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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피터슨,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

샤마임 2013.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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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

유진피터슨 / 양혜원 옮김 / 홍성사

 

 

제목이 기(氣)막히다. 원제는 Like Dew Your Youth다. 굳이 번역하자면 ‘이슬 같은 당신의 십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번역된 제목이 훨씬 선명하게 주제를 드러내 준다. 십대, 결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거북한 존재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부모에게는 ‘거룩한 십대’가 되게 해야하는 의무(義務)가 지워진다. 자, 그럼 거북한 십대를 어떻게 거룩하게 할까.

 

먼저 저자인 유진 피터슨 목사님부터 소개해 보자. 독서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분이 얼마나 유명한 저술가이며 영성 신학자인가를 알 것이다. 목사의 목사로 불릴만큼 목회자들을 돌보는 사역까지 감당하는 이 시대의 탁월한 영적 지도자이다. 국내에 소개된 책만해도 백여권에 달한다. 성경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낸 <메시지 성경>을 비롯하며, <이 책을 먹으라>,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 <교회에 첫발을 디딘 내 친구에게> <자유> <현실: 하나님의 세계>가 있고, 성경을 풀어낸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최근에 발행된 <사무엘서 강해>가 있다. 저자에 대해서 소개하고픈 마음은 많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곧바로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청소년기 이해하기

 

-재개발 시기

거룩한 십대로 가는 첫 걸음은 십대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생물학적 차원에서 십대의 뇌는 재개발(再開發) 중이다. 전전두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통제불능 상태에 종종 빠지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쉽게 흥분하고 감정이 불안정해 이성적인 판단이 어렵다. 이뿐 아니라 단기기억 저장 능력이 약해 약속을 자주 잊어먹고 한 곳에 오랫동안 집중하지 못한다. 이러한 성향은 쉽게 중독에 빠지는데, 섹스나 술, 담배, 게임 등에 노출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십대는 모든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하나님의 선물


기독교인의 십대 이해는 생물학적 십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충분히 이해하고 품고 가야 한다. 그럼에도 생물학적 차원에 함몰되어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거룩함을 추구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저자는 십대를 부모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선물’로 정의 한다. 어떤 의미일까? 십대는 둔 부모의 연령대는 보통 삼십대 후반에서 오십대 초반이다. 소위 중년의 시기로 ‘침체 되거나 우울해지기’(16쪽) 쉬운 시기다. ‘겉으로는 성공한 경우라도 속으로는 메마르고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희망은 다 시들어 버린 것만 같’다.(16쪽) ‘그 때 하나님의 선물이 찾’아 온다. 거룩한 포장에 싸인 십대가 그들의 선물이다. 십대를 통해 무덤덤한 중년이 요동치고 삶의 익숙함이 낯설게 느껴진다.

 

-자기를 알아가는 시기


‘청소년기는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시기’다.(29쪽) 의존적 성향이 강했던 유년 시기에서 완전한 독립된 객체로 살아가기 위해 자기를 찾아가는 모험의 시기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자기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아직 성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모호한 시기다. 청소년기는 무엇보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며 어려운 시기다. 절대적 간섭은 아니지만 무조건적 방치 또한 아이를 망친다. 자녀와의 적절한 관계 유지와 일관성있는 교육을 통해 온전한 성인으로 자라도록 배려하고 가르쳐야 한다. 저자는 사무엘의 소명 장면을 예로 들면서 이름을 불러 줌으로 개별적인 존재로 세워졌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불러 주심으로 존재를 인정하듯 부모도 십대의 자녀를 그렇게 대해야 한다.

 

-권위에 대한 도전


독립적이고 개별적이 된다는 말은 부모의 권위에 대한 분립 또는 저항을 포함한다. 십대를 둔 부모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그들이 저항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저항하는 십대를 ‘때릴 수 있는 성경적인 구실을 원’(65쪽)한다. 누가복음 2장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되돌아 오지 못해 가족들이 찾으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어린 예수는 부모님들에게 ‘내가 아버지에 집에 있어야 할 줄 왜 모릅니까?’(눅2:49)라고 되묻는다. 예수님의 이 말은 부모가 더 이상 자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강제할 수 없음을 말한다. 자식은 더 이상 부모의 종속된 존재가 아니다. 이 예를 통해 ‘새롭게 바뀐 현실을 포괄하는 융통성있는 모델’이 된다.

 

-배움이 필요하신 시기


절대의존의 유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자립의 성인도 아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십대는 더 배워야 한다. 왜 배워야 하는가? 십대는 지적으로 완숙하지 못하다. 십대의 특징은 육체적 욕망이 강열하기 때문에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일의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영향을 미치지 생각하지 못하고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 움직인다. 통제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중요하다. 통제력, 즉 절제력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현실의 유혹을 이기는 정서적 의지적 능력이다. 경험의 부족으로 미숙하고, 판단이 흐리다. 부모의 경험이 없이는 십대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부모는 십대를 이미 지나왔고 삶의 경륜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를 체득해 왔다. 십대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적능력을 발휘하여 지혜를 빌려 주어야 한다. 중요한 한 자기가 더있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지 못하고, 재정적인 독립이 되어있지않고, 삶을 책임질 수 없다. 부모의 의존과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부모, 십대를 어떻게 양육할까?

 

-부모가 십대 자녀의 모델이 되라.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첫 번째 충고는 의외입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심리학의 전문가일 필요도 없고, 청소년의 정서에 관한 최신 책들을 다 찾아 읽을 필요도 없지만, 적어도 자기의 일, 즉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일만큼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부모는 자신이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청소년 자녀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관심과 믿음 안에서 관찰하고 모방하며 실수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25쪽)

중요한 대목은 부모가 성장하는 모습의 모델이 되어야 하다는 점, 또한 자녀들이 모방하며 실수하는 것을 수용하라는 점입니다. 결코 쉽지 않는 주문이지만 꼭 필요한 충고입니다. 부모가 먼저 성장하는 과정을 성실하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자녀는 그것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제가 볼 때 다음에 나오는 양육 기술은 지금 주제의 주해 또는 세세한 방법론에 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어쨌든 다음 방법으로 넘어가 봅시다.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우라.


어른들의 오해 하나,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말을 들어 줄 능력이 없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려는 것도 결국 쓸모 없는 일’이다.(80쪽) 십대는 외계인이란 책도 있을 정도로 십대와 대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녀는 끊임없이 자녀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소통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자는 ‘부모와 청소년 자녀 사이의 의사소통이 개선되려면, 워크맨의 불륨을 높이거나 더 큰 스테레오를 살 것이 아니라 할 말을 더 많이 만들고 듣는 법을 배워야’(81쪽)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技術)이 아니라 소통하려고 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의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의견을 십대의 자녀들에게 강제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의견을 십대의 자녀들에게 강제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돈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밥먹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있어야 의사소통은 수월해 집니다. 함께하는 시간을 돈이나 다른 것으로 환산하지 마십시오.


-십대의 영성을 계발시켜라.


십대에게도 하나님이 필요하고 영성이 계발되어야 합니다. 청소년기는 영성이 확장되는 시기입니다.(166쪽) 그러나 그들의 영성은 ‘지혜롭지 못하고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도 않으며 성숙하지도 않습니다.’(166쪽) 부모는 그들의 영성을 계발시켜야 합니다.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은 누구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죄에 대하여 토론을 시작하는 것입니다.’(174쪽) 대화를 통해 사이비 영성과 거짓 영성을 구분하고 부모의 뜻과 마음을 전달해야 합니다.


십대의 특징 중 하나는 심각한 우울증이나 감정에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극단의 시기’(189쪽)입니다. 그들은 죄를 지어놓고 하나님은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극단적 생각을 갖기도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죄를 ‘묵인’하거나 너무 쉽게 ‘정죄’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해야 하는 데, 일방적 무책임이 아닌 주님께서 십자가서 우리를 용서하듯 용서해야 합니다. 주님의 용서는 죄에서 돌이켜 새 삶을 살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죄는 미워하지만 ‘너’는 미워하지 않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건정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건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풀어야할 숙제는 많습니다. 이 한 권의 책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십대를 둔 부모는 자녀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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