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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VS 바울

샤마임 2018.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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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바울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국교회 안에서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예수와 바울의 사이다. 


현재 옥성호의 <신약성경이 숨긴 야고보를 찾아서>에서는 바울의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이방인 교회가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를 숨기려 했다는 주장을 한다. 그래서 제목을 야고보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필자는 이 책을 읽고 상당히 매력을 느꼈는데, 성경을 파헤치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과연 그것이 진실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현재 우리가 믿는 교리, 이것은 바울이 만들어낸 가짜 교리를 믿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가능할까 싶어 자료를 찾아 탐색을 나섰다. 현재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는 고작 톰 라이트를 주자로한 샌더스 등의 “바울을 보는 새 관점”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이야기와 맞물려 있다. 일단 '예수인가 바울인가'라는 글을 읽어 보길 권한다.


일단, 옥성호가 주장하는 이들을 '반바울'이라 칭하겠다. 에비온파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협소하기 때문이다. 반바울이 주장하는 몇 가지 특징들을 일단 정리해 보자. 


1. 신약성경은 바울의 야고보를 숨기기 위한 의도 속에서 기록된 것이다. 그중에서 요한 복음이 가장 후반에, 완벽하게 기록된 것이다. 복음서의 기록 속에는 의도적으로 야고보를 숨기려 했다는 증거들이 있다. 


2. 예수는 세례를 받고 메시아로 부름을 받은 것이지 신성을 지닌 하나님은 아니다. 이런 주장은 복음서의 기적들과 특히 요한 복음 1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에비온파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선생과 메시아로 인정한다.


3. 예수는 대속의 제물이 아니다. 초기에 기록된 공관 복음서는 실수로 성만찬을 기록했다. 하지만 요한 복음은 의도적으로 예수를 성만찬, 즉 출애굽의 어린양으로 만들기 위해 '아직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구절을 삽입한다. 요한복음에서 성만찬은 없다. 이것은 다른 복음서의 실수?를 요한복음이 극복하려는 시도라 본다. 실제로 학자들은 공관 복음서의 성만찬은 고난의 주간이 아닌 다른 해?에 행한 것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이부분은 필지가 <에비온파의 역사와 교리>에서 조금 다루었다.


4. 원죄를 부정한다. 사람은 타락했으나 '전적 타락'은 아니다. 사람은 충분히 율법을 지켜 의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주장이다. 필자는 이것을 <유대인은 원죄를 믿었는가?>에서 간략하게 정리했다.


5. 예수는 정상적인 성관계를 통해 태어난다.고 믿는다.


이제 이곳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제목들이 몇 개 보인다. 먼저 진짜 예수는 누구인가? 와 사도들과 바울과의 관계 등이 핫이슈가 될 것이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다음 논쟁인 <역사적 예수>의 이야기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주장의 한 증거일 뿐 핵심은 아니다.


프레데릭 느루아르는 <신이 된 예수>(창해)에서 '성부수난설'이 단일신론 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묘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단일신론의 선상에 있는 성부수난설은 신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신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며 수난당했다는 주장을 지지한다.반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신이 노예들이나 당하는 치욕적인 십자가 고난을 받았다는 주장을 도저히 받아 들이지 못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모욕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174쪽)


사실 초대 교회 안에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자리가 애매했다. 유대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반바울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중요한 단서다. 만약 그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성전에서 제사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삶으로서 율법은 맞지만 예수의 죽음을 대속의 의미로 받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제사를 드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요한복음과 사도행전, 특히 로마서, 갈라디아서, 그리고 저자가 모호한 히브리서의 경우 성전제사에대해 저주하듯 금지시킨다. 


히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 7: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히 7: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특히 7:27의 '단 번에'는 예수의 속죄 사건을 통해 모든 인류의 죄가 사해졌음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구절이다. 이러한 서신들은 정확하게 바울의 주장을 따르고 있다. 또한 초대교회 교부들 역시 바울의 신학과 거의 일치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바울이 사도들과 적대적일 수 있다는 주장은 약간 설득력을 잃는다. 속사도들은 살아 있는 사도들과 친했기 때문에 그들이 바울편만을 든다는 것은 무리다. 


이것은 가장 초기 교부에 속하는 로마의 클레멘스(-101), 이그나티우스(-108), 폴리갑(-156), 헤르마스(-150) 등의 문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필자가 소장한 이그나티우스의 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명백하게 초대교회 가운데 중요한 교리로 자리 잡았음을 말한다. 문제는 명백하게 '예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했다'는 말이 없고 비슷한 문장이 있을 뿐이다. 즉 '하나님의 빵, 곧 다윗의 자손 예수 그르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피, 곧 썩어지지 않을 사랑을 음료로 모시기를 원합니다.'라는 문장이다. 이것은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보아도 분명히 성만찬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대속의 문제는 역시 정확하지 않다. 


이것은 어쩌면 정말, 대속의 의미는 그들에게 없었을 가능성도 희미하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이그나티우스 <일곱편지> 분도출판사

프레데릭 르누아르 <신이 된 예수> 창해

존 도미닉 크로산 <역사적 예수> 한국기독교연구소


예수인가 바울인가 http://www.ct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1481


Jesus vs. Paul http://www.christianitytoday.com/ct/2010/december/9.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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