에 대한 실질적인 예시로 농부의 삶을 들고 있습니다. 농부는 씨를 뿌린 후 즉각적으로 결과를 얻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는 땀과 기다림, 예측할 수 없는 날씨의 변수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수확을 바라보며 참고 기다립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길이 참으라'는 말은 헬라어 "μακροθυμέω"(마크로쥐메오)로,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분노와 조급함을 억제하는 깊은 내면의 절제를 포함합니다. 이는 곧 신자의 영적 근육과도 같은 것으로, 고난을 참는 인내가 아닌, 믿음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능동적인 인내입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신명기 11장 14절에 따르면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농사를 짓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과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섭리를 보여주며,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의 때에 맞춰 성숙해질 것이라는 소망을 줍니다.

칼빈은 이 본문을 주해하면서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열매를 맺게 하시는 농부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때를 조급해하지 않고 순종으로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굳게 하라는 말은 헬라어 ‘στηρίξατε’(스테릭사테)로 단단히 세운다는 의미인데, 고난과 유혹 속에서도 신앙의 중심을 하나님께 고정시키라는 명령입니다.

2. 서로 원망하지 말라 – 재림을 기다리는 공동체의 태도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서 계시니라" (5:9)

인내를 실천하는 삶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삶의 형태로 나타나야 합니다. 야고보는 여기서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고난은 개인의 내면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시험하게 됩니다. 그 시험은 갈등, 비난, 불신으로 드러나며 결국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헬라어로 '원망하다'는 단어는 ‘στενάζετε’(스테나제테)로, 깊은 탄식이나 분노의 표현을 의미합니다. 이는 불평과 원망이 쌓여 감정적으로 폭발하거나 타인을 비난하게 되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러한 감정을 입술로 드러내기보다는, 그 모든 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의 자세로 전환해야 합니다.

야고보는 이어서 심판주가 문 밖에 계신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종말의 임박성과 긴박함을 드러내는 구절로, 단지 미래에 있을 심판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을 주목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기시킵니다. 루터는 이 구절을 해석하며 "하나님의 심판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늘 문 앞에 서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자만이 거룩하게 산다"고 말했습니다.

고난 중에 시험이 찾아올 때, 우리는 서로를 탓하기보다, 오히려 더욱 사랑으로 붙들고 위로하며, 함께 견디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가 세상 속에서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회복해야 할 태도입니다.

3. 선지자들과 욥의 인내를 기억하라 (5:10–11)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5:10–11)

야고보는 인내의 실천 예시로 구약의 선지자들을 들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조롱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고, 이사야는 사마리아의 멸망을 외치며 핍박을 감수했습니다. 이들은 시대의 불의 앞에 타협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인내는 사명을 위한 고난이었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또한 욥의 인내는 신자의 고난이 단지 이 땅의 삶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의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구속사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끝까지 놓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주께서 주신 결말’은 헬라어로 ‘τέλος’(텔로스)인데,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완성된 의도와 목적을 담은 결론을 뜻합니다.

터툴리안은 욥을 가리켜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의를 떠나지 않은 참된 경건의 사람”이라고 불렀고, 어거스틴은 “욥의 삶은 고난과 회복이라는 두 축 속에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자비롭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인내의 결과는 단지 보상이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인내는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야고보서 5장 7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참된 인내란 무엇인가를 깊이 되새기게 됩니다. 농부처럼 묵묵히 기다리는 인내,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세우는 인내, 선지자들과 욥처럼 진리 위에 선 인내. 이 인내는 결코 나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을 기다리는 강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 시대는 인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즉각적인 결과와 보상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이 가까우며, 그 날은 심판이자 회복의 날이며,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에게는 하나님 자신을 경험하게 되는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인내하십시오.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그 인내의 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야고보서 5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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