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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 4:7–12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샤마임 202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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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사랑의 근원과 실천

요한일서 4장 7절부터 12절은 사도 요한의 사랑의 신학이 절정을 이루는 대목입니다. 그는 단순히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그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났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르칩니다. 이 본문은 단지 윤리적 권면이 아니라 신학적 고백이자 실천적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난 사건이며,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가 증명된다는 신비롭고도 실제적인 선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며, 그 사랑을 따라 사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붙들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납니다

사도 요한은 7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이 말씀은 단순한 감정의 유대를 넘어,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실천이 곧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사랑'(ἀγάπη, 아가페)은 헬라어로서 조건 없는,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ἐκ τοῦ θεοῦ ἐστιν, 에크 투 테우 에스틴)이라는 표현은 사랑의 본질적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라는 표현은 거듭난 자, 곧 성령으로 새롭게 된 자가 자연스럽게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는 영적 원리를 설명합니다. 이는 단지 도덕적 노력이나 이상적인 인간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비롯된 삶의 열매입니다.

 

요한은 이어서 8절에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단언합니다. 이 구절은 기독교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본문 중 하나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ὁ θεὸς ἀγάπη ἐστίν, 호 테오스 아가페 에스틴)라는 선언은 하나님 본성의 핵심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설령 종교적 열심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안다'(γινώσκει, 기노스케이)는 헬라어로 지식 이상의,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는 자는 반드시 사랑으로 그분의 본성을 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요한은 9절과 10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나타난 것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여기서 '나타난 바 되었다'(ἐφανερώθη, 에파네로데)는 동사는 하나님의 사랑이 눈에 보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드러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사랑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입니다.

 

'독생자'(μονογενῆ, 모노게네스)는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신성을 나타내며, 그분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과 깊은 연관을 가지며, 하나님의 사랑이 단지 감정이나 축복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실체적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10절은 그 사랑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설명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여기서 '화목 제물'(ἱλασμός, 힐라스모스)은 구약의 제사 개념과 연결된 용어로, 죄를 속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제사적 희생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용서하고, 끊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며, 생명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어떤 공로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주도적 구속 행위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초대교부 이그나티우스는 이 대목에 대해 “사랑은 말로 증명되지 않고 피로 증명되었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를 강조했습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이 나타납니다

11절과 12절은 받은 사랑을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여기서 '마땅하다'(ὀφείλομεν, 오페이로멘)는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강한 윤리적, 영적 의무를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반드시 사랑으로 반응해야 하며, 그것이 참된 은혜의 수용 방식입니다.

 

이어지는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이 말씀은 매우 깊은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τετελειωμένη, 테텔레이오메네)는 완성형 동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성숙하고 완성된다는 신비로운 선언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본 적이 없는 세상이, 교회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은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통로이며, 공동체 안에서 사랑이 실현될 때 그곳에 하나님이 실제로 거하신다는 신비한 진리가 선포됩니다. 초대교부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교회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유일한 창이다”라고 말하며 이 구절의 실천적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명령이기 이전에 정체성입니다. 사랑은 단지 교회 안에서의 의무감이나 외형적 화합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도우며, 참으며, 축복할 때 그 자리에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결론

요한일서 4장 7절부터 12절은 사랑의 본질, 근원, 실천에 대해 신학적이고도 실천적인 진리를 선포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자는 반드시 서로를 사랑해야 하며,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됩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사랑은 곧 신자의 존재 이유이며, 하나님과의 연합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가장 거룩한 통로입니다.

요한일서 3장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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