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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3장 묵상 강해설교

샤마임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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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과 그 권세에 속지 말라: 마지막 때 교회의 분별

요한계시록 13장은 성도들에게 심각한 경고와 동시에 깊은 영적 통찰을 줍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짐승의 등장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실체를 드러내는 묵시적 상징입니다. 이 장은 단순한 종말론적 이야기라기보다, 시대를 초월하여 반복되는 하나님 나라와 세속 권세 간의 충돌을 고발합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바다에서 나온 첫 번째 짐승의 권세 (13:1-10)

요한은 바다에서 한 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봅니다. 이 짐승은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졌고, 그 뿔들 위에는 열 개의 면류관이 있고, 머리들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3:1). 여기서 "바다"(θάλασσα, thalassa)는 고대 근동 문화에서 혼돈과 악의 원천을 의미하며, 이 짐승은 정치적 권력을 상징합니다. 그의 열 뿔과 일곱 머리는 다니엘서 7장의 네 짐승과 연결되며, 그 모든 악한 권세들이 통합된 종합체로 등장합니다.

 

이 짐승은 용, 곧 사탄으로부터 권세와 보좌와 큰 권능을 받았습니다(13:2). 헬라어 "ἐξουσία"(exousia, 권세)는 정당한 통치 권한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사탄이 허락한 불법적인 힘을 나타냅니다. 사람들은 이 짐승을 경배하며 "누가 이 짐승과 같으며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겠느냐" 말합니다(13:4). 이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찬양을 짐승에게 돌리는 심각한 우상숭배입니다.

 

이 짐승은 큰 말과 하나님을 비방하는 말을 하며, 성도들과 싸워 이기고 온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받습니다(13:5-7). 그러나 "싸워 이기고"라는 표현은 현실적인 박해를 의미하지, 영원한 승리를 뜻하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의 권세가 때로는 성도들에게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제한된 시간 안에서 허락된 것임을 강조합니다(13:5, "마흔두 달").

 

특히 13:10에서는 “포로 될 자는 포로 되고,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라 하며, 이것이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을 요구하는 시점임을 선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 지금 당장은 고난일지라도 끝에는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붙들고 계심을 믿으라는 메시지입니다.

 

땅에서 올라온 또 다른 짐승: 거짓 선지자 (13:11-15)

이제 또 다른 짐승이 등장합니다. 그는 땅에서 올라오는데, 어린 양처럼 두 뿔을 가졌으나 용처럼 말합니다(13:11). 이 표현은 외형은 온순하고 거룩하게 보이지만, 그 실체는 사탄과 같은 거짓을 퍼뜨리는 자임을 나타냅니다. 이 짐승은 종교적이고 영적인 권위를 가장하여 사람들을 첫 번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만듭니다(13:12). 많은 학자들은 이 짐승을 종교 권력, 특히 정치 권력과 결탁한 왜곡된 종교적 체계로 이해합니다.

 

13:13-14에서 이 짐승은 큰 이적을 행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기적은 엘리야를 모방하는 듯한 모습이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능력으로 묘사됩니다. 헬라어로 "σημεῖον"(sēmeion, 이적)은 종종 참된 기적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미혹을 위한 거짓 이적입니다. 그는 짐승의 우상을 세우고, 생기를 불어넣어 말하게 하며, 경배하지 않는 자를 다 죽이게 합니다(13:14-15). 이는 구약 시대의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우상 숭배와 그에 반대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시 말해 이 본문은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압박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짐승의 표와 숫자 666 (13:16-18)

마지막 절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절정을 이룹니다. 이 짐승은 모든 사람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며, 이 표 없이는 사고팔 수 없도록 합니다(13:16-17). 여기서 헬라어 "χάραγμα"(charagma, 표)는 노예에게 새겨진 낙인을 가리키며, 충성의 표시를 의미합니다. 즉, 이 표는 단순한 물리적 마크가 아니라, 우상에게 충성하는 영적 정체성과 소속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666입니다(13:18). 고대 유대 전통에서는 숫자에 이름을 대입하는 ‘게마트리아’ 방식이 있었고, 많은 해석자들은 이것이 네로 황제를 지칭한다고 봅니다. 히브리어로 네로 카이사르는 수치로 환산하면 정확히 666이 됩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의미는, 이 숫자가 완전수인 7에 못 미치는 불완전함, 즉 인간 권세의 궁극적 한계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 반복된 6은 삼위 하나님의 숫자인 3과도 대조되며, 완전함을 흉내 내는 불완전함, 즉 거짓 삼위일체의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666'은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 등장하며, 짐승의 수이자 사람의 수라고 언급됩니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깊은 상징을 지닌 수입니다. 고대 유대 전통의 ‘게마트리아’ 방식에 따르면, 히브리어로 “네로 카이사르”를 계산하면 666이 되며, 역사적으로 네로 황제를 지칭하는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상징은 이 숫자가 완전수인 7에 미치지 못하는 6이 세 번 반복된 수라는 점입니다. 이는 불완전함, 거짓, 하나님을 흉내 내려는 인간 권세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세 번 반복된 6은 마치 거짓 삼위일체, 즉 사탄과 그 동맹 세력의 모방과 기만을 상징합니다. 결국 666은 완전한 듯 보이나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세속 권력의 한계와 교만을 경고하며, 참된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 속했음을 드러냅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13:18). 이는 단지 계산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세상의 권세 이면에 있는 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요청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경제적 통제와 안전을 약속하지만, 그 내면은 영적 타락과 사탄의 속박입니다.

 

결론

요한계시록 13장은 단순한 종말의 예언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가 마주하게 될 현실을 보여줍니다.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기만, 경제적 통제는 성도들을 넘어뜨리려 하지만, 이 본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인내와 믿음이 성도들에게 필요하니라"(13:10). 참된 그리스도인은 표를 거부하고, 죽기까지 충성함으로 어린양을 따르는 자입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세상 권세의 표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로서, 진리를 향한 담대한 증언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요한계시록 장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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