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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샤마임 2021.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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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잊어버립니다. 주님을 위해서 무언가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며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도하고, 기도도하고, 헌금도하고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진작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주님과의 동행’을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믿음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열심은 있지만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주님을 위한 ‘나의 열심’ ‘나의 뜨거운 헌신’은 있지만 주님과 대화하지 않고, 주님을 나의 삶의 동행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열심과 헌신을 헛된 열심, 또는 그릇된 열심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성도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우리의 열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음 두 구절을 살펴봅시다.

사도행전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2:3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는데 이 열심히 얼마나 대단했는지 다른 사람들보다 갑접을 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어떤 열심이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열심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은 바울에게 나타나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묻습니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않는 열심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로마서 10:1-3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10:1-3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봅시다. 오늘 본분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무덤에서 만난 마리아 외에 첫번째 제자들을 찾아가서 만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부활 후 제자들을 찾아 다니면서 계속하여 가르치시고 부활의 증인들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사건은 부활 후 첫 날, 지금 시간으로 주일이 오후쯤 될 것입니다. 29절에서 ‘날이 이미 저물었다’는 표현을 통해 늦은 오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첫 번째 제자들을 만난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이렇게 흘러갑니다. 13절은 ‘그 날에’라고 말합니다. 그날은 부활한 그날을 말합니다. 부활 후 여인들은 예수님을 만난 후 제자들을 찾아와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흥분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제자 중 어느 누구도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크게 낙심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게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약 이십 오리라고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문을 보면 60스타이온입니다. 1스타디온이 약 180m이기 때문에 약 11km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직선거리로 오룡 지구까지 약 7,3km, 일로 읍사무소까지 약 10km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일로까지 거리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성인 남자가 1시간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약간 빠르게 걸으면 약 6km까지 갈 수 있고, 정보로 걸으면 4km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는 약 두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두 사람은 엠마오로 내려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이 불쑥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었습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그러자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인 글로바라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거기서 일어난 이야기를 왜 알지 못하십니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이 대답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매우 짧게 두 구절로 요약정리하고 있지만 아마도 수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침을 튀겨 가며 지금까지 일어난 수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말과 일에 능한 자였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그를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이스라엘을 속량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든데 이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오늘 아침에 어떤 여인들이 무덤에 갔다고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살아난 것을 보았다. 다른 제자들이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갔으나 예수는 보지 못했다. 그게 바로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 핵심은 그들의 말들은 모두 자신들의 생각으로 꽁꽁 묶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생각했고, 나는 기대했고, 나는 들었고, 나는 그랬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 책망하시면서 성경을 풀어 주십니다. 27절을 읽어봅시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여기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매우 유심히 또는 정직하게 읽는다면 메시야가 고난을 당할 것이고 또한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잘못된 생각에 빠진 이유가 뭘까요? 근원적인 이유는 정직하게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모든 오류와 왜곡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가장 먼저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줍니다. 구약성경의 목적, 구약성경이 궁극적으로 뭘하고 싶은지를 해석해 줍니다. 성경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단지 이스라엘 사람들의 과거나 역사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등의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분을 믿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합니다. 성경의 모든 촛점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저녁이 다 되어가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른 곳으로 가려는 것을 아시고 함께 유하자고 그들을 집으로 초대합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은 식사를 하면서 그들에게 떡을 떼어 축사, 즉 감사 기도를 드린다음 떼어 줍니다. 마치 오병이어 사건과 비슷하고, 마지막 만찬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께서 준 떡을 먹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31절을 보시면 ‘그들의 눈이 밝아져’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이 왜 중요한가 이 시건이 일어날 나는 초기인 16절을 보면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 그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단순히 맹인이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해석의 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열왕기하 6장에서 비슷한 사건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사환의 눈을 여셔서 하늘의 불말과 불병거를 보여주십니다.

열왕기하 6: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반대로 아람군대의 눈을 보지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그래서 그들이 엘리사가 어디로 이끄는지 그대로 따라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눈은 보이는 눈이 아니라 총명, 즉 상황을 파악하는 이해력을 말합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사도 바울에게도 일어납니다. 그가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로 갈때 부활의 주님께서 하늘의 강력한 빛으로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바울은 그 자리에서 시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회개하고 아나니아의 세례를 받을 때 바울의 눈에 있던 비늘이 벗겨지면서 그때서야 보게 됩니다. 본다는 말은 이해한다는 말입니다. 드디어 영적인 눈이 띄여 무엇이 진실인지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육신의 눈은 있으나 아직 영적인 눈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열심은 있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과 함께 했으니 예수님을 알아보는 이해력을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오류, 왜곡은 언제 바뀌느냐 바로 성만찬 사건을 통해 그것이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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