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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0절 원어 주해

샤마임 2024.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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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0절

1. 분석

요한복음 1장 10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한복음 1장 10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으나, 세상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현실을 묘사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한 인간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의 창조주로서 이 땅에 임하셨다는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분을 영접하지 않은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첫 번째 부분,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가리킨다. 헬라어로는 "ἐν τῷ κόσμῳ ἦν" (en tō kosmō ēn)으로, 문자 그대로 "그가 세상에 있었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세상"(κόσμος, kosmos)은 단순히 물리적인 우주나 지구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에서는 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는 인간 사회와 시스템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 진리를 나타낸다. 이는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선언과 연결된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세상과 관계를 맺기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셨다는 놀라운 진리를 드러내며, 성육신 사건의 깊은 의미를 내포한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셨다는 사실은 그분이 단순히 하늘에 계신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 참여하신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는 구약의 하나님이 성막과 성전에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셨던 것과도 연결된다(출애굽기 25:8-9). 그러나 그 성육신이 가져온 놀라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계신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나"

두 번째 부분,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구절에서 "세상"이라는 단어는 창조된 모든 세계를 의미하며, 이는 앞서 요한복음 1장 3절에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라는 구절과 연결된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창조주로서 만물의 기원이 되는 분이다. "그로 말미암아"는 헬라어로 "δι᾽ αὐτοῦ" (di’ autou)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창조 행위를 분명히 한다. 이는 골로새서 1장 16절에서도 "그(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창조되었고"라는 선언과 일치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창조 신학과 기독론이 깊이 연결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구약 성경에서 창조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다(창세기 1장). 그러나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의 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주체임을 분명히 한다. 그분을 통해 세상이 창조되었고, 모든 존재가 그분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아이러니는 바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은 그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창조주가 그 창조물 가운데 오셨지만, 창조물은 창조주를 알지 못하는 불신앙의 현실이 요한복음 1장 10절에 담겨 있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 번째 부분,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는 세상의 영적 무지를 지적하는 구절이다. 여기서 "알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한 인지나 지식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헬라어로 "알지 못하였다"는 표현은 "οὐκ ἔγνω" (ouk egnō)로, 이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인격적 관계)과 연결된 단어이다. 이 문장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나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한다(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러나 세상은 창조주와의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를 배척하고 거부했다.

 

세상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세상이 그분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으며, 그분의 존재와 사역을 부정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죄로 인한 영적 어둠과 하나님에 대한 반항을 나타낸다. 세상은 창조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고, 결국 그분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일어났지만, 인간의 죄성과 영적 무지로 인해 세상이 그분을 영접하지 못한 비극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요한복음 전체에서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께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인류를 상징한다. 요한복음 3장 19절에서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의 행위가 악함으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고 한 것처럼, 세상은 그분의 빛을 거부하고 어둠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반응은 인간의 죄성과 완고함을 보여주며, 세상이 하나님과 그분의 구속 계획을 얼마나 오해하고 거부하는지를 잘 나타낸다.

 

2. 성경신학적 통찰

요한복음 1장 10절은 구약과 신약의 창조와 구속의 개념을 깊이 연결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창조 사역, 그리고 세상의 반응이라는 세 가지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다룬다.

 

먼저, 창조와 성육신의 주제가 구약 성경과 연결된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3절은 이 창조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며, 그분이 바로 창조주이심을 명확히 한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지으신 분이며, 그분을 통해 만물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한복음 1장 10절에서 이 창조주가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속해서 계시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그를 거부한 구약의 역사와 유사하다.

 

특히 예언서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선지자들을 핍박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사야 53장 3절에서 메시아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버림받았다"고 묘사되며, 그리스도가 거부당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0절은 이 예언이 성취된 사건을 반영하며, 세상이 창조주를 영접하지 않은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출애굽 사건과 성막의 개념도요한복음 1장 10절과 연결될 수 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성막을 통해 그들과 함께 거하셨다(출애굽기 25:8).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종종 그분의 임재를 배척하고 우상 숭배에 빠지곤 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을 통해 인간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나, 세상은 그분을 거부했다. 이처럼 구약의 역사는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백성과 함께하려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거부당하고 배척당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신약에서도 이러한 패턴은 계속된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세상의 대부분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배척했다. 요한복음 12장 37절에 보면 "비록 예수께서 이토록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였다"는 구절이 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으며, 이로 인해 그분은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은 구속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3. 기독론적 해석

요한복음 1장 10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분의 거부당함을 다루는 기독론적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며, 영원한 로고스로서 세상을 지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단순히 창조를 완료하시고 하늘에 머무신 것이 아니라, 그 창조 세계 속으로 들어오셨다. 이는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적인 "성육신" 교리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임마누엘), 우리의 구원을 위해 친히 오셨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택하셨으나,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우상 숭배와 죄에 빠졌다. 그 결과,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셨으나, 이스라엘은 그들을 거부했다(예레미야 25:4,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실패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자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시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나 구약의 패턴대로,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부당함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죄성과 영적 어둠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며, 세상에 생명과 빛을 가져오신 분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 빛을 거부하고 어둠을 사랑했다(요한복음 3:19). 이로써 그리스도는 단지 인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신적 차원에서 거부당하셨다. 그분이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이러한 거부당함의 절정이지만, 동시에 구원의 길을 여는 사건이기도 하다.

 

4. 현대적 적용

요한복음 1장 10절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창조주로서 우리에게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한 현실을 지적한다. 이 같은 반응은 현대 사회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며,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대 사회는 물질주의와 세속적인 가치관에 빠져, 영적인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세상의 소음에 휩싸여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요한복음 1장 10절은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함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또한, 이 구절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사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세상은 여전히 그분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빛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그분의 빛을 세상에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사랑과 진리를 전해야 한다.

 

요한복음 1장 10절은 또한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단순한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깊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그분을 알아가야 한다.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듯, 우리도 때로는 그분을 우리의 삶에서 밀어내고 무시할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그분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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