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장 할례언약
창세기 17장 할례 언약
우리가 잘 알듯 창세기 17장은 아브람과 사래의 바뀌고, 할례가 시행됩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고, 사래는 사라가 됩니다. 아브람의 뜻은 ‘큰 아버지’란 뜻이고, 아브라함은 ‘무리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아들을 약속하시면서 한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아버지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래는 지배자라는 뜻이고, 사라는 여주인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저명한 창세기 학자인 고든 웬함은 ‘아브라함은 아마 아브람의 방언으로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고든 웬함)이라고 말합니다. 사래와 사라 역시 동일한 의미로 ‘여왕’(고든 웬함)
이란 뜻입니다. 히브리 원어를 살펴보면 그 기원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이상한 해석이 일반화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어주실 때는 뭔가를 행하실 때, 또는 사명을 주실 때 그렇게 하십니다.
- 1-9절 아브라함과 언약 맺으심
- 10-14절 할례를 명하심
- 15-22절 사래에게 복을 주고 아들을 약속하심
- 23-27절 할례 받는 아브라함 가족
1-9절 아브라함과 언약 맺으심
99세에
이 말은 벌써 13년이 흘렀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아이의 출생은 지지부진(遲遲不進)합니다. 그동안 아브람과 사래를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자포자기(自暴自棄)가 아니었을까요? 그 긴 시간을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잊고 지냈을 것입니다. 기도응답이 너무 늦어지면 우리는 낙심하기 마련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을 유지하는 것 같아 보이고, 신앙 있는 척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한숨과 낙심이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포기하면 행복해 보입니다. 아브람이 보낸 13년은 겉으론 모든 것이 행복하고 평온해 보였지만 하나님에 대한 깊은 절망이 자리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소망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불쑥 아브람을 찾아옵니다. 이렇게 놀라울 수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드디어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전능한 하나님’의 히브리어는 엘샤다이입니다. 샤다이의 어원 무엇인지 모호합니다. 학자들도 많은 추측을 하지만 추측일 뿐입니다. 샤다이를 칠십인경에서 판타크라토르로 번역하여 ‘전능한’이 붙여졌습니다. 이유야 어떻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자신을 능력을 아브람에 드러내십니다.
아브람 아브라함
하나님은 약속의 증표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아브람은 ‘큰 아버지’란 뜻이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큰 차이가 없지만 미묘하게 바꾸어집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바꿈으로 단지 큼에서 모든 열국을 대표하는 자로 묘사됩니다. 아브람은 단지 ‘크다’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지만 아브라함은 새로운 생명, 즉 ‘후손의 탄생’을 기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민족들과 왕들이 나올 것임을 약속하십니다.(6절)
10-14절 할례를 명하심
할례를 받으라
하나님은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요구하십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에 속한 모든 남자이며, 태어난지 팔일이 되면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할례를 통해 언약의 백성임을 표시하도록 했습니다. 할례를 율법 이전에 생겨난 것임에 유의해 봅시다. 결국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로서 주어진 것이지, 언약의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할례를 왜 팔일에 해야 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주가 7일이기 때문에 8일은 새로운 한주의 시작, 신약의 주일과 같은 주기입니다. 이것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의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이후 이스라엘에 할례를 어떤 의미에서 후에 생기는 시내산 율법보다 더 우위에 있게 됩니다. 신약에서 할례 논쟁을 보면 안식일임에도 팔일이 되면 할례를 받는 것으로 약간 논란이 생깁니다.
- 요한복음 7장 22절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 요한복음 7장 23절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 사도행전 15장 1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여기서 신약의 할례논쟁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으니 넘어갑시다. 중요한 것은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단을 건넜던 이스라엘은 길갈에서 곧바로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15-22절 사래에게 복을 주고 아들을 약속하심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십니다. 사래는 여주인이고, 사라는 여왕입니다. 아브라함에 걸맞은 이름이 사라입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아들을 낳게 하여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속으로 웃자 하나님께서 웃는다는 뜻의 이름은 ‘이삭’으로 이름하라 말합니다.
23-27절 할례 받는 아브라함 가족
순종하는 아브라함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모든 가족으로 할례를 받게 합니다. 과연 순종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 어기지 않습니다. '말씀하신대로'는 아브라함의 삶의 방향, 방식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수종하는 삶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말씀과 일심동체가 되어 말씀이 곧 삶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들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이스마엘처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자들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우린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이나 피를 나눈 가족만을 할례를 행하지 않고 돈으로 산 모든 자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수하의 모든 남자입니다. 손님이나 나그네가 아닌 아들 종 모두를 포함합니다. 이스마엘과 종들까지 할례를 받았다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종들도 후에 애굽에 함께 내려가며, 이스라엘의 민족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을 떠나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되지 못합니다. 할례를 받는다고 모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 안에 머물러야 하고, 계속하여 말씀과 동행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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