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탐욕의 죄
욕망 탐욕의 죄
사소한 사건이 결정적 운명으로 다가온다……. 키 기수?
세상의 모든 죄는 탐심으로부터 온다. 탐심의 성경적 의미는 하나님께서 내게 하락해준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즉 나의 경계선을 넘어 남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남의 것을 소유하려는 것이 욕망이다. 성경에서 가장 악한 죄를 바로 탐심이다. 심지어 우상숭배라고 말한다.
우상숭배는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로 드러나지만, 본질적인 것은 ‘나를 숭배하는 것이 우상숭배다’ 최초의 인류 타락의 이유는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기보다 ‘나의 선택’을 원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사단의 유혹은 ‘하나님처럼 주인이 된다’는 뜻이다. 즉 그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은 인간이 신이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 저주는 유효하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대 이기주의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
아합의 멸망이유이다. 앞장에서 아람과의 전투에서 아합의 죽음을 예견하지만 이곳을 통해 결정적으로 확정된다. 마치 확인 사살하는 듯하다. 20장이 공적인 의미에서 이유라며, 21장은 아주 사적이면서 반율법적인 이유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아합은 이스르엘 여름 별장에 갔다. 그곳에서 궁 옆에 자리한 나봇의 포도원을 발견하고 그곳을 자신의 채소밭으로 삼고자한다. 나봇에게 더 좋은 밭을 주거나, 원하면 더 많은 돈을 얻어 줄 테니 달라고 한다. 그러나 나봇은 거절한다. 이유인즉 하나님께서 이 땅을 팔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봇은 이일로 말미암아 이세벨에게 죽임을 당한다.
모두가 불편한 계명을 지키기보다 시대의 조류를 따라 사고판다. 그러나 바보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다리 밑에서 애인과의 약속을 기다리다 빠져죽은 사람 말이다. 우직함……. 그러나 결국 이 우직함이 사회를 바꾼다.
나봇은 선량한 주민이다. 말씀이 성실히 반응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죽은 것이다. 아합의 욕망이 나봇의 진실을 파괴시켰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은 작지만, 그 속에 거대한 음모가 개입된다.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아합을 저주한다.
이세벨은 듣고 모의하고 권력을 남용하고 악의 세력과 결탁하고 거짓으로 증인을 세워 죽인다.
악은 반드시 결탁한다.
거짓 증인을 세워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고 거짓을 진실로 전복시킨다. 율법의 저주가 있으리라! 탐욕은 반드시 거짓으로 나아간다. 탐욕은 법으로 금지한 것을 갈망하므로 속임과 술수가 반드시 뒤따른다. 하지 말아야 할 것, 넘지 말아야 할선을 넘어간다. 욕망이 그렇게 한다.
탐욕은 거짓을 선으로 위장한다.
성동격서(聲東擊西)가 바로 그 위장술이다. 동쪽에서 소리를 내어 정신을 빼앗은 다음 서쪽을 공격하여 적을 무너뜨린다.
왕하 9:26을 보면 이세벨은 나봇의 아들들까지 죽였다.
탐욕, 처음에는 작은 것이지만 점점 커지고 엮어져, 손을 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그래서 초전박살내야 한다. 처음에 회개해야 한다.
탐욕은 충신을 멀리한다.
즉 간신을 모은다. 아합은 믿음의 사람이고 성실하였지만 자신 속에 있는 탐욕을 포기하지 못함으로 이세벨이 그 탐욕을 기반으로 힘을 받는다. 이세벨은 아합의 탐욕이 낳은 사생아이다. 아비멜렉이 기드온의 교만의 사생아이듯, 아담의 욕망의 사생은 가인이다. 포기하지 못한 작은 욕망들이 자라나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
22장에서 아합은 참 선지자인 미가야의 예언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숨겨진 아합의 탐욕이 드러난다. 좋은 말만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에게 속임을 당해서 죽게 된다.
포기하라. 만족하라. 감사하라.
마지막으로 주님의 십자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인류를 구원코자 십자가를 지셨다. 이것이 진정한 제자들의 모범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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