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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고린도후서 9장 성도를 섬기는 일로서의 연보

샤마임 2020.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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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고린도후서 9장 성도를 섬기는 일로서의 연보

 

고후 9장은 연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우리는 고후 9장을 통해 현대적 의미에서 헌금의 원리를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1-5절 연보는 미리 준비 되어야 한다.

6-15절 헌금의 원리

 

1. 1-5절 연보는 미리 준비 되어야 한다.

 

1-5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의도는 명확하고 간단합니다. 연보는 준비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절을 보니 마케도냐 교회에 아가야 사람들은 연보를 일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케도냐 사람들은 우리가 아가야 사람들에게 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연보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가야 지방은 고린도가 수도 역할을 했고, 그 주변의 헬라 지역을 말합니다.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에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연보를 준비하도로 명한 것 같습니다. 고전 16장 1절을 보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처럼 명한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오래 전에 연보에 대해 언급한 것처럼 보입니다. 미리 준비함으로 억지가 아닌 참 연보가 된다고 말합니다.(고전 16:1-2)

 

바울은 아마도 이 즈음에 마케도냐 교회들에게 고린도교회는 일 년 전부터 연보를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한 것으로 보입니다. 8:10에서 분명히 바울은 일 년 전부터는 이 일을 계획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고린도교회가 충분히 연보를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서로 분당을 지어 서로 시기하고 다투는 과정 속에서 제대로 된 연보가 나올리는 만무합니다. 바울은 이제 교회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연보의 문제를 속히 마무리하고 싶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를 마케도냐 교회들에게 자랑했는데 마케도냐 교회 대표들이 고린도교회에 가니 아무 것도 준비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될까봐 당혹스러워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절의 ‘헛되다’는 표현은 ‘텅비다(κενόω)’의 의미입니다. 이 표현이 고전 9:15에서는 동일하게 ‘헛되다’로 번역했고, 빌립보서 2:7에서는 ‘비우다’로 번역했습니다. 마치 속이 텅 비어있는 항아리와 같은 것입니다. 말로는 자원하여 연보를 작정하고 미리미리 준비 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가서보니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는 미리 준비되어야 합니다. 미리 준비한다는 말은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조금씩 모은다는 뜻도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헌금을 전혀하지 않아서 물어 본적이 있습니다. 믿음도 있어 보이고 신실해 보이는데 이상하게 헌금은 전혀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분이 이외의 답을 하셨습니다. 자기는 헌금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일년 마지막 달에 내려고 마음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하면 너무 유치해 보여서 나중에 부자되면 한꺼번에 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그것도 신기했지만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아 가르쳐 주었습니다. 딱 마디 했습니다.

 

집사님! 내일 주님께서 집사님을 부르시면 어떻게 하실 랍니까?

 

그 분의 의도는 나름 좋았는지 모르지만 인생을 너무나 모르는 분이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지 않더라도 갑자기 사업이 망해서 먹고 살기에 급급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헌금은 주기적으로 조금씩 천천히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헌금생활입니다.

 

2. 6-15절 헌금의 원리

 

이제 바울이 말하는 연보의 원리로 돌아가 봅시다. 8장에서는 예수님의 자기부정과 만나의 법칙을 통해 교훈했습니다. 9장에서 이 부분을 좀더 확장시켜 설명합니다.

 

ㄱ.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

 

6절에서 바울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다는 일반적인 농사의 원칙을 연보의 원리로 소개합니다. 농부가 많이 거두고 싶다면 많이 씨앗을 뿌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가 헌금에도 적용될까요? 헌금을 많이 하며 무엇을 거둔다는 말일까요? 중간의 해석을 건너뛰어 10절로 가보겠습니다. 바울은 10절에서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너희에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분명히 신명기 언약에 근거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주변 이웃 가운데 가난하고 배고픈 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꾸러 온다면 거절하지 말고 넉넉히 주라고 권면합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리라 약속하십니다.

 

[신명기 15:10-11]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헌금을 하고 누군가를 도울 때는 그 사람에게 받을까를 생각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쌍한 이웃을 돕는 이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계명에 확신을 갖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그 약속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ㄴ. 의의 법칙

 

9절에서 바울은 구약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이 말씀은 시편 112:9입니다.

 

시 112: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그런데 앞선 구절에서 시편기자는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고(112:3),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는 자는 잘 된다고 약속합니다.(112:5) 부와 재물이 결론적이라면 ‘의’는 그의 행위의 방식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제한 것임을 말합니다. 의는 어떤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바로 그것이 의입니다. 그래서 시편 112편에서는 의롭다는 표현이 4절과 9절에서 두 번에 걸쳐 사용되고 있습니다.

 

시 112:4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초대교회가 구제를 ‘의’로 곧바로 직역했다는 것은 마태복음 6장으로 돌아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 가운데 있는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1-2]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자 보십시오. 연보, 특히 구제하는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가를. 육신의 소유를 일부 덜어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단순히 긍휼의 차원을 너머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찬 받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10절 후반부에서 바울은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신다’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해를 통해서 바울이 왜 복음전도와 더불어 구제사역에 힘을 쏟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ㄷ. 실천의 원리

 

마지막 원리를 실천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식에만 머물지 않고 삶을 통해 드러나고 열매 맺습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삶으로 드러난 말씀이 곧 진짜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 3:17-18]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4:20-21]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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