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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의 -이 세상의 파수꾼

샤마임 201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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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파수꾼

 

어느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새 자전거를 닦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을 했다. 아이는 자전거 주인에게 슬며시 물었다.

“아저씨, 이 자전거 비싸요?”

그러자 자전거 주인이 대답해 주었다.

“몰라, 이 자전거는 우리 형님이 주신 거란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는 부럽다는 듯,

“나도…”

라고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자전거 주인은 당연히 아이가

“나도 그런 형이 있어서 이런 자전거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의 말은 뜻밖이었다.

“나도 그런 형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 동생은 심장병이 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숨을 헐떡여요. 나도 내 동생에게 이런 멋진 자전거를 주고 싶은데요.”

 

동생을 사랑하는 그 아이의 착함도 착함이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어른 아이의 생각의 차이를 본다. 자전거 주인이 아이의 생각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것은 늘 무엇인가를 남으로부터 획득해서 나의 소유로 만들고 싶은 어른들 생각을 아이에게 투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이런 어린아이의 열린 마음을 점점 잃어버리고 나만의 성을 쌓아가며 하나씩 마음의 문을 닫아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지난 26일자 어느 일간지에는 “장애인 학교의 직업교육 시설 이전 계획에 반발한 서울 Y초등학교 학부모들이 개학 첫날인 25일부터 다시 학생들의 무기한 등교 거부에 나섰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서울 맹학교 시설이 낡은데다 그 지역이 건물을 증축할 수 없는 풍치지구여서, 맹학교의 직업교육 시설을 Y초등학교 안의 일부 부지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던 바 있다.”는 짤막한 기사가 있었다.

놀라운 것은 등교하는 학생들까지도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서 가로막고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물론 마땅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니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무조건 싫은 것이라도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무심히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다. 어른들의 닫힌 마음으로 아이들의 열린 마음까지 꽁꽁 걸어 잠그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작가 J. D. 샐린저의 대표작 <호밀밭의 파수꾼>은 소위 ‘문제 청소년’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세 번째 옮겨간 고등학교에서 다시 퇴학당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사흘 동안의 행적을 기록한 1인칭 소설이다. 홀든은 뉴욕의 뒷골목을 떠돌며 오염된 현실세계를 경험하고 지독한 상실감을 맛본다. 사흘 동안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위선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기성세대이다. 홀든은 인간 불신의 원인은 언어 자체라고 생각, 허위로 가득 찬 세상을 떠나 한적한 숲 속에서 누구와도 말을 나누지 않고 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여동생 피비의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에서 구원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피비의 질문에 홀든이 대답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재미있게 노는 꼬마들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잡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그러나 결국 어른들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절망 끝에 절벽을 떨어지려는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을 지켜 주는 것은 피비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라는 점이 이 소설의 아이러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학생들 가까이에서 공부할 수 없으니 학교에 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어린 학생들을 어떻게 이해할까.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 이 세상은 아무리 잘난 사람들이라도 누구나 조금씩의 모자람, 불편함을 갖고 있어서 서로 양보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곳이고, 그것만이 이 세상을 지키는 진정한 파수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까.

사랑과 친절은 부메랑 같아서 베풀면 언젠가는 꼭 내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 그래서 결국은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문학의 숲을 거닐다 (양장)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장영희
출판 : 샘터사 200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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