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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십자가와 칼

샤마임 201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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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에이 보이드(Gregory A. Boyd)

 

 

 

그레고리 보이드, 그와의 인연은 십자가와 칼이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한동안 정치와 권력에 대한 문제들로 씨름하던 중 이 책은 나에게 어둠의 한줄기 광명처럼 다가왔다. 그는 천주교인으로 태어났으나 십대를 철저한 무신론자로 살아갔다. 그러다 1974년 어느날 예수 앞에 무릎을 꾾고 전적으로 항복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 믿음을 가지고 여러가지 의문과 희의를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진정한 복음을 발견하며서 이것들을 변증해야 한다는 중차대한 소명을 받는다. 그 후 보이드 목사는 미네소타대학에서 학사, 예일대에서 석사, 프린스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게된다.  그는 베델신학교 교수로 16년을 봉직했으며, 현재는 미네소타주 세인트 홀 소재의 우드랜드 힐스교회의 담임목사로 있다.


그의 책인 십자가와 칼을 들여다 보자.  911테러 이후 급격히 좌경화되어가는 조국인 미국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인가를 도전적으로 제시한다.  십자가와 칼은 저자가 보려주는 참된 신앙인의 생존방식을 일러주고있다. 일찌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했으며, 또 다른 곳에서 칼을 가진자는 칼로 망하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최고의 자리는 이 땅에서 가장 낮은 자가 앉는다고 역설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는 물리적 힘이나, 강제적으로 되는 곳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스스로 낮아지는 곳이요, 섬기는 곳이요, 헌신하는 곳이다. 십자가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식이다.  

칼빈 이후 개신교 안에는 특히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사상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일터이며, 모든 직업은 신성한 것이라고 선언함으로 이원화된 세계관을 하나로 묶는 놀라운 작업을 단행했다. 어떤 면에서 놀라운 혁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주 날카로운 비수가 그 신학사상 안에 숨겨져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타락한 이세상, 부조리와 부패가 가득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하는 오류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수상이요, 3대 칼빈주의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곳은 단 한평도 없다고 선언하며 이 세상의 신성화의 신학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소위 하나님 주권사상이라 불리는 이러한 신학사상의 맹점은 교회가 더이상 소외되고 연약한 자들의 피난처요, 위로자가 아니라 통치자의 입장에서 선다는 것이다. 교회가 정치에 가담하고, 경제를 주도하고, 교육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왜? 모든 곳은 다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단척결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기독교회가 그토록 혐호해왔던 세상에 대한 이해가 완벽하게 전복되어 이제는 멋진 천국으로 화한 것이다. 교회는 더이상 섬김의 단체가 아니다. 지배하고, 물리적으로 강제하고, 요구하고, 착취할 수있는 가능성을 무한히 갖게 되었다. 십자가가 아니라 칼을 잡은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대 기독교의 어리석음을 폭로하면서 진정으로 다시 교회가 십자가로 돌아가야 할 것을 도전한다. 만약 교회가 칼을 쥐게 되면 사람을 죽이고 억압하게 되지만, 십자가는 죄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로 돌아가자. 그 높은 고딕건축물을 버리고 낮고 천한 광야의 배회하는 청년으로 돌아가자. 교회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더 이상 멈출수가 없다. 지금 당장 십자가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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