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필드씨 제발 좀 마이크 내려 놓고 쉬세요
윗필드 씨 제발 좀 마이크 내려놓고 쉬세요
아놀드 A. 댈리모어 / 오현미 옮김 / 이레서원
조지 윗필드는 언급하지 않고 18세기 영국과 미국의 대부흥운동을 논하기를 불가능하다. 역사는 승지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록한 자의 승리이기도 하다. 당대에는 웨슬리 형제보다 월등한 인기와 능력, 영향력을 끼쳤지만 안타깝게 조지 윗필드는 기록하지 않았고, 웨슬리는 기록했다. 결국 18세기 영국 대각성 운동의 승지라는 웨슬리로 기억한다.
존 웨슬리기 조지 윗필드보다 뛰어나다 기억하게 된 것은 그의 두 가지 업적 때문이다. 하는 그의 조직력과 다른 하나는 그의 기록이 남겨졌기 때문이다. 현재도 존 웨슬리의 일기는 감리교도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경전과 같은 책이다. 존 웨슬리의 일기는 끊임없이 개정판이 출간되고 있으며, 한국도 여전히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형제인 찰스 웨슬리는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지닌 덕에 수많은 찬양을 지었으며, 2010년 대한기독교감리회는 <웨슬리 찬송시 선집>을 출간까지 했다. 현재 우리나라 찬송가에도 찰스 웨슬리의 찬양이 담겨 있다. <내주는 살아 계시고> <만 입이 내게 있으면> <천사 찬송하기를> <예수 부활했으니> <천부여 의지 없어서> 등이 있다.
18세기 영국 대각성 운동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초기의 형태는 조지 윗피드에 의해 시작된 설교 중심의 부흥 운동이다. 조지 윗필드는 강력한 칼뱅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다. 두 번째는 조지 윗필드의 조언으로 광부들에게 길거리 설교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부흥의 흐름을 만들어낸 웨슬리 형제의 조직적이고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흐름이다. 마지막은 이론으로만 남아있던 사랑을 사회참여로 드러내야 한다는 강력한 신념을 실제로 실천하고 표방한 윌리엄 윌버포스를 대표로 하는 사회 복음주의자들이다.
조지 윗필드(1714-1770)는 1703년에 태어난 존 웨슬리보다 11년이 젊었지만 극도로 과로한 탓에 일찍 세상을 떠나고 존 웨슬리는 1791년까지 생존하면서 무려 윗필드보다 21년을 오래 산다. 존 웨슬리는 산업혁명 시대에 보기 드물게 장수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윌버포스는 1759년에 태어났으니 동시대 인물이긴 하지만 시대적으로 윗필드와 웨슬리의 부흥 운동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시작한 2세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책은 1992년 두란노 출판사에서 번역된 책이다. 저자인 댈리모어는 원래 조지 윗필드의 전기를 두 권으로 출간했다. 2015년 복있는사람에서 한 권으로 묶어 출간했다. 1300페이지가 넘어가는 이 책은 보기에도 부담스러울 만큼 엄청난 분량이었다. 댈리모어는 독자들의 요청과 더불어 스스로도 분량을 간추려 한 권으로 담고 싶은 마음으로 기존의 윗필드 전기에서 중요한 부분만을 추려내 한 권에 담았다.
어린 시절을 윗필드는 행복하지 않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는 재혼을 한다. 하지만 결코 행복한 가정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여관일을 도우면서 자랐다. 그러다 옥스퍼드에서 홀리 클럽으로 불리는 이들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웨슬리 형제를 만나게 되고 영향을 받게 된다. 이때 헨리 스쿠걸의 <인간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란 책을 접하게 되고 거듭남에 대해 알게 된다. 이 문제는 조지 윗필드를 비롯한 이후의 많은 목회자들에게 중요한 이슈가 된다. 하지만 거듭남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조지 윗필드가 펨브룩 칼리지 기숙사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아니면 옥스퍼드 캠퍼스의 어딘가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 거듭남을 체험했다고 말한다.
서평에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회심에 대해 두 가지 주장이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즉각적 회심론과 점진전 회심론이 존재한다. 조지 윗필드를 비롯한 부흥론자들은 즉각적 회심론을 선호하다. 하지만 이후 반론을 재기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모태신앙을 가지고 갑작스러운 체험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믿고 거듭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시 대부분은 즉각적 회심론을 주장했다. 조지 윗필드를 비롯한 웨슬리는 초기의 회심에 대해 많은 부분을 다루며 그들의 사역의 방향과 목적 역시 회심을 위한 설교로 채워져 있다는 것 또한 당시의 부흥운동의 중요한 흐름들이다.
회심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이야기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약했는가 보다. 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성경을 읽으면 영적 독서를 이어갔다. 이때 서적상이었던 가브리엘 해리스가 외상으로 윗필드에게 <매튜 헨리 주석>을 주었고, 그때부터 조지 윗필드는 매튜 헨리 주석의 열열한 팬이 되었다. 스물한 살이 되던 1736년 6월 20일 드디어 임직을 받게 되고, 목회자로서의 정식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조지 윗필드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 산업화로 인해 인간은 소외되고 영성을 바닥에 떨어진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윗필드의 설교를 계속하여 요구했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열정은 결국 일찍 주님의 품으로 가게 만들었다. 영국과 뉴잉글랜드(현재의 미국 북동부)를 오가며 뉴잉글랜드에서 대각성 운동을 리더했던 조나단 에드워즈와도 교제를 나누었다. 1770년 9월 30일, 그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숨을 거두고 주님께 돌아간다. 그날은 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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