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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까지

샤마임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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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창세기 12장은 갈대아 우르에서 소망 없이 살아가던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야깁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가족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기근이 찾아와 잠깐 애굽에 내려간 곤란한 일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래를 데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갑니다.

 

[창세기 12장 구조]

 

창세기 12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9절까지는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을 받고 가나안까지 가는 아브람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10-20절까지는 애굽에서 위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지내던 아브람을 불러내셔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길 원하셨습니다.

 

1. 1-9절 아브람의 소명

 

ㄱ. 가나안으로 떠나는 아브람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에 살았습니다. 11장 후반부에 기록된 셈의 족보 마지막 부분에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등장합니다. 성경은 데라를 끝으로 셈의 족보를 끝내고 11:27에서 ‘데라의 족보’로 넘어갑니다.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습니다. 하란은 후에 아브람과 가나안에 함께 갈 롯을 낳습니다. 안타깝게 하란은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기 전에 갈대아 우르에서 죽습니다.(11:28) 아브라함은 롯이 어렸을 때부터 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데라는 자녀들을 데리고 하란으로 갔고, 하란에서 205세에 숨을 거둡니다.(11:32)

 

12장이 시작되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소명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일어난 것인지 하란에서 일어난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은 갈대아 우르에서 소명을 받았고,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에게 소명을 알려주자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났을 것으로 추정 합니다. 문제는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은 있었지만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소명은 처음부터 명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순종하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였습니다. 먼저는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이름’에 대한 복을 주셨습니다. 세 번째는 복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은 아브람이 ‘말씀을 따라갔’(4절)다고 말합니다. 그때 아브람의 나이는 75살이었습니다. '따르다'라는 히브리어는 할라크인데 '걷다' '동행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면 가고, 서면 서는 삶, 그것이 바로 아브람의 삶이었습니다.

 

ㄴ. 제단을 쌓은 아브람

 

아브람은 롯과 함께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러 그곳에 거주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난 그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7절)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곳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노아가 홍수 이후 제사를 드린 후 아브람이 다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브람의 삶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그는 모든 삶의 기준을 하나님 우선주위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현현 장소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예배는 공짜가 아닙니다. 고대 세계에서 염소나 양을 잡는 것은 정말 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아까워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를 떼어 하나님께 예물로 드렸습니다.

 

 

2. 10-20절 애굽에서의 위기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아브람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아브람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람의 선택은 과언 옳은 것일까요? 분명 아닐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가기 전 아내 사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애굽 사람들이 사래를 보고 아름답게 여겨 빼앗아 갈 때 자신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아내라 하지 말고 ‘나의 누이’(13절)라고 합니다. 당시에 결혼한 여인을 빼앗기 위해 남편을 죽였다고 합니다. 아브람은 이것을 알았고, 자신의 목숨을 위해 사래에게 거짓말을 시킨 것입니다.

 

아브람의 걱정대로 애굽 사람들이 사래를 보고 탐을 냅니다. 사래의 아름다움이 도대체 얼마였는지 모르지만 애굽의 관원들까지 나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고, 결국 바로의 귀에 들립니다. 바로는 사래를 가져가는 대신 아브람에게 많은 재물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16절입니다.

 

  •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그런데 사래가 바로의 궁에 들어가자 하나님께서 큰 재앙을 바로의 집에 내립니다.(17절)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 야단을 치고 왜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따집니다. 아마도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바로의 꿈에 나타나 사래를 아브람의 아내로 이야기하고 경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바로는 사래를 비롯해 아브람과 그의 모든 사람들을 애굽에서 쫓아 보냅니다.

 

아브람의 행위는 절대 칭찬할 수 없는 비겁한 행위입니다. 만약 현대에 저런 남자가 사는 여성이 있다면 과연 계속 살까요? 아브람은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한 편으론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 아내를 팔아먹은 사람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러한 것까지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성공, 우리의 결과물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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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및 해설]

 

1절 여호와께서 ~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노아 이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아와 직접 말씀하신건 아브람입니다. 큰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은 후에 '열국의 아버지'가 아브라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기적이 일어나고 새로운 일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과 후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실 때는 우리의 삶을 시작됩니다. 

 

너는 떠나 ~ 가라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일어나 떠나야 합니다. 그것의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계속하여 '너의'라는 소유격을 강조하여 아브라함의 의존적 삶을 지적하고 그곳에서 벗어나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가야합니다. 떠나는 것은 시작입니다. 끝이 아닙니다. 신앙은 여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2절 너는 ~~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있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단지 허황된 속임수나 공기의 진동이 아닙니다. 기적이고, 역사이고, 창조이고,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보통 세 가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식 없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무명이었던 아브라함은 유명하게 하시고, 마지막으로 땅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얻는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복을 주실 때 순종이 전제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약속의 땅으로 갈 때 복음 성취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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