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동화] "봉봉이의 심부름"
<창작 동화 > "봉봉이의 심부름"
세상은 눈을 감은 듯 온통 캄캄해지고 별님들마저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귓가를 간지럽혀오는 자그마한 소리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아주 작고 천천히 들려오던 소리가 어느새 작은 북소리처럼 통통거리며 규칙적으로 들려왔어요. 저는 너무 궁금해져서 소리가 나는 창문가로 다가갔어요. 모두가 잠든 사이 비가 왔나봐요. 창문 밖은 더 짙은 어둠이었지만 내리는 비는 신기하리만큼 구분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빗소리와 비가 함부로 창문에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있자니 문득 함께 잠든 엄마의 모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갑자기 가슴이 콩콩거리기 시작했어요. 어둠이 무서워졌어요. 덜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요.
.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어요. 그 거실에는 베란다를 통해 내리는 비를 한없이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어요.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왤까요? “엄마”하고 부르는 제 목소리도 한없이 안으로 들어가고 엄마를 부르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베란다 밖의 하늘에는 내 방에서 숨어 버린 달님이 내리는 비를 비추고 있었어요. 그 달빛을 통해 본 엄마의 얼굴에는 오늘 밤 볼 수 없었던 별님이 반짝이고 있었어요.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엄마의 옆얼굴을 비추는 달빛. 달빛이 원래 저렇게 고운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고운 것을 보는데 왜 자꾸만 알 수 없는 슬픔과 눈물이 나는 것인지 아직 어린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지만 오늘밤 엄마의 모습은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이란 걸 분명히 알 수 있었어요.
.
.
“봉봉. 일어나~. ”
엄마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전 잠시 어리둥절했어요.
‘ 음..어제 내가 본 게 꿈이었나?’
어느새 비도 그쳐있었고 햇살에 반짝이는 엄마의 미소는 어젯밤 달빛처럼 고왔던 모습보다 저에게는 훨씬 좋은 것이었어요. 나는 달려가서 엄마를 꼬옥 안았어요. 엄마에게서 아주 달콤하고 폭신폭신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엄마는 아마 모를 거예요. 나는 코를 묻고 엄마가슴에 고양이처럼 부비부비를 했어요. 엄마는 ‘웬 녀석’ 하시며 저를 조심스레 떼 놓으셨죠, 그리고는 얼릉 씻고 오라고 가볍게 머리를 콩 두드렸어요.
.
.
아침밥을 먹고 기분 좋게 고양이낚시질을 하면서 놀고 있는데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봉봉. 오늘은 엄마 심부름을 가야해. 언니에게 전해줄 물건이 있단다.”
저는 깜짝 놀랐어요. 언니가 오늘 인도네시아로 가기 때문에 잊고 간 가방을 공항에 갖다 주라는 것이었어요. 덜컥 겁이 나네요. 심부름 가기 싫은 마음이 들어요. 갑자기 배도 살살 아파오는 게 몸이 안 좋은 것 같아요. 공항은 엄마와 함께 몇 번인가 가 본 게 전부이기 때문이에요. 여러 가지 핑계를 생각해 바라본 엄마는 왠지 단호해보였어요. 용기를 낼 수 밖에 없는데 용기가 아니라 눈물이 날려고 해요. 이런 날 엄마는 빤히 보시더니
“혼자가기 싫으면 시로랑 함께 가도 좋아.”
“엥? 엄마 왜 시로야? 카무랑 가면 안돼?”
“안돼. 시로랑 가도록 해요.”
.
시로와 카무는 우리 집 고양이예요. 근데 말이에요. 시로와 카무는 성격이 정반대예요. 시로는 아주 자그마한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침대 밑에 숨어버리는 소심하고 겁쟁이에요. 하지만 말괄량이이긴 해도 모든 것이 궁금하고 대범한 고양이이가 카무이기 때문이에요. 나도 무서운데 나보다 더 겁쟁이인 시로를 데리고 함께 가라니 엄마는 무슨 마음이실까요? 나는 고양이들을 바라보았어요. 시로는 꼬리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두 귀를 뒤로 젖혀서 금방 울 것만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어요. 하지만 카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 앞발을 들어 툭툭 나에게 장난을 걸어 왔어요. ‘아휴 속상해’ 엄마는 코트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언니에게 전해줄 가방을 단단히 챙겨주셨어요. 그리고 시로에게
“시로야 봉봉이를 잘 지켜줘야 해. 한시도 눈을 떼면 안 된다. ” 하셨어요.
저는 속으로 웃었지요. ‘저렇게 소심하고 겁이 많은 시로가 어떻게.....’
.
.
시로와 저는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큰 도로를 지나 역으로 가야해요. 얼마나 걸었을까요? 자꾸만 시로가 발 사이사이로 들어와 걷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어요.
“시로 왜 그래. 똑바로 걸으라고.” “짜쯩 나. 카무가 좋아. 시로 싫어.”
저는 시로에게 밀려 모퉁이 화단으로 들어가고 말았어요. 그런데 그 순간.
“빠앙~.”
큰일 날 뻔했어요. 모퉁이를 돌아가는 자동차 한 대가 아주 가까이까지 위험하게 달려온 거예요. 시로는 등의 잔뜩 활처럼 구부려 털을 세워서 자동차를 험하게 쳐다보았죠.
“시로야”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로는 다시금 귀를 뒤로 보내고 커다란 겁쟁이 눈으로 보는 거였어요.
“그래. 너가 알고 그랬겠어?”
.
전철역 안은 몹시 붐비었어요. 엄마 손을 잡고 몇 번 와 본적은 있었지만 역 안이 이렇게 넓고 복잡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표를 뽑는 기계가 이렇게 내 키보다 높이 있다는 것도 표를 넣고 돌려 들어가는 입구도 이렇게 무겁다는 걸 왜 오늘 처음 알게 되는 것일까요? 가만히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언제나 내 손에는 엄마의 손이 함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오늘은 고양이 손뿐이니 나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해요.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아무리 발돋움을 해도 표를 뽑는 기계에 동전을 넣기에는 손바닥 한 뼘이 모자라요. 이마에서는 땀이 났어요. 겨울인데 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죠. 나는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소심한 시로는 뜬금없이 ‘발라당’을 했어요. 시로는 카무와 달리 애교가 없어서 좀체 ‘발라당’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데 왜 하필 이곳에서 이렇게 태평하게 드러누워서 애교를 부리는 걸까요?
“어머. 어머 귀여워라. 새하얀 고양이네.”
“어머나 너무 귀엽다. 그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다가왔어요. 그리고는 시로를 한참 쓰다듬다, 곤란한 표정으로 서 있던 나에게 눈을 돌렸어요.
“꼬마야. 도와줄 일 있어? 왜 그렇게 서 있니? 이 고양이 너 꺼야?”
학생들은 내 손에서 동전을 받아 표를 뽑아줬어요. 그리고 입구까지 시로를 안아서 데려다주었어요. 차안에서 시로를 바라보면서 조금은 아주 조금은 시로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시로가 조금은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
.
따뜻한 차 안은 지나가는 풍경도 자장가처럼 잠을 몰고 왔어요. 옆에 가만히 앉은 시로도 느긋하니 그루밍을 하면서 졸린 눈을 하고 있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인천공항입니다. 내리는 문은 왼쪽입니다.”
라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깜박 잠이 은 모양이었어요. 나는 깜짝 놀라 허둥거리기 시작했어요.
“시로 빨리 내려.”
서둘러 내리고 보니 어쩌죠?
“가방...”
언니에게 전해줄 가방을 의자에 두고 내린 거예요. 출발하려는 차를 바라보면서 저는 내려선 계단을 다시 올라가려고 했어요. 그때 갑자기 시로가 달려 차안으로 쏘옥 들어갔어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어요. 이제 차 문은 닫히려고 하는데 시로도 나오지 않고 가방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뎅뎅.” “찌익.” “촤~”
닫히려고 했던 문이 갑자기 다시 열렸어요. 시로는 자기보다 큰 가방을 입에 물고 있었어요.하지만 가방의 무게가 버거웠던지 가방이 문에 걸려 버린 거예요. 저는 달려가 가방을 꺼내고 시로를 안았어요. 시로는 어디에 찍혔는지 빨갛게 된 왼쪽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어요.
“시로야. 고마워. 너 아주 용감하구나.”
나는 시로의 얼굴에 나의 얼굴을 맞대었어요. 나를 바라볼 때마다 귀를 뒤로 젖히던 시로가 이제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손가락을 핧아 주었어요.
.
.
공항에 도착하니 엄마전화를 받은 언니는 나와 시로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언니에게 가방을 건네었어요. 언니는 가방을 열어 엄마가 보낸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캐리어로 옮겨 담았어요.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어젯밤 달빛 아래 엄마가 부서지는 별빛으로 수놓은 물건들이었어요. 언니는 그 물건들을 정리하던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어느새 언니의 얼굴에도 낮에 뜬 별이 공항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어요. 언니는 어젯밤 내가 보았던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왠지 알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전 비밀은 지켜야하니까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 언니의 얼굴에서 반짝이는 별빛도 모른 척 비밀로 해 둬야 할 것만 같아 시로를 쓰다듬기 시작했어요.
“봉봉. 언니가 다녀올 때까지 엄마의 위로가 되어드려야 해.”
“응”
“언니는 마음 든든하네. 엄마 곁에는 시로 기사님과 착한 봉봉이가 있으니까”
순간 저는 깜짝 놀랐어요. 언니는 소심한 시로가 아주아주 용감하고 멋진 고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봉봉. 언니가 부탁하나 해도 될까? 이것을 엄마에게 전해드려.”
언니의 손에는 아주 작은 인형하나가 들려 있었어요, 쭈쭈를 빨고 있는 토끼 옷을 입은 아주 귀여운 아기였어요.
“봉봉 그 아기 이름은 치치야. 봉봉이가 돌봐주면 좋겠어.”
언니는 내 손에 치치를 꼭 쥐어주고는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비행기를 타러 갔어요. 언니의 뒷모습은 왠지 달빛에 비친 엄마의 모습을 닮아 있어서 자꾸만 언니의 모습이 흐릿흐릿해 보였어요. 나는 주먹으로 눈을 비벼서 언니의 모습을 또렷이 보고 싶었어요. 커다란 가방에 언니의 몸은 더 작게만 보였고 조금은 외롭게 보였지만 왠지 멋져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 까닭일까요? 나는 ‘언니 잘 다녀와’ 라는 말보다.
“응, 언니. 나 언니가 올 때까지 다른 사람의 위로가 되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게”
라고 다짐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시로를 안고 속삭였어요
“시로. 미안해. 넌 참 멋진 고양인데 내가 널 잘못 보았구나. 돌아가는 길도 잘 부탁해.”
시로는 꼬리를 높이 수직으로 세우고 가볍게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어요. 나는 치치를 조심스레 호주머니 안에 넣어 만져보았어요. 왠지 아기였던 언니 같아서 치치가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나는 앞서 걸어가는 시로 뒤를 서둘러 따라 엄마가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일상이야기 > 글쓰기특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일단 읽어라. (0) | 2018.03.15 |
---|---|
너머와 넘어 (0) | 2018.03.12 |
[창작 동화] "꿈꾸는 봉봉 " (0) | 2018.01.20 |
[띄어쓰기] 더디보이지만 (0) | 2018.01.17 |
[일기쓰는법] 3. 일기의 단어 문장 문단 (0) | 2018.01.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