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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넘어야할 장애물

샤마임 2013.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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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넘어야 할 장애물

 

야곱의 생애는 천사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하란으로 도주할 때 꿈속에서 천사들을 보았고, 하란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천사의 두 진영(마하나임)을 보았다. 이뿐 아니라 에서를 만나기 직전 얍복강에서 천사와 부닥친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수종자들로 야곱을 섬겼다.

 

우리는 야곱과 천사를 잘 결부 시키지 않지만 성경은 야곱의 생애가 천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야곱의 생애에서 천사는 객관적이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야곱을 맴도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성경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야곱의 고백을 들어보면 그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즉시 발견한다.

 

천사 또는 하나님은 야곱의 전 생애를 능동적으로 주도하고 있으며, 돌보시고 있다. 벧엘에서 천사들은 하나님과 야곱의 경계에서 둘 사이를 이어주고 있으며, 라반의 음모에서도 천사는 라반의 계획을 무효화시키며, 전적으로 야곱에게 유리하게 역전시키다. 또한 라반에게서 도피할 때도 하나님(천사)은 라반에게 엄중히 경고하여 야곱을 보호하신다. 에서를 만나기 직전에서도 천사(하나님)와의 싸움을 통해 야곱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하며 필요한가를 알려 주신다.

 

야곱이 뛰어 넘어야 했던 것은 에서도, 라반도 아니다.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꾀와 지혜를 신뢰하는 자기 자신이었다. 야곱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그 속에 은혜를 부어주시기 위해 주변에 불편한 존재들을 보내주신 것이다. 불편한 존재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미 천사가 보호하고 있으니, 문제는 바로 야곱 자신이다. 

 

우리의 일상을 면들이 들여다보라. 마음에 걸리고,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없는가. 우리는 늘 그 사람을 주목하고, 배제하려 하고, 분노하고, 복수하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걸림돌은 ‘내 자신’이다. 왜냐하면 야곱을 천사가 돌보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천사가 친히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 안에 존재하는 간사하고 고집스런 야곱’을 이기는 것이다. 

 

김기현 목사는 그의 책 <내 안의 야곱 DNA>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나 자신에게 문제가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변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문제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로 있을 것이다. 야곱은 에서의 마음을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이 눈 녹듯 풀어지기를 구하고 또 구했을 것이다. 그러나(‘그러나’는 필자가 삽입함) 하나님의 응답은 야곱의 변화였다. 야곱이 지닌 단 하나의 문제는 다름 아닌 야곱 자신이었다.”

 

그렇다. 야곱이 넘어야할 존재는 바로 야곱 자신이다. 우리가 넘어야 할 존재는 타자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저는 언제나 제 주변을 보았습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 나를 배신한 사람, 나를 미워한 사람,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가족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진작 보아야 할 내 자신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 주님 어찌해야 합니까? 나의 눈을 열어 나의 어리석음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불신을 보게 하옵소서. 온전히 주님만을 찬양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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