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사야 22장 1-14절

샤마임 2012. 9. 3.
반응형

매일성경 20120903 

이사야 22장1-14

 

 

결국 마지막에 주인공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원래 가장 늦게 나오는 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의 백성 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신다.

 

바벨론(13장), 모압(15-16장), 다메셋과 북이스라엘(17장), 구스(18장), 애굽(19장), 애굽과 구스(20장),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21장)를 향했던 이사야의 심판 예언은 이제 이스라엘을 향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이 거의 마지막에야 나온다. 왜 그럴까?

이웃나라의 죄를 경고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가? 나는 선택받은 백성이나 나와는 상관없다? 아니다. 나도 죄인이므로 회개하고 겸손한 자세로 엎드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결국 심판은 이스라엘에게까지 오고야 말았다.

 

비전 골짜기는 풍자적이며, 멸시하려는 의도의 언어유희(word play)이다.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비전 골짜기의 본래 명칭은 ‘시온 산’이다. 시온산과 비전 골짜기를 비교해 보라. 시온과 비전은 동일한 의미를 담지만 산과 골짜기는 다르다. 8절에 ‘벗기매’라는 표현을 통해 그들은 비전이 없었다. 즉 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영적인 소경들이었다. 비전은 보는 것인데, 산이 아니라 골짜기라고 표현된다. 산에 올라가야 볼 수 있는데 골짜기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경멸적인 풍자인 것이다.

 

지금 전쟁이 코앞에 닥쳤다. 그런데도 이들의 상태는 어떤가? 14절을 보니 그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먹고 마시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 ‘어차피 내일 죽으니 오늘 실컷 죄나 짓자’이고, 다른 해석은 이사야 선지자가 내일이면 예루살렘이 멸망하니 회개하세요. 라고 예언하자 농담조로 비아냥거리며 ‘내일 죽을 텐데 실컷 먹고 마시자’란 뜻이 됩니다. 어떻게 해석하든지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조롱하고 부정하려는 교만한 이스라엘의 심리상태를 보여줍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깊은 영적 잠을 자고 있습니다. 도무지 내일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영적 감각으로 내일의 처참한 광경은 보고 있습니다. 당시 활을 가장 잘 쏘는 민족이었던 엘람 민족을 앞세우고, 기르 족속은 보병전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앞세워 잠자는 이스라엘을 공격해 올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둔했는지 8절에 그들의 눈을 벗기고 나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적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그들은 샘을 파고, 집을 헐어서 성벽을 보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을 보면서 슬픔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적군을 보내신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전쟁을 하도록 준비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나옵니다.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따라 하셨거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의 하면 ‘이 모든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앙망하라.’는 것입니다. 영적 잠을 자는 이들의 특징은 어떤 일이 닥치면 영적인 눈으로 보지 않고 육적인 눈으로만 그것을 보고 대처한다는 것입니다. 밤새 잠을 자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데, 어떻게 다음날 복수할 것인가 궁리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보면서 이사야 선지자는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고 선언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비전을 보았으면서도 영적으로 둔하여 져서 멸망이 코앞인데도 쾌락에 빠진 타락한 이스라엘을 보며 통곡하겠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선전문구와 구호와 외침은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영적맹인들을 보며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말라.’ 선지자의 외침 속에는 비전의 백성이면서도 비전이 없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영적 지도자의 고독한 슬픔의 표현입니다. 출애굽한 광야의 이스라엘이 범죄하며 하나님을 원망할 때 모세는 조용히 시내산으로 올라가 피를 토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들을 멸하시려면 저부터 생명책에서 지워 주십시오.

 

우리에게 모세와 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사야와 같은 헌신이 필요합니다. 죄지은 이들을 향하여 손가락질하며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기보다, 그들의 죄악을 보며 깊이 통회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철회되도록 백성들 앞에 서서 하나님께 중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조롱하고 죽인 저들을 향하여 저주하지 않고, 하나님께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기도하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상을 보여주신 이유는 영적 잠을 자를 저들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저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하라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두들 이사야의 기도 자리로 나오십시오.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 세상의 쾌락에 빠져 눈을 감지 마십시오. 요나처럼 자신을 무시한다고 하나님께 반항하지 마십시오. 중보의 자리로 나오십시오. 회개하며 자복하는 자리로 나오십시오. 하나님을 지금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